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도 "갔다왔느냐"고 묻는다는 그 연못

경남 진주시 금호지(금산연못)... 일출·일몰 때 산책하면 장관

등록 2017.11.25 19:29수정 2017.11.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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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금산면 금산연못(금호지) ⓒ 김종신


고슬고슬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머리를 맑게 한다. 덩달아 걸음을 바삐 옮길 수 없었다. 경남 진주시 금산면 '금호지'보다는 '금산연못'이 더 친근한 나는 지난 20일, 걷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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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연못을 산책하는 시민들 ⓒ 김종신


'금호지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못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질정화용 부레옥잠도 갈색빛을 띄우고 잠들었다. 주차장 한쪽에 인근에서 농사지은 채소 등을 팔려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햇살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외상도 받아준다는 무인판매대에 이르자 진주 정씨 재실인 계양제로 해서 월아산 국사봉으로 가는 길과 연못가 둘레길이 나온다.


어릴 적 시내버스를 타고 소풍으로 놀러 왔을 때를 떠올리며 연못 둘레길을 걸었다. 수줍게 발그레해지는 계절의 깊이를 느끼며 차근차근 걸음을 옮겼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2시간 거리의 국사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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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보라빛 작살나무 열매가 햇살을 품었다. 봄내 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녀석의 겨울눈이 내게 용기를 건네준다. ⓒ 김종신


햇살이 드는 자리에서 멈췄다. 밝은 보랏빛 작살나무 열매가 햇살을 품었다. 봄내 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녀석의 겨울눈이 내게 용기를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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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연못을 가로지르는 소망교 ⓒ 김종신


며칠 전에 개통식을 가진 '소망교'가 나온다. 소망교와 맞닿은 곳에는 지상2층, 전체면적 170㎡ 규모의 화장실과 휴게쉼터가 있다. 쉼터는 아직 문이 닫혀 있다. 쉼터 아래로 수변 데크로드가 놓여 있지만 옛길로 연못가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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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연못 소망교 쉼터 아래 버드나무 옆에 풍화가 심하고 이끼가 많아 글씨 알아보기 힘든 비가 두 개 나온다. 퇴계 이황 선생의 시비다. ⓒ 김종신


버드나무 옆에 풍화가 심하고 이끼가 많아 글씨 알아보기 힘든 비가 두 개 나온다. 왼쪽의 금산연못 퇴계 이황의 시비는 1829년(순조 29) 도계 이희영(李禧榮)이 금호지(琴湖池) 동쪽에 돌로 쌓은 축대(금호대)를 지어 시비를 세웠다. 이후 축대는 파손되어 서쪽 둑에 이전하였다가 이희영의 아들 이수용이 1907년 현재 위치로 옮기며 '도계 이공 금호대 유적비'를 만들어 퇴계선생 시비와 나란히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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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연못에 있는 퇴계 시비. ⓒ 김종신


32살의 청년 퇴계 이황 선생은 1532년 겨울 저명한 학자인 곤양군수 관포 어득강으로부터 지리산 쌍계사 유람하자는 초청장을 받았다. 선생은 설레는 마음 안고 1533년 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출발했다. 곤양 가는 길에 예천, 성주, 상주, 마산, 창원, 의령, 함안을 거쳐 진주 관내에 도착한 때는 3월 26일이었다. 월아산 청곡사와 촉석루를 둘러본 뒤 곤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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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년 퇴계 이황 선생이 여행 하던 중 3월 26일 진주에 이르러 시를 남겼다. 선생의 시비. ⓒ 김종신


金山道上晩逢雨(금산도상만봉우-금산길 지나다가 늦게 비를 만났더니)

靑谷寺前寒瀉泉(청곡사전한사천-청곡사 앞 쏟아지는 물이 차기도 하다)

爲是雪泥鴻跡處(위시설니홍적처-세상사는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같아)

存亡離合一潸然(존망이합일산연-생사와 이합에 눈물이 한껏 흐르네)

퇴계 선생의 시비에 관한 안내판 하나 없다. 시비 위로는 금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지나가 그냥 버려진 듯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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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못은 둘레만 5km로 굴곡이 많아 한눈에 못의 전부를 볼 수 없다. ⓒ 김종신


다시 위로 올라가 연장 86m, 폭 3.5m로 조성된 소망교를 건넜다. 1.4m의 강화유리로 난간을 설치한 다리 중간에서 달음산이라고도 하는 '월아산(月牙山)'을 바라보았다. 봉긋 솟은 여인의 젖가슴 같은 월아산 두 봉우리인 국사봉과 장군대봉 사이로'휘영청 둥근 달을 토해놓는 풍경이 아름다워 아산토월(牙山吐月)' 이라 했다.

금산 못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 때 형성된 자연 못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눈에 못 전체를 다 보지 못할 만큼 크다. 전체 면적 20만 4937㎡의 금산못은 평균 수심 5.5m지만 워낙 깊어 명주실구리 3개가 들어갔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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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못에는 청룡과 황룡이 싸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금산못 산책로. ⓒ 김종신


둘레만 5km로 굴곡이 많아 한눈에 못의 전부를 볼 수 없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산 못을 둘러봤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안 둘러봤다"고 하면 게으른 놈이라고 벌을 내린다고 한다.

금산 못에는 또한 용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서 착한 청룡과 나쁜 황룡이 한데 엉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그 싸움을 본 한 장사가 용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싸움하지 마라!"는 고함에 깜짝 놀란 청룡이 장사를 내려다보는 순간, 홍룡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청룡의 목에 비수를 찔렀다. 칼에 찔린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를 치니, 용의 꼬리를 맞은 자리는 크게 쓸려나가 그 자리에 큰 못이 생겼다고 전한다.

다리를 건너 일부러 둑 아래로 내려가 일부러 걸었다. 자박자박. 낙엽이 온몸으로 내는 소리가 정겹다. 시간이 나와 함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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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단장한 진주시 금산연못 입구에 있는 금호정 ⓒ 김종신


금산못가를 산책하다 '금호정'을 만났다. 1935년 금산면 유림의 모임인 금호 유계에 의해 건립됐으나 건물이 낡아 방치됐었다가 소망교를 만들면서 진주시에서 새로 단장을 했다.

금호정 앞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시비가 서 있지만 역시 안내판이 없다. 시비 뒤편에 적혀 있는 선생의 시를 읽을 사람 과연 몇 인가 싶다.

이곳 금산못을 찾는 이에게 선생의 시를 손쉽게 감상할 기회를 준다면 선조의 얼과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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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못은 달과 해가 뜨는 풍광은 더욱 아름다우니 부지런한 사람이면 해 뜨는 시각과 달 뜨는 시각을 고려해 찾으면 더 좋다. ⓒ 김종신


월아산을 품에 안은 이곳의 소박한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언제든 찾으면 좋다. 달과 해가 뜨는 풍광은 더욱 아름다우니 부지런한 사람이면 해 뜨는 시각과 달 뜨는 시각을 고려해 찾으면 더 좋다.
덧붙이는 글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진주지역 독립언론 <단디뉴스>, <해찬솔일기>에도 실렸습니다.
#금산연못 #퇴계 시비 #금호지 #소망교 #월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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