1년 만에 또 겪은 강진, 경주와 달랐던 점

[포항 주민이 겪은 지진] 직접 피해로 공포스럽지만... 달라진 정부 대처에 안도감 느껴

등록 2017.11.16 08:56수정 2017.11.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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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를 것이 없는 오후였어요. 16일까지는 마무리하겠다며 시작한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니터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놀랄 겨를도 없는 순간이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지요.


모니터가 흔들리면서 시간은 0.01초까지 선명해지며 확연하게 느려지더니, 이어지는 '꽈광' 하는 굉음과 함께 진동은 책상으로 의자로, 급기야 바닥으로 연결됩니다(진동은 분명히 바닥에서 출발한 것이었겠지만, 제가 '인식'한 순서는 이랬어요). 

'무슨 일이지?'

1년만에 포항에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모두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와서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져서, 한참을 떨었어요. '건물에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차에라도 가 계세요'하시는데, 모두 외쳤다죠. '차 열쇠를 안 들고 나왔어요!' ⓒ 이창희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아직 엉덩이를 채 떼지 못한 의자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동안, 천정의 형광등이 갑자기 '팍' 하며 꺼집니다. 놀라고 있는 사이 블라인드는 출렁거리고, 등 뒤로 쌓아두었던 책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이제서야 간신히 상황이 눈에 들어왔어요!

"지진이다!"

얼른 의자를 박차고 뛰어나가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었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등이 꺼져버린) 어두운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을 잡아 우회전을 합니다. 그 사이, 계단을 따라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출입구 앞에 몰려들어 순식간에 복잡해졌습니다. 


"뭐? 전원이 꺼졌다고? 문이 안 열려?"

네. 나갈 수가 없습니다. 비상 상황에서 전원이 갑자기 차단되면서, 사원증을 읽히면 열리게 되어있는 '스피드 게이트'의 전원도 끊겼고, 문은 닫힌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급하게 회사 안내실에 연락을 했지만 전화도 자꾸 끊어져 버렸고요.

"반대쪽 문으로 나가세요."

어디선가 안전모를 챙겨 쓰신 안전 관리 부서 직원이 도착하셨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투덜거림과 큰 공포를 함께 가진 채, 복도의 반대쪽 끝으로 서둘러 움직였습니다. 움직이는 사이에 혹시라도 후속 지진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돼 다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전화가 왜 안 되지?"

옆에서 걷던 동료가 가족에게 연락이 안 된다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1년 전 경주 지진 때와는 다르게 지진 대비 알람도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울리고 있고, 음성 통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통신은 문제가 없습니다(나중에 뉴스를 통해 확인하니, 통신 장애가 있었다고 하네요).

메신저나 전화기의 문자 메시지는 원활하게 전달되고 있어서, 다른 지역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동으로 열어놓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추위에 떨며, 전달되는 포항 곳곳의 사진들을 확인하자니 너무 무섭네요. 직접적으로 포항의 내륙에서 발생한 강진인 만큼, 진앙에서 가까운 지역에는 무너진 집도 많았고, 근처 학교의 외벽은 떨어져 내렸으며, 무너진 건물 잔해로 인해 망가진 차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진앙에서 11km 정도 떨어진 곳이라서 눈에 띄는 피해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만, 퇴근하고 들어간 집에서는 지난번보다 충격이 컸다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진앙지로부터 11km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오늘 지진의 진앙지로부터 11km 떨어진 곳입니다. 이젠 정말, '지진 피해지역 주민'이 돼버렸어요. '공포심'이 작년과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 이창희


아, 거의 1년 만에 한반도에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10월의 지진은 경주가 진앙이었고 늦은 저녁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랬는지, 분위기도 어수선했고 조금은 '구경꾼'의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해서 답답했지만, 오늘 느꼈던 직접적인 공포와는 확실히 달랐거든요. 곳곳이 무너지고 금이 간 것을 눈으로 보고 나니, 지진이 정말 '나의 생존'과 맞닿아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달라진 것은 또 있습니다. 조금은 떨어져서 '구경꾼'의 위치에 있었던 1년 전의 지진과는 달리 직접적인 '피해 지역 주민'으로 맞이한 강진이었습니다만,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들을 받고 있어서 답답함은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라디오 뉴스에서도 지진 특집 방송이 신속하게 배치되었고, 티브이에서도 지진 관련 뉴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선 재난대책 위원회가 재빨리 구성되더니, 오후 9시가 되기도 전에 바로 내일로 예정된 수능까지 연기됐네요. 확실히 지난해와 비교해 '보호받고 있다'라는 느낌을 느끼며,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의탁하고 있습니다.

커피숍으로 피신했습니다. 매번 머그컵으로 챙겨주시더니 오늘은 '혹시 몰라서' 종이컵에 주신다고 하시네요. 벌써 두 잔이나 마시며 앉아 있는데, 여기저기서 피신한 동지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다들, 무사히, 오늘밤을 보내시길! ⓒ 이창희


지금 시각은 16일 오후 9시 30분, 포항 지진 발생 이후로 7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진은 아직도 간간이 이어지고 있고, 떨어진 책들을 정리한 후 간단히 짐을 챙겨서 커피숍으로 피신했더니 이미 이곳을 가득 채운 동지들이 보이네요.

생존과 무탈을 확인하는 연락과 함께 수많은 조언들이 답지합니다. 오늘 밤, 과연 이 커피숍 '안식처'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포항의 우리 모두가, 무사한 밤과 행복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일상 비틀기 #포항 지진 #피해지역 주민 #정부의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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