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정원에 못간 이유, 어휴 다행이다

[공무집행방해: 마케터의 공무원 적응기④] 나라면 MB 멱살을 잡았을 텐데...

등록 2017.11.21 17:03수정 2018.01.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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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기사 수정 : 2018년 1월 15일 오전 10시 21분]

#박 사장님 나이스샷!

요즘 다스(DAS) 주인 찾기가 한창이다. 그리고 적폐청산이라는 키워드는 요즘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단연 국가정보원의 음흉한 짓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뉴스를 뒤덮고 있다. 오죽하면 뉴스의 시청률이 드라마의 시청률보다 높겠는가! 그 와중에 드디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9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했다.

박 사장님 나이스샷!(실제로 우린 시장님을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국정원에서 작성한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으로 인해 서울시 정책 실행 과정에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고소·고발이다. 실제로 시청에 근무하게 되면서 그 문건을 볼 수 있었다. 그 문건이 작성될 때만 해도 나는 '박원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의 시정을 응원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그 문건을 보다보니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적 자원을 이렇게 활용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황당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건이 작성될 시절에 나는 국정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었다는게 나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공시생 신영웅

당시의 난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에 목매던 시절이었다. 방송국 공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이명박 정권)엔 야속하게도 방송국 공채가 잘 뜨지 않았다(언론이 죽어 있는데 새 피를 수혈하면 뭘 하겠는가! 그럴 수밖에!). 그렇다 보니 어린 마음에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노량진 대신 종로를 택했다. 기왕 하는 거 국정원에 들어가 큰일(?)을 해보고 싶다는 귀여운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종로엔 국정원 입시 전문 학원이 있었다.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이라 국정원 필기 시험과 과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종로를 택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게다가 당시 '아는' 형이 내가 국가유공자 자녀임을 알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참고로 그 형은 생활문화연구소 직원(!)으로 나와 같이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받았다. 당시 그 형은 국가장학금으로 연수 중이었다. 형을 보면서 살짝 자신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형님 죄송합니다ㅋ).

사실 공부해야 하는 과목은 재미있었다. 막스 베버부터 시작해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플레밍까지 살아가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학문을 개론 수준까지 공부해야 했다.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묘한 희열을 느꼈다. 이는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고 은근히 고시생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꼭 국정원의 멋진(!) 요원이 되고 싶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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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국정원) 전경 ⓒ 남소연


국정원 시험은 논술이 크게 좌우한다고 했다. 꽤 좋은 대학의 학생들이 몰리기에 점수 편차가 크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글쓰기는 내가 가진 재주 중 그나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했기에 오히려 걱정이 없었다. 학교 다니면서도 논출 첨삭 과외도 하면서 하숙비를 냈다. 처음 학원 관계자와 상담을 할 때도 서로가 큰 기대에 차 있었기에 논술이 문제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내게 희망을 줬다.

"영웅 학생 프로필을 봤는데요. 솔직히 학교 레벨이 살짝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머지 요건들이 커버할 수 있는 조건이라 해볼만 하겠어요. 지금부터 학점 관리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결국 논술이 좌우할 텐데... 음, 국문과랬죠...?"

어쩌면 찾아온 모두에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 내게 달콤하게 들렸던 그날의 상담은 내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해줬다.

#예상치 못한 난관, 논술

그런데 막상 시험을 준비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벽을 만났다. 바로 논술이었다. 이 학원은 학원장이 직접 논술지도를 해준다. 게다가 그는 국정원 간부 출신이다. 이보다 훌륭한 조언자가 있을까? 그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논술 첨삭을 받으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다. 첨삭 내용을 요약하면 딱 하나다. 당시 원장이 알려준 국정원이 좋아하는 논술 기조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필연적이므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일부 국민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안고 가야 한다'였다.

첨삭 내용을 바탕으로 글의 논조를 180도 틀어야 했다. 내가 쓰는 글은 항상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자. 그리고 만약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게 약자는 아니었으면'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희생의 대상에 대해 항상 불만이었다. 결코 내가 가진 것을 잃기 싫은 개인적인 생각의 확장은 아니었다.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국가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짧은 식견이었지만 마음으로 써내려 갔었다(이는 대기업의 홍보실 직원이었을 때도, 현재 시청에서 서울시를 홍보하는 일을 할 때도 이런 국가관은 유효하다).

