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를 자연스럽게 취급할 때 생길 수 있는 일들

'뚱뚱한 복수천사' 린디 웨스트의 세상을 향한 외침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등록 2017.11.24 09:01수정 2017.11.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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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브라로 자유롭게 활보하는 여성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자신의 말이 성희롱인지도 모르고 늘어놓는 작자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정작 나 자신은 실행하지도 못하면서.

안다. 얼마나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인지를. 그러나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페미니스트들의 공로를 날로 받아먹는 염치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성 평등과 여성 혐오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내 작은 세상 속에서나마 그것을 열심히 이야기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나마, 아주 작게나마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아니, 적어도 페미니즘에 재 뿌리는 자들의 편에 서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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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책표지 ⓒ 세종서적

나의 착각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는 내 안의 불합리한 편견과 오해를 가차 없이 마주하게 한다. 이 유쾌하고 신랄한, 그러면서도 결코 인간애를 버리지 않은 '뚱뚱한 페미니스트' 린디 웨스트에게, 나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부터 쭉 덩치가 컸던 그녀는, 그로 인해 병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접했던 대중매체들은 뚱뚱한 네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 엄마 아니면 괴물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며 그녀를 더욱 웅크리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은 물론,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대신 사회적으로 한없이 작아지기만을 갈망했던 그녀가, 어떻게 제 목소리를 찾아 세상을 향해 외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이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순 없다고 말하지만 이 생생한 고백은 책을 읽는 나를 매우 고무적으로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먹고 싶고,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오직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억눌렀던 그녀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마저 스스로 금기로 만들어야 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이 좋은 시절을 놓쳐버리고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스스로를 좋아하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결정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자신을 미워하는 타인의 손에 자신의 가치를 송두리째 맡겨버리는 실수를 해왔다는 깨달음. 그녀는 변화를 결심한다.


"나는 부자연스럽게 살기를 중단했다. 그렇게 살도록 가르쳤던 문화적 태도가 이제는 진정으로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몸이 하나의 기회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 몸은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움직이다니.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녀는 말한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는 분명 중요한 존재라고. 그런 그녀들에게 강요되는 마른 몸과 완벽한 외모라는 것은, 뚱뚱한 여자뿐 아니라 모든 여자들을 갉아먹고 망가뜨리는 잘못된 환상일 뿐이라고. 우리는 이 잘못된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필요성이 있다고.

"애초부터 게임은 공정치 않게 조작되어 있었다. 완벽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당당한 페미니스트가 된 그녀에게, 사람들은 질문한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라고. 그 안의 함의를 모른다고 할 사람은 없을 터.

그녀는 뚱뚱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낱낱이 드러낸다. 뚱뚱한 사람들은 식탐의 노예로 살아가는 무력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생각, 그들은 자신에게 뭐가 좋은지도 잘 모른다는 생각. 뿐인가. 그들을 어린아이나 중성적 존재로 취급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비만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분명히 한다.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피해야 할 것은, 그들을 척결하자는 주장을 하는 쪽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라고. 또한, 수치심은 결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것은 억압의 도구지 변화의 도구가 결코 아니라고.

그녀는 비만이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인데, 사람들은 학교 급식, 의료보장제도, 최저임금 등을 탓하기보다 개인의 책임을 요구하며, 그들을 조롱하고 비웃는다고 꼬집는다. 또한, 어떤 문제가 얽혀 그들이 비만이 되었든 간에, 비만 인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므로, 그들을 치유한다는 이름으로 조롱하고,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것은, 그들을 정서적·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정확히 지적한다. 이것이 복잡하다면, 좀 더 간단한 그녀의 촌철살인 한 마디도 있다.

"남의 일에 신경 끄세요, 헛소리 작작 하시고."

비만 인구, 특히 여성에게 강요되는 신체에 대한 강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생리에 대한 편견으로도 이어진다.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하고 많은 체액과 분비물 중에, 왜 우리는 생리만을 유독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취급해야 하는가.

"결국 혐오는 피 자체가 아니라 여성의 자연적인 몸을 향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주장한다. 우리가 생리를 자연스럽게 취급할 때, 남자아이들이 질을 혐오스러운 동시에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보다 많은 여성들이 병원에 가고, 자궁 관련 질환으로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더 나아가, 여성이 결점 있는 생식기를 지닌 하급 남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인간 존재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세상의 편견에 대해 소리치는 그녀의 방식은 매우 통쾌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하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세상의 긍정적 변화에 낙관적이며, 모든 사람을 향해, 심지어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게까지 연민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 중 다음의 두 문장은 꼭 기록하고 싶다.

"절대로 허구가 당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어린 병사들이여, 그저 삶 속으로 계속해서 전진하시라."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아무 의미 없는 세상의 편견에, 부디 지지 말라고.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법

린디 웨스트 지음, 정혜윤 옮김,
세종서적, 2017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린디 웨스트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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