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람들의 '몹쓸' 흔적, 미안합니다

[안면도 뒤안길] 부끄러움과 행복이 교차했던 두에기해변

등록 2017.11.21 14:10수정 2017.11.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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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에기해변에서 밧개해변 쪽으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릴 그렇게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잇따라 올라가지도 않지만 내리 평탄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 김학현


올라갈 수 있는 게 산의 매력입니다. 골짜기가 깊고 아름다운 산일수록 힘겹게 올라가야 정상에 이릅니다. ⓒ 김학현


(이전 기사 : 오늘 내가 걷는 길이 틀리면서도 맞는 이유)


올라갈 수 있는 게 산의 매력입니다. 골짜기가 깊고 아름다운 산일수록 힘겹게 올라가야 정상에 이릅니다. 우리는 '골짜기가 깊으면 산도 높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렇습니다. 밧개해변에서 두에기해변 쪽으로 가려면 자그마하지만 가파른 언덕 하나를 넘어야 합니다.

헉헉. 숨을 헐떡이며 올랐습니다. 너무 빨리 두에기해변을 보려는 욕심 때문에 좀 넘쳤나 봅니다. 언덕만큼이나 숨이 가팔라지는군요. 평평한 길도 좀 있긴 했지만 다시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긴 등산은 아니지만 숨을 몰아쉬지 않으면 오르내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난 두에기해변, 과연 숨을 몰아쉬고 넘은 보람이 있습니다. 장관입니다.

우리는 줄곧 평탄한 길을 걷길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릴 그렇게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잇따라 올라가지도 않지만 내리 평탄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뭇 환상에 빠져 있죠. 평탄할 거라는. 평탄하기만 하다면 그것 자체를 행복으로 느끼지 못할 겁니다. 성취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언덕배기 하나 넘었을 뿐인데 눈에 들어 온 두에기해변은 고생한 보람 이상의 풍경을 안겨줍니다. 아직까지의 안면도 해변들과는 영 다릅니다. 아주 작습니다. 앙증맞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다양하기도 하고요. 몽돌밭, 서덜길, 고운 모래밭 그리고 외로운 촛대바위(임의로 붙인 이름), 일렁이는 파도와 한가로이 떠다니는 갈매기떼들까지.

오르막이 있어야 정상도 있어


헉헉~ 숨을 헐떡이며 올랐습니다. 너무 빨리 두에기해변을 보려는 욕심 때문에 좀 넘쳤나 봅니다. 언덕만큼이나 숨이 가팔라지는군요. ⓒ 김학현


작은 언덕배기 하나 넘었을 뿐인데 눈에 들어 온 두에기해변은 고생한 보람 이상의 풍경을 안겨줍니다. 아직까지의 안면도 해변들과는 영 다릅니다. 아주 작습니다. 앙증맞습니다 ⓒ 김학현


우리는 오르락내리락 하며 인생의 길을 걷다 보면 행복과 고통이라는 변화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새새 행복감을 느끼게 되죠. 굳이 아인슈타인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상대성이라는 게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게끔 만들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잖아요. 오르막이 없으면 내리막은 물론 정상도 없죠.

올라갈 때는 하체근육을 발달시킴으로 엉덩이 힙업은 물론 퇴행성관절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심폐기능이 향상되어 폐활량도 늘어나고요. 오르는 게 힘들지만 건강에는 도움을 주죠. 인생의 오르막길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어떤 역경과 어려움이 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은 자그마한 인생의 오르막길을 제대로 오른 이들의 것이 아닐까요.

좀은 거창하게 글이 나가네요. 자그마한 언덕 하나 넘었을 뿐인데, 이리 장황한 인생론이라니. 하여튼 그렇게 헐떡이며 올라갔다 내려가니 신세계가 반기는군요. 두에기해변에 다다릅니다. '밧개'라는 이름도 그렇고 '두에기'라는 이름도 그렇고 뜻은 모르지만 참 정겨운 이름들입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간직한 지명입니다.

