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좀 더 먹었어도"... 위험에 처한 10대 여성 알바

눈칫밥에 근로계약서 생략도 여전... 청소년 알바의 다른 이름 '헬조선 체험판'

등록 2017.11.25 11:35수정 2017.11.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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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든 요즘, 생활고에 쪼들리는 것은 기성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위에 아르바이트 노동(아래 알바 노동)을 하는 친구 꼭 한두 명씩은 있는 게 요즘 10대다. 어느새 전체 알바 노동자의 8.6%(한국노동사회연구소 통계)를 차지한 10대 청소년. 그러나 높아지는 비율만큼 임금체납, 성추행 등 피해 사례도 다양해지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경험과 자립'의 의미가 아닌, '헬조선 맛보기' '헬조선 체험판'으로 자리 잡고 있는 10대 알바 노동. 10대 청소년 8명에게 알바란 어떤 의미이고, 그들의 노동환경은 어떠한지를 물어봤다.

청소년과 노동법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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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의 한 장면 10대 노동자들의 현실을 비춘 카트의 '태영' ⓒ 명필름


"근로계약서요? 그런 거 쓰고 일한 적 별로 없어요"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다수 인터뷰이의 답변이었다. 사연도 다양했다. 사정이 생긴 친구의 대타를 뛰어준 이후로 계속해서 일하게 된 경우부터 '근로계약서를 쓰면 이후의 법적 절차에 있어 (고용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고용주의 속 깊은(?) 걱정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그냥 안 써줬다'는 것이었다. 문수현(18, 가명)씨는 "근로계약서를 왜 안 써주시냐고 물어보기가 좀 그렇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성격이) 좋고, 다른 사람들도 안 쓰니까 나만 물어보기는 좀 불편하다"라며 근로계약서를 쓰는 데 한계가 있음을 털어놨다.

근로계약서를 안 쓰니 임금 체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남규(18)씨는 "주유소에서 알바를 할 때 (사장이)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부터 빨리 하자고 재촉했다. (일을) 끝낸 후 약 5만 원의 돈을 더 받았어야 했는데, 근로계약서를 쓰지 못해 돈을 받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휴수당, 휴게수당, 이런 것들도 저랑 같이 일하던 20대 형들한테는 줬는데 나한테만 지급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기자와 만난 알바 청소년 8명 중 자신이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추가수당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53.2%, 그중에서도 이를 '잘 이해한다'고 답한 청소년의 비율은 39.8%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하람(18)씨는 "주휴수당, 휴게수당은 알바 현장에서 필수가 아닌 '옵션'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지호(18)씨도 "추가수당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못 받는 사례가 대다수"라며 추가수당을 물어봤다는 이유만으로 채용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2014년)에 따르면 31.9%의 청소년이 임금 관련 부당처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10명 중 3명, 냉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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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18) 씨의 월급 기록표 일하던 편의점에서 박지호 씨가 받아야 할 돈을 적은 기록표. 여전히 못 받은 돈들이 많다. ⓒ 박지호


허락받아야만 하는 '인권'

언제 어디서 일을 하든 휴식과 식사는 필수다. 하지만 10대 알바생에게는 그것 또한 자유롭지 않았다.

오후 5시 반, 김소영(18)씨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매장으로 향했다. 오후 6시까지 알바 사업장에 도착해야 했고 사장님께 양해를 받아놓은 상황이었지만 사장님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늦는다고? 나는 괜찮은데 여기 매니저 언니 무서우니까 알아서 해"라며 이를 방관했다.

가까스로 오후 6시에 맞춰 도착했지만,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고려해 5시 50분까지는 와야 했다는 매니저의 욕설 섞인 말만이 그녀에게 돌아왔다. 소영씨는 결국 그날 식사를 하지 못했다. 심지어 식사시간을 5분밖에 주지 않았던 다른 가게에서 그녀가 들어야 했던 말은 이랬다고 한다.

"밥을 몇 시간째 먹어? 사람들 일하는 거 안 보여? 너만 생각해? 그렇게 일하려면 나오지마
!"