"역사적으로 되짚어볼 때 사회 전체적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사회적 약자들은 피해를 강요받았다. 그리고 그 달콤한 열매는 희생을 감내했던 이들보다 아닌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이 돌아갔던 것은 아닌지 국가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러한 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는 개인의 자유가 침해 받지 않는 선에서 개선되어야 하며, 또한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희생되어 가는 것에 우리는 더 부끄럽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공무원이라면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은 이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거나, 못본 체 하다 보니 '강요 받은 희생의 악순환'이 축적되어 권력과 재산, 정보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결국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 사이에 괴리감이 생겼다."

위와 같은 생각들이 내가 작성한 모든 논술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논술을 심화시켜 나가다 보니 원장은 난색을 표하기 일색이었다. 원장이 나에게 '진보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했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과 함께 일하는 지금도 내게 누가 물으면 나는 당당히 '보수'라고 말한다.

점점 학원에 가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특히 논술 수업이 있는 날은 학원을 빼먹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개월을 버티다 더이상 종각역으로 가는 1호선을 타지 않았다. 그곳에는 내가 생각한 정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여기엔 장밋빛 미래가 없다고 판단됐다.

#국정원, 솔직히 못간 게 맞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가 못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야'라는 생각이었다. 인생에서 (수능을 빼고) 여느 시험에서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시험 운이 좋고 시험에 강하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그런데 막상 글을 써내려 가며 차분하게 생각해 본다. 과연 못간 것일까, 안간 것일까?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볼수록 안간 게 아니라 못간 게 맞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들은 똑똑하게 말 잘 듣고 대의(?)를 따를 줄 아는 애들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는데, 그들의 기준에 나는 말을 잘 듣는 애도, 대의를 따를 줄도 모르는 아이였을 것이다. 결국, 자격미달. 탈락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댓글달기를 참 못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결격사유가 아닐까?

#박원순, MB를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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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박원순 서울시장. ⓒ JTBC 갈무리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가? 그렇게 10년을 돌고 돌아서 결국 난 공무원이 돼 있다. 앞서 논술에 밝힌 마음가짐을 간직한 채 서울시장의 미디어비서관으로 서울시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9월을 잠깐 떠올려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하고 그날 저녁에 사장은 JTBC 뉴스룸에 앉아 있다. 그리고 손석희 앵커와 함께 앉아 있다. 그의 표정을 바라본다. 그는 지난 10년 가까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자기 아들과 딸이 음해당하고, 하는 일마다 족족 훼방을 당했다. 그리고 어버이연합의 인신공격으로 무장한 시위를 견뎌내야 했다. 이를 통해 각종 루머가 양산되고 '욕쟁이 아저씨 이미지'까지 생겨버렸다.

정치고 뭐고, 시장이고 뭐고 제압문건을 본 순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서 멱살잡이라도 했을 거다. 현재 내 수준은 딱 그 정도 밖에 안된다. 아니 더한 짓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뒷일 생각 안하고 그냥 MB의 뒷통수를 날렸을 것 같다. 가슴 속에 터질 것 같은 분노는 감히 상상할 수도, 하기도 싫다.

손석희 앵커가 질문을 하고 우리 사장이 드디어 입을 뗀다. 표정이 상기돼 있다. 그는 솔직히 억울한 걸 그 자리에서 다 털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 길고 긴 싸움에 자신이 최전선에 설 것을 다짐한다.

#정치인의 사명

후우, 나는 여전히 그날만 떠올리면 아직도 부들부들 쉬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장의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으로서, 지도자로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게 내가 요즘 접하는 '정치'라는 것이니까.

같이 일하는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은 자신의 분노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분노를 대신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좋은 말이고, 이해도 간다. 그래야 한다고 동의한다. 그런데, 그런데...

그를 보고 있자니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물론 그가 택한 길이고 그가 견뎌야 할 무게일 테지만, 대신 울어주고 싶고, 대신 화를 내주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가신이나 측근은 아니다. 서로의 인생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한 사이도 아니다. 그냥 종업원이고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꽤 쓸모 있고 유용한 구성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분노가 일어난다면 정작 본인이나 가족의 아픔은 어느 정도일까?

선배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국 나는 훌륭한 참모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국정원에 못갔나 보다. 그 사실이 오늘처럼 다행으로 느껴지는 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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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 방문을 마치고 지난 15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신영웅님은 'Uncreative Director, 서울시장 비서실 미디어 비서관'입니다. 이 글을 포함해 신영웅 비서관의 다른 글 역시 필자의 브런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국가정보원 #국정원 #박원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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