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정치보복'? 홍준표 대표 그러다 큰일난다

[주장] 적폐청산 끝날 때까지 '촛불혁명' 끝난 것 아냐

등록 2017.11.20 19:00수정 2017.11.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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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하라!" 시민들 사이에 태극기 지난 2016년 10월 29일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마친 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의문투성이 사회다. 온갖 종류의 의혹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갖가지 형태로 터져나온다. 모든 게 미궁에 빠져 있다. 하기야 우리 대한민국이 '스릴러 공화국'이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하니 마치 '스릴과 서스펜스!'로 장식되곤 하던 예전 영화광고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성싶다.

예컨대 '과연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인가', '그 후보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인가', '자진사퇴할 것인가', 또는 최근 그 정점을 찍은 사례로 손꼽히기도 했던 '마침내 탄핵판결이 내려질 것인가' 등등, 우리 국민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카운트다운형 사안들로 넘쳐나는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인 불안, 초조, 긴장감, 아슬아슬함으로 쉴 틈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살맛 날 정도로 대단히 흥미진진한 낌새가 없진 않지만, 허망하게도 늘 속절없음과 막막함으로 마감을 보는 형편이니 김빠지기 일쑤다.

물론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는 지금 하버드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세계적 필명을 떨치던 갤브레이스 교수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를 전형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세상만사가 인간의 보통 지혜에 힘입어 그런 대로 곧잘 속편하게 이해되곤 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역설한다.

바로 우리가 지금 갤브레이스 교수의 주장처럼,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원리'를 나 몰라라 하고 오로지 '인간의 탐욕'에만 모든 걸 내맡기는 정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스릴러 공화국'답게, 현재 대한민국은 합리적인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혼돈과 막가파식 '막가이즘'이 지배하고 있다. 의혹백화점이다. 원칙이 없고 기준이 없고 신뢰가 없다. 내려놓을 닻이 없다. 모든 게 하염없이 표류하기만 한다. 그러므로 각종 의문과 의혹이 이어달리기 식으로 줄지어 떠오를 수밖에 없음 또한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스릴러' 공화국 대한민국

오랫동안 쌓여온 잘못된 폐단이 있다면 그걸 제거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마냥 방관하는 게 바람직할까? 국민의 눈으로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른바 '적폐청산(積弊淸算)' 문제를 둘러싸고 온 정치권이 시끄럽기 짝이 없다.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현상으로 비쳐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적 정무목표라 선포한 바 있던 소위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탓일까... 게다가 왜 하필 '전전대통령'만을 조준하고 있느냐는 볼멘 소리까지 가세한다. 의당 전전전(前前前) 정권, 요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단두대에 세워야 온당하다는 반격이 또 그에 힘을 합친다. 자연스레 '스릴러 공화국'의 전매특허인 의문 이어달리기가 가열차게 줄을 잇는다. 이러다가 자칫, 이렇게 되도록 애초에 우리를 잘못 만들어놓은 단군 할아버지까지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럽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보복'이란 손가락질이 또 요란스레 터져나오고 있다. 그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대단히 상식적인 의문이 세차게 꿈틀거린다. 만약에 누군가가 '일제잔재를 청산하자'거나 '친일파를 처단하라', 또는 '불우이웃을 돕자'고 외친다면, 이 또한 '정치보복'이라 난타하지는 않을까? 정치보복이란 꼭 나쁜 것일까? 도대체 정치보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쁜 놈 혼내는 걸 혹시나 보복이라 우겨대는 건 아닐까? 온 국민이 서서히 철학자가 되어가고 있다. 잘 하면 대한민국이 소크라테스 공화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총인원 1700만 명이 들었던 촛불 시민들의 바람은 한마디로 적폐청산, 그 자체였다. 또다시 번거롭게 되풀이할 필요도 없이, 무엇보다 국정농단을 야기한 각종 공작정치, 특히 블랙리스트 작태, 국정원 및 군의 불법적 정치개입 사건 등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골자였다. 특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에 의해 저질러진 각종 비리는 거의 국기문란의 수준에 해당하는 심각한 적폐 아니겠는가.

촛불의 명령은 '적페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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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즉각 퇴진하라! 지난 2016년 12월 3일 서울 광화문일대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촛불시민은 한마디로 불공정 특권구조를 혁파함으로써 올곧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수립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폐청산이 끝날 때까지 '촛불혁명'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 외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촛불혁명의 직접적인 소산인 문재인 정부는 원천적으로 적폐청산의 지엄한 국민적 소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국민은 각종 적폐의 청산, 헬조선, 민생고, 양극화, 불평등 등의 해소를 통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매진하라는 역사적 임무를 준엄하게 문재인 정부에 부여한 것이다.