매주 주말, 한 분식집에서 일하던 이경환(18)씨는 어느 날 자신이 일하던 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번 주부터 일 안 나와도 돼. 사장님 딸이 대신 하기로 했어." 갑작스러운 해고였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경환씨는 말했다.

이처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당해고 사례 또한 적지 않다. 광주광역시 의회에서 실시한 2017 청소년 노동인권 의식 및 실태조사에 응한 청소년들의 23.7%가 이러한 부당해고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경환씨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일을 하던 (20대) 형은 훨씬 오래 일했다"라면서 부당해고의 대상이 소위 '만만한 10대'를 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네가 몇 살만 더 먹었어도"... 위기의 10대 여성 알바 노동자

10대 알바 노동자들이 겪는 고충은 선임과 고용주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손님으로부터의 폭언 그리고 일부 손님들의 '진상짓' 또한 인터뷰이들이 지적한 공통적인 문제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를 이뤘던 것은 바로 알바 노동자를 향한 성희롱 발언이었다. 최하람(18)씨는 "(성희롱적 발언을) 직접적으로 듣진 않았지만, 알바를 그만두고도 (매니저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네가 몇 살만 더 먹었어도..."라는 등의 발언이 오간다고 전했다.

김소영(18)씨도 "바지를 짧게 입었을 때, 몸을 (눈으로) 쓱 흝는다. 기분이 나쁘지만 말할 수 없었다"라며 노동현장 속에서 소위 '시선강간'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했던 류호철(18)씨 또한 "실제 노동 현장에서 진상짓의 목표가 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라면서 "여성 근무자들이 점장의 치근덕거림에 대해 많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3년 전, 서울시여성가족 재단은 10대 노동자들의 70% 이상이 성희롱의 경험이 있음에도 참고 일하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여전히 10대 알바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성희롱과 성추행은 일상, 당연한 것, 참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 "알바에 대한 차별 + 청소년에 대한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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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조 대변인 최기원 씨 알바노조에서 대변인으로서 활동 중인 최기원 씨. 아르바이트 노동 중 문제가 생기면 1800-7525(알바상담처)로 연락할 수 있다. ⓒ 부석우


알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동상담과 기자회견, 단체교섭 등을 진행하는 알바노조의 최기원 대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소년들의 부당대우 사례도) 간간히 들오고 있고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지만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청소년들이 알바 노동에서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기 힘들다.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은 맞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아직 없다"라고 밝혔다.

"청소년들을 향한 차별이 굉장히 심하다. 노동으로조차 보지 않는 시각이 매우 큰 것 같다. 알바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 중첩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이 학생이고, 자율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 이들을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최기원 대변인은 "(10대 청소년) 모두가 한 명 한 명의 사람이며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충분히 맞서 싸울 권리가 있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에 응한 8명의 청소년 중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이 인터넷, 기타 기관에서의 교육이 전부였을 뿐 그 이상은 경험하지 못했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알바 노동에서 자신이 겪은 불이익을 말할 수 있는 곳도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인터뷰를 진행한 8명의 청소년 모두 노동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도 사람이다'라는 당연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국가에서, 문제 해결의 책임은 어느새 청소년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몫이자 짐으로만 남아버린 것은 아닐까.

자신이 맞닥뜨린 부조리에 맞서 '노력'을 강요당하는 것, 어느새 10대의 알바 노동현장으로마저 담습한 10대의 '헬조선'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승(17, 가명)씨의 말이 지금 청소년 노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동법 교육도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학생들이 계약서를 어떻게 체결해야 하고, 얼마나 돈을 받아야 하는지를 넘어 (윗사람에게) '무조건 죄송하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알려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이번 기사를 쓰는 데 있어 도움을 주신 김소영, 류호철, 문수현(가명), 박지호, 안남규, 이경환, 전현승(가명), 최하람, 알바노조 대변인 최기원 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르바이트 #10대 알바 #알바노조 #부당처우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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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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