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피해 없으니 괜찮다? 지진 트라우마는 어쩔텐가

지진으로 생긴 마음의 크랙, '경주 지진'을 책으로 펴낸 이유

등록 2017.11.17 16:08수정 2017.11.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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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위험' 아파트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으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의 건물 외벽 하단이 붕괴되어 있다. ⓒ 남소연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포항 북부 쪽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나자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인 2016년 9월 12일 경주 지진 이후 약 1년 하고 두 달이 지났다. 불과 올해 5~6월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여름을 지나며 여진이 가라앉아 무의식적으로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원히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경주 지진 이후 수많은 괴담과 가설들이 난무했지만 그 모든 설들을 깡그리 잠재울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무참히 짓밟고 또다시 포항 등지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15일은 대전 출장을 다녀와 사무실로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내가 일하는 곳은 컨테이너 사무실이다. 그래서 진동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꽤 오래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사무실 내에 있던 회사 동료들이 "어, 이거 뭐지? 지진이네. 지진이다!"라는 말을 끝내고도 한참 흔들렸다.

지진을 인지한 직원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던 직원들도 놀란 눈을 하고 나와 있었다. 그때 긴급재난문자가 울렸다. 작년에 비하면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주 새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재빨리 뉴스를 검색한 사람들이 포항에서 지진이 났다고 했다. 포항 북부 쪽이 진앙지라고 했다. 또다시 지진이라니. 작년부터 오랜 시간 나를 짓눌렀던 '지진'이라는 낱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부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날 지진 이후로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나의 핵심 키워드는 오랫동안 '지진'이었다.

1년 전 경주 지진, 뭘해야 할지 몰랐다

2016년 9월 12일에도 나는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 출장을 다녀와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규모 5.1 지진이 났다. 집이 통째로 흔들리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초기 몇 초 동안엔 지진인지도 몰랐다. 같이 살던 하우스메이트들이 지진이라고 말해줘서 그제야 인지를 했다. 우리는 서둘러 마당으로 나갔다. 겁을 잔뜩 먹은 강아지에게 목줄을 채우는데 강아지도 너무 놀랐는지 똥을 싸고 말았다. 혼비백산한 상태로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왔고 이미 해가 져 있었다(잊을 수 없는 한 장면처럼 그날 그 순간이 고스란히 기억된다).

다들 허둥대다 가족, 친구들에게서 전화를 돌리는데 메신저를 비롯한 모든 통신이 불통이었다. 다시 집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뭘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더 센 규모 5.8 지진을 맞았다. 간단한 짐을 꾸려 대피라는 걸 하기로 했는데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잘 몰랐다.

일주일이 지났고 규모 4.5의 지진이 또다시 찾아왔다. 솔직히 나는 9월 19일 다시 강력한 지진을 느끼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9월 12일부터 19일 사이에는 얼이 빠진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9월 19일 저녁에 다시 지진을 느끼고 나니 9월 12일 하루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는 걸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할까. 하우스메이트를 비롯 친구들, 지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10월 무렵 서울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서울 친구들을 만나 내가 겪은 지진 체험담을 들려주다가 깨닫게 되었다. 경주와 경주 가까이에서 지진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 말고는 이 문제를 공감하기란 참 힘든 일이겠구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내가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에서 또는 경주 근처에서 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두 사람에게 연락해서 함께 기획을 하자고 제안했다.

방송작가인 정꽃님씨와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치는 윤정임씨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각자의 인간관계를 총동원해서 글을 쓸 만한 사람, 직업이나 역할이 모두 달라 한날한시 같은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고 기와가 떨어지는 정도의 주택 피해가 다라고 치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엔 엄청난 '크랙'이 생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피해가 없으니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일본은 대지진 이후 국민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오랜 시간 상담 서비스 제도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책을 준비하면서 글쓰기가 트라우마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의 붕괴된 마음을 치료하고자 글을 썼고 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큰 피해 없으니 괜찮다? 마음속 크랙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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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생존배낭> 표지 ⓒ 아루출판사

지진이 난 순간을 취재했던 지역 방송국 기자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초등학교 선생님, 책방 주인, 손님을 두고 어디로 대피할 수 없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일제강점기 경주를 연구하면서 경주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지진 이후 개점폐업을 해야 했던 문화유산해설사, 아이와 부모의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 임상심리치료사, 일본 유학 시절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대학 교수, 두 아이의 엄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진 피해 지역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디자이너, 울산에 살면서 원전과 화학공장들이 두려운 요리사 들이 우리의 필자가 되었다.