촛불을 들었던 우리 국민은 모두가 다 진정한 국민통합과 화합을 위해 참다운 적폐청산이 급선무라 확신한다. 말하자면 철저한 적폐청산 없이는 결코 민주적 정치질서의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는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철저한 적폐청산이야말로 민주주의 확립의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적폐청산은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이나 처벌에 국한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부당하고 불공정한 특권 구조 자체를 혁파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규탄하고 있다. 무엇보다 '방귀 낀 놈 성낸다'는 말처럼, 자신들의 범죄를 물타기 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반발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물론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곤욕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 보수결집과 보수개혁의 동력이 절실히 요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이러한 경우 외부에 공동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내적 단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는 대단히 장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정치적 술책에 속한다. 이에 따라 보수야당은 '정치보복' 슬로건을 내걸며, '야당을 다 죽이려 한다. 국민 여러분! 우리를 살려주사이다' 하고 목을 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또 심판대에 서려는가?

하지만 '적폐'라는 용어는 문재인 정부 고유의 창작물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뜻하는 적폐 개념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용하던 '적폐 해소'란 화법을 문 정부가 보다 엄정하게 '적폐 청산' 구호로 발전시켰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적폐해소라는 어법은 박근혜 집안의 전통적인 가풍에 속하는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박정희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제 발 저린 도둑'이 엄청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과업에 대해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삿대질한 바 있다.

하지만 보수야당의 이러한 입장과는 반대로 만약에 적폐청산을 올바른 시책이라 간주한다면, 최소한 해방이후 지금까지 모든 정부는 도대체 무얼 했다는 말인가? 적어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모두를 직무유기죄로 고발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이 계속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훼방놓는다면, 이들 또한 박근혜-최순실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가혹한 역사적 심판정에 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비극적인 우려가 앞섬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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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 정민규


다른 한편 개혁은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 둘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보수적 개혁은 이미 선포는 되었지만 아직 확립은 되지 못한 기성 가치체계를 온전히 현실화하고자 힘쓴다. 다른 한편 진보적 개혁이란 기존질서를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개량해나가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움직임 같은 것이다.

어쨌든 지금 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은 한마디로 보수적 개혁이라 이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있던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를 이제 제대로 본 궤도에 올려놓고자 하는 그런 유형의 개혁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개혁이 보수와 진보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개혁 추진세력 역시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동시다발로 공략 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두 개의 전선(戰線)을 한꺼번에 맞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혁은 수구(守舊)나 혁명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장애에 부딪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회를 놓칠새라 또다시 속절없이 등장하는 정치적 피에로가 있으니, 그 고성대명 다름 아닌 홍준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적폐청산 작업을 "망나니 칼춤"이라 욕질해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안타깝게도 "은인자중 하다가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5․16 쿠테타를 도발하며 이른바 '혁명'공약이란 걸 발표한 박정희를 잊은 듯하다. 이 공약 셋째 항은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라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구악일소' 공약이야말로 바로 박정희 표 '적폐청산' 그 자체 아닌가!

그렇다면 홍준표 대표가 가장 존경해마지 않는 박정희는 사실 '원조 망나니'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자신이 한없이 떠받드는 '위인'을 망나니라 삿대질해도 과연 무방할까? 모든 게 자유롭다. 홍준표 역시 '자유'한국당 대표로 손색이 없는 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에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제2의 박정희'라 불러도 하등 손색이 없을 성싶다. 홍 대표는 아마도 속으로는 문 대통령을 박정희 못지 않게 존경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치인의 자질과 품격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치인의 자질과 품위와 격조를 되찾는 일인 듯하다. 우리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이젠 특히 인터넷을 통해 금세 국제적 가십으로 손쉽게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의 언행에 이르면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홍 대표는 이제 무책임하고 무근거한 막말을 뻥튀기 해대는 정치적 어릿광대 노릇을 그만 둘 때도 되었다. 무엇보다 국격과 국익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 정치판에도 '신사'가 등장할 수 있을는지...

예컨대 19세기 후반 영국에는 서로 앙숙지간이었던 두 거물 정치인이 있었다. 바로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톤이 그들이다. 둘 다 수상을 지내긴 했지만 앞사람은 보수당 소속이었고, 뒷사람은 자유주의자였다.

한번은 어느 기자가 디즈레일리에게 "불운(不運)과 재난(災難)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하는 적잖이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지자, 그는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이를테면 글래드스톤이 테임즈 강에 빠졌다고 하면 그것은 불운이라 할 만하오. 그러나 만약에 그가 강물에서 구출된다면, 그것이 곧 재난이 되는 법이오."

이들,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톤은 매우 대조적인 정치가였다. 그들은 치열한 정적으로서도 후대까지 이름을 남겼는데, 당대의 한 사교계 여성은 두 인물을 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두 분이 저를 하루의 시차를 두고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저는 글래드스톤 수상을 만났는데, 그분과 헤어질 때 나는 그분이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디즈레일리 수상과 헤어질 때는 제가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양인들의 후일담이긴 하지만, 어느 편이 바람직한 정치인 상을 보여주고 있을까? 우리의 홍준표 대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다면, 어떤 응답이 나왔을까?
덧붙이는 글 박호성 기자는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입니다.
#적폐청산 #정치보복 #홍준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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