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진 선생님, 딸의 '마지막 편지' 받아주실 거죠?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 못 다한 이야기 ①]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을 보내드릴 자신이..."

등록 2017.11.21 20:06수정 2017.11.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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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다섯 명은 결국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차라리 천형이라고 믿고 싶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오는 18일부터 사흘간 마지막 세월호 장례식이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는 긴급 기획을 편성해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이들에게 조그마한 용기를 주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좋은 기사 원고료)은 전액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전달됩니다. (후원하기) http://omn.kr/olvf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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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없는' 입관식... 아빠에게 부치는 편지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를 관에 넣고 있다. ⓒ 남소연


"캄캄한 바다 속에서 여전히 당신은 굶주리는데 밥을 넘기고 있는 저를 용서하세요. 낮과 밤 구분 없는 당신은 여전히 어둠 속인데 밝은 빛을 보고 있는 저를 용서하세요. 당신을 딸로서 지켜주지 못해, 찾아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딸은 아빠를 잃었다. 매정한 아빠는 가족들에게 흔적마저 남기지 않았다.

딸은 그런 아빠에게 부치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흔적. "나의 '최고의 아버지'이자 '단원고의 참스승'이라는 영원한 빛으로 남기에 지금 이별이 전혀 슬프지 않다"는 딸. 그럼에도 편지의 마지막 한 마디는 "보고 싶습니다"였다.

지혜씨는 18일 진행된 입관식에서 아빠의 유품이 담긴 관에 이 편지를 내려놓았다. 관과 함께 태워진 편지의 재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아빠의 봉안함에 안치됐다. 20일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서 아빠의 봉안함이 봉안소에 놓이자, 딸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현재 지혜씨는 아빠의 뒤를 좇아 교사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양승진 교사(단원고)의 딸 지혜씨가 쓴 편지 전문을 유가족의 양해를 구해 싣는다.

[편지 전문] "당신을 보낼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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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선생님, 딸이 보내는 편지 받아주실거죠?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딸이 18일 오전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선수부 인근 안치실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하며 아버지에게 쓴 편지. 봉투 겉면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최고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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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교사(단원고)의 딸 지혜씨가 아빠에게 쓴 마지막 편지. 지혜씨는 18일 진행된 입관식에서 아빠의 유품이 담긴 관에 이 편지를 내려놓았다. 관과 함께 태워진 편지의 재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아빠의 봉안함에 안치됐다. ⓒ 소중한


한없이 인자하고 자상했던 모습...
너무 일찍 져 버린 당신께 바칩니다.
대답 없는 나의 아버지...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엄마의 떨리는 전화 목소리를 듣고 진도로 내려갔습니다. 뉴스 속보에 전원구조라는 말은 오보였고 시신이 한구, 한구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통곡했습니다. 수많은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 교사 가족들과 눈물을 함께 나누면서 '아빠도 곧 돌아오시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갔습니다.

그때 가졌던 희망이 이제는 그립습니다. 그 희망은 이러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자태의 어여쁜 나비가 내 앞에서 날갯짓을 하며 지나가면 '오늘은 아빠가 돌아오시는 구나' 하며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나올 때마다 '배 안의 학생들을 다 구하느라 조금 늦으시는 구나' 하며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며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약 3년 7개월이란 시간 동안 희망을 가질 수 있음에 행복했습니다. 비록 살아 돌아오시진 못해도 아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적어도 남아 있었으니까...

2017년 11월 18일. 목포신항에 여전히 기운 채 누워 있는 세월호를 등지고 그때 가졌던 희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평범한 나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에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도 이제는 그만해야 합니다. 