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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와 싸우는 영웅들... 그들에게도 영웅이 필요하다

[다큐발굴단] 소방관의 숨겨진 아픔 다룬 EBS <다큐 시선-소방관, 영웅의 트라우마>

17.11.19 16:26최종업데이트17.11.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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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英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뜻하는 말. 유명 할리우드 영화인 <어벤져스>의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이 떠오르는 이 단어는 현실에서 그렇게 위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화마와 싸우는 영우들,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말이다.

지난 17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소방관, 영웅의 트라우마' 편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소방관들의 숨겨진 아픔을 조명했다. 평균 수명 58.8세, 우울증 10.8%(일반인 유병률 4배), 건강 이상 판정 68.1%, 전담의사 0명. 슈퍼 영웅이라고 불리는 소방관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대단하다는 말로, 멋있다는 말로 칭송하기에 소방관들의 현실은 너무나 씁쓸했다.

트라우마와 끝없이 마주쳐야 하는 삶 

석란정 화재사건으로 인해서 소방관들은 두 명의 동료를 잃어야 했다. 고(故) 이영욱, 고(故)이호현 소방관. 팀 내에서 아버지와 아들처럼 특별한 관계였던 그들은 석란정의 2차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뛰어들었고 석란정의 붕괴로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동료들은 무너진 석란정의 잔해 속에서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꺼냈지만 끝내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두 명의 동료를 떠나보낸 이후 석란정 화재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평소처럼 일에 열중하고 있지만 유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떠난 동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 한편에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으며 치료가 필요해진 사람들도 늘어났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강성준씨는 석란정 사고 이후 당장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견됐다. 그렇게 사고는 한 동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다른 동료에게는 장애를 가져왔다.

단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끝없이 마주쳐야 하는 시체들. 누군가의 고통과 아픈 사연들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소방관들은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영웅이어야 했다. 누군가를 구조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 아니, 강해 보여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곪아가는 마음을 상처를 붙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당장 죽음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헬기 조종사는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인명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한적한 풀밭에 헬기가 추락한 것은 죽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목숨을 생각했던 그들의 진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 EBS1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엄청난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고작 월 6만 원의 위험수당을 받으며 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있었던 구조헬기 추락사고. 당장 죽음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헬기 조종사는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인명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한적한 풀밭에 헬기가 추락한 것은 죽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목숨을 생각했던 그들의 진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많은 것을 보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영웅 소방관. 평생을 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나 감사한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짧은 화면을 보면서도 그저 안타까운 탄식만 나왔다.
 
응급상황으로 신고받고 달려간 현장은 알고 보니 집에 데려다 달라는 작은 요구였다. 안은 어떤 상황일까. 또 어떤 아픈 사연이 있을까 걱정하며 문을 개방해보니 아무도 없고 열쇠업체를 부르기 아까워 그랬다고 한다. 이 정도는 약과다. 출동하여 소방관이라고 인사를 하니 날아오는 주먹들. 구하기 위해 달려갔건만 날아오는 것은 욕설과 주먹, 해마다 늘어나는 구급대원 폭행 현황은 암담한 수준이다.
 
영웅이라 불릴 만했다. 고통을 참는 것에서. 부당함을 견디는 것에서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을 희생하면서 남을 구해주는 대가가 욕설과 폭행. 민원과 손해배상이라니. 장수말벌 집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출동했던 윤경석 대원은 70만 원이 안 되는 건초더미를 태웠다는 이유로 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받았다.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했던 그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손해배상을 했지만 결국 징계를 받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죠.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얼마나 마음에 트라우마가 있겠습니까."

방송에서 선문종 변호사는 “적법한 공무 활동이나 소방 활동에 대해서는 조직이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소방관이라는 영웅들을 지켜주는 것은 누구일까. ⓒ EBS1




허울뿐인 면책될 수 있다는 국가배상법. 실정과 맞지 않기 때문에 윤경석 대원과 같은 사람들은 남을 위해 헌신하고서도 때로 조직으로부터 보람이 아닌 무거운 질책과 책임을 지기도 한다. 방송에서 선문종 변호사는 "적법한 공무 활동이나 소방 활동에 대해서는 조직이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소방관이라는 영웅들을 지켜주는 것은 누구일까.
 
소방대원들은 말한다. 시민들의 작은 감사 인사들이 큰 힘이 된다고. 그나마 시민들이 주는 작은 마음들이 이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영웅들에게도 그들을 지켜줄 영웅이 필요하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 바로 온전하게 일할 수 있는 처우의 개선과 그들을 지켜준다는 믿음. 잊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오는 12월 1일부터 부산 시내의 소방관들이 현장 활동을 하다가 재산피해가 났을 경우에 시가 보상금을 대신 지원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허술한 법 대신에 지자체가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고통을 참아내며 우리들을 구해왔던 영웅들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의 날에 참석하여 소방관의 처우를 약속했던 것처럼 작게나마 우리를 지켜주던 영웅들을 지켜주자. 그들이 진정으로 구함에 힘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도 그들을 지켜야 한다.

덧붙이는 글 <다큐발굴단>을 통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재밌는 다큐들, 이야깃거리가 많은 다큐들을 찾아보고 더욱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소방관 영웅 다큐발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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