뜻을 알아보려 애썼지만 도무지 헤아릴 방법이 없네요. 다만 알아낸 것은 동네 이름이라는 것뿐입니다. 동네 이름치고 참 곱지 않나요. '밧개' '두에기', 우리네 마을 이름은 참 정겨워요. 짧지만 고된 등산 후 만난 두에기해변은 아기자기한 멋으로 탐스럽습니다.

태안의 해변길 중 안면도 노을길에 있는 다른 해변들보다 작은 해변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면에서는 어떤 해변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몽돌과 서덜길, 고운 모래…. 바다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지고 있습니다.

숨을 몰아쉬고 언덕배기를 넘어 다시 가파른 언덕을 내려갔을 때 만난 작은 나무배 하나, 이걸 사람이 탔을까 싶습니다. 두에기해변 만큼이나 앙증맞습니다. 한 명이나 겨우 앉았을까 싶은 배가 동그마니 산 밑에 누워있습니다. 그래도 어부는 이 배에 의지하여 고기잡이를 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생의 진한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하군요.

감당하지 못할 고난은 없어

두에기해변에서 방포해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걸려 있는 성경구절 한 구절, 반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날 몰아치는군요. ⓒ 김학현


두에기해변은 몽돌과 서덜길, 고운 모래... 바다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가지고 있습니다. ⓒ 김학현


한 명이나 겨우 앉았을까 싶은 배가 동그마니 산 밑에 누워있습니다. 그래도 어부는 이 배에 의지하여 고기잡이를 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생의 진한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하군요. ⓒ 김학현


두에기해변은 인생 공부는 여기서 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들게 만듭니다. 고된 등산 없이는 이를 수 없다는(물론 차를 타고 두에기해변 가까이에 있는 펜션까지 가는 길도 없지는 않습니다) 교훈에서부터 그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고난과 다양한 삶의 형태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무리 무명의 삶이라도 어느 인생에 고난이 없고 희비애락이 없겠습니까. 나의 이런 인생론과 두에기해변의 가르침에 결정적인 한 수를 둔 것은 성경구절이었습니다. 두에기해변에서 방포해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걸려 있는 성경구절 한 구절, 반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날 몰아치는군요.

4코스
실족의 골짜기 : 실족하기 쉬운 길이지만 공동체와 함께라면 넘을 수 있는 골짜기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장 13절)

두에기해변의 표지판 기둥에 이렇게 쓰인 '그들만의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코팅을 했을 터인데 오래돼 안으로 빗물을 머금은 채.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훈련을 한 흔적입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반가운 이유는 여기서 성경 구절을 읽다니, 하는 것 때문이고, 부끄러운 건 어느 공동체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몹쓸 흔적을 남겨놓고 가다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인 내가 보아도 민망하다면 다른 사람들, 특히 논크리스천이 보면 얼마나 비상식적이라고 할까 부끄러웠습니다. "실족하기 쉬운 길이지만 공동체와 함께라면 넘을 수 있다"는 표현은 옳은 말입니다. 성경구절 또한 구구절절이 옳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옳은 표현과 바른 성경구절을 여기에 붙인 이들은 절절히 그릅니다. 성경의 진리를 구구절절이 짓밟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옳은) 진리는 듣되 그들의 (나쁜)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들만의 흔적'을 보며 나도 독자들께 그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크리스천을 대표(누가 대표로 세워준 건 아니지만)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이래저래 두에기해변은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모두 교육의 현장입니다. 내가 걷는 해변길은 모두가 진리의 현장입니다. 배우므로 행복합니다. 느낌으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행복합니다. 또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 더 행복합니다.

두에기해변의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몽돌밭, 서덜길, 고운 모래밭 그리고 외로운 촛대바위(임의로 붙인 이름), 일렁이는 파도와 한가로이 떠다니는 갈매기떼들까지. ⓒ 김학현


두에기해변에서 밧개해변으로 가는 입구, 자그마한 언덕 하나 넘었을 뿐인데, 이리 장황한 인생론이라니. 하여튼 그렇게 헐떡이며 올라갔다 내려가니 신세계가 반기는군요. ⓒ 김학현


덧붙이는 글 [안면도 뒤안길]은 글쓴이가 안면도에 살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계속 함께 해주세요.
#안면도 뒤안길 #안면도 노을길 #두에기해변 #태안 해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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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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