그리고 국립경주박물관 관장님의 인터뷰, 원전 전문가로 알려진 김익중 교수의 강연, 아이쿱 생활협동조합연구소 김형미 소장의 강연 이야기를 실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유병하 관장님은 2016년 7월 울산 앞바다 지진을 경험한 후 전 직원을 동원하여 지진 대비책을 마련한 분이다.

야근을 불사하며 모든 유물에 낚싯줄을 달아 어떠한 지진에도 까딱 않도록 준비한 덕분에 9월 지진 때 박물관은 큰 피해가 없었다. 유 관장님의 대비책 마련은 마인드의 문제이다. 경주 시청 공무원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유 관장님에게 그러한 대비책 마련에 대한 마인드를 배울 필요가 절실하다.

<현관 앞 생존배낭>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생생한 체험담이고 2부가 앞서 말한 박물관 관장님 인터뷰와 강연 후기이다. 3부는 도쿄방재에 있는 지진매뉴얼을 우리 상황에 맞게 정리한 것과 삼국사기에 실린 지진 기사, 지진을 겪은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을 그림책 소개글, 지진으로 인해 고민되는 지점을 그림으로 푼 카툰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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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든 지진 대비 박물관용 키트 ⓒ 국립경주박물관


팩트 체크를 하는 심정으로 삼국사기 속 지진 기록을 살펴봤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많았다. 현존하는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해서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고 여겼는지 모르겠지만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는 지진이 종종,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책을 내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 책의 이야기를 알렸다. 제작비 마련도 중요했지만 우리 책을 미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간된 책을 바로 일반 서점에 배포하지는 않았다.

SNS를 통해 알음알음 판매를 했는데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아이 엄마가 연락을 해왔다. 혼자 트라우마를 겪으며 힘들었는데 이런 책이 있다 해서 꼭 사고 싶다고 했다. 우리 책이 혼자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겪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같이 힘을 냅시다'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어제 지진 후 포항에 살고 있는 아는 기자에게 연락해 보았다. 우리가 낸 책으로 인연을 맺은 기자이다. 아이들은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시청 취재를 위해 나가 있다고 했다. 경주 지진 후 1년이 지났음에도 포항시 역시 어떠한 시스템이나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우왕좌왕이라고 했다. 경주시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포항 지진 이후 SNS와 미디어에서는 각종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영상과 사진들, 끔찍한 피해 상황 등 이슈거리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러다 순식간에 잊힌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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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생존배낭>에 수록된 카툰. ⓒ 김영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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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생존배낭>에 수록된 카툰. ⓒ 김영린


그리고 책을 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쓰라린 기억이 다시 고스란히 떠올랐다. 기자들은 소위 '그림'이 되는 건을 찾고 싶어 한다. 지진을 경험한 이들의 아픔보다 '그림'이 더 중요한 기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기획자 세 명과 필자들은 그러한 기자들 때문에 이중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다. 최소한 이 글을 읽는 기자들은 부디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재난 피해에서 중요한 건 사회적, 국가적 시스템

그리고 부산의 한 어린이집이 아이들 머리에 맞게 헬멧을 맞추고 지진 대피 훈련을 잘해서 소개된 미담 기사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지진으로 인해 충격적인 기사 못지않게 주목을 받는 것이 이러한 미담 기사이다. 부디, 제발 미담 기사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런 대비책은 한 어린이집 원장과 선생님들이 선행처럼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경주시와 포항시 같은 지방 자치단체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준열하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경주시와 포항시만의 문제도 아니다. 몇몇 눈 밝고 현명한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에 운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국가적 시스템이 구축되어 다시 어떤 재난이 오더라도 시스템으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어제 이후 포항시에 수차례 여진이 오고 있다. 뉴스를 들으면서 단순히 규모 3이나 2라는 숫자에 생각이 머물지 않는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현기증이 나고, 메스껍고, 혼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그 누군가의 공포와 두려움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런 이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는 생각. 포항 지진을 접하면서 내 마음은 그리로 달려가고 있다.

현관 앞 생존배낭 - 9.12 경주 지진을 겪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권오민 외 지음, 김영린.신혜원.윤광웅 그림,
아루, 2017


#포항 지진 #경주 지진 #현관 앞 생존배낭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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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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