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목사 징계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대형 교회라서"

[리뷰] 교회 생태계 변화 필요성 담은 이진오 목사의 <재편>

등록 2017.11.21 08:40수정 2017.11.2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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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됐다."

한국 개신교의 부조리를 꼬집은 다큐멘터리 <쿼바디스>를 연출한 김재환 감독이 전한 메시지다.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다. 개신교 교회가 양적 성장을 구가한 사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물론 교회의 기업화는 미국에서 먼저 이뤄졌다. 그러나 '메가 처치'라고 부르는 대형교회는 전적으로 한국적 현상이다.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교회들이 대형화되면서 본질을 잃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회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 최대 규모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130억원 대의 배임으로 유죄가 확정됐고, 장로 교단으로선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인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세습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8년 시행을 앞둔 종교인 과세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들 역시 보수 대형교회들이다. 그러나 정작 개신교 목회자들은 내심 '큰 목회'를 꿈꾼다. 사실상 한국 교회는 크게 '대형교회'와 '대형교회를 꿈꾸는 교회'로 나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건강한 작은 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 이진오 목사의 신간 <재편> ⓒ 비아토르

이런 와중에 한국 교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재구성하자는 제안을 담은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바로 인천 세나무교회 이진오 목사가 쓴 책 <재편>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크기'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건강한 작은 교회'로 생태계를 '재편'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교회가 커지면 안 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의 복음을 듣고 변화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아닌가? 사실 대형화를 지향하는 목회자들이 바로 이런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면 크게 무리는 없다. 이에 맞서 저자인 이 목사는 '크기'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단언한다.

"'크기'가 성공주의, 성장주의, 맘몬주의, 영웅주의, 목회자의 탈선과 부패, 교회의 윤리적·도덕적 타락의 주범이다. 목회자나 신자 개인의 영성이나 도덕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일단 교회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지고 돈과 권력이 모이면 아무 소용 없다. 누구나 부패하고 타락한다. 누구나 우상이 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지금도 우리안에 욕망과 탐욕으로 존재한다." - 본문 55쪽 


만악의 근원은 '크기'

이진오 목사는 교회 개혁운동을 하면서 교회 대형화가 문제의 근본임을 인식했다. ⓒ 지유석


이 목사가 교회 타락의 근본 원인을 '크기'로 진단한 건 그의 경험의 소산이다. 이 목사는 2000년 <국민일보> 자매지인 <스포츠 투데이>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기독교 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반대 운동을 벌였었다.

또 2011년엔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회개 없는 교회개척과 성범죄를 규탄하고자 포털 네이버에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 카페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진상규명에 나서기도 했다. 2014년엔 그간의 활동결과를 담아 <숨바꼭질>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목사는 일단 '크기'를 키우는 데 성공한 목회자는 그 어떤 죄악을 저질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이 목사 스스로도 <재편>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교회가 대형화하면서 대형 교회 목회자가 타락해도, 대형교회가 교리적·윤리적으로 부패해도 교단 총회에서 징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한 교회가 노회나 지방회보다 더 큰 권력과 영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형 교회가 수백 개 교회를 지원하면서 작은 지역 교회들이 노회나 지방회의 치리(징계 - 글쓴이)를 받기보다 대형교회의 눈치를 보기에 이르렀다. (중략) 감리회가 김홍도 목사와 형제들을, 순복음이 조용기 목사를, 침례회가 윤석전 목사를, 장로회 통합이 김삼환 목사를, 장로회 합동이 길자연 목사, 오정현 목사, 전병욱 목사, 정삼지 목사를 제대로 징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들이 대형교회 목사이기 때문이다." - 본문 93쪽

이 목사는 크기에 대한 대안으로 '건강한 작은 교회'를 제시한다. 성도 숫자는 최소 50에서 최대 200명까지로 본다. 최대치를 200명까지로 정한 이유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 간에 인격적 교제가 가능한 최대 인원"이어서다. 그러나 규모의 작음이 곧장 건강함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 목사는 '작음'을 '본질의 문제'라고 본다.

"'작다'는 것은 단지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의 문제이다. 중세에 번영과 성공과 승리를 추구한 로마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혁가들은 내려놓음과 비움과 나눔의 정신, 즉 '십자가 정신'으로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다. 작음은 바로 십자가들 따르는 지향이며 본질적 가치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자신을 따르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번영과 성공과 승리를 기대하며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자기 길로 돌아갔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크지 못해서 작은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 본문 127쪽

민주주의가 하나님 중심이다 

이 목사는 특히 교회 운영 과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교회의 정치 구조는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운영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반론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처럼 교회는 '신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오해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교회는 신본주의이다. 그런데 신본주의가 무엇인가? (중략)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를 중심으로 인간 사이에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시기를 원했으나 인간의 죄성은 불의와 억압, 거짓과 폭력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기 욕망과 권력을 취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 중심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뜻을 바로 세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 방식인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를 이루며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신본주의를 하려면 인간들끼리 공동체적으로, 즉 민주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모아가야 한다." - 본문 151~152쪽

앞서 적었지만 이 목사의 책 <재편>은 현 한국교회 생태계의 현실과 대안을 짚었다. 한국교회의 타락을 염려하고 진정한 교회됨을 고민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러나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비단 그리스도교 신앙인 독자층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박득훈 목사는 지난 13일 JTBC뉴스룸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에 속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런 교회(대형교회 - 글쓴이)에서 기독교인들이 자라서 사회 지도자가 되면 우리 사회가 문제가 됩니다."

대형교회에 다니면서 사회 주류였던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강남의 대형교회인 소망교회 장로였다(그는 퇴임 후인 2013년 이 교회를 떠났다). 그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대형교회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렸다. 보수 대형교회들은 공공연히 '믿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야 한다'는 설교로 이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보수 대형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보수 대형교회의 시선에서 볼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딱 입맛에 맞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소망교회 출신들을 중용했고 종교 편향적인 정책으로 다른 종단, 특히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

만약 보수 대형교회가 계속 기득권을 움켜쥐고, 군소 교회들이 대형화를 추구한다면 이런 교회들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이 또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 대형화란 허위의식을 부수고, 건강한 작은 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 이 책 <재편>의 진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이제 교회가 양적성장을 구가하던 시기는 지났다. 교회 스스로 대형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할 적정한 규모를 고민해야 할 때가 무르익었다. '건강한 작은 교회'는 이런 고민에 적절한 대안일 것이다.

"작은 교회라고 모두 다 건강하지는 않다. 크지 못한 교회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 '작음'을 지향하는 교회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 이진오 목사

재편

이진오 지음,
비아토르, 2017


#이진오 목사 #명성교회 #재편 #종교인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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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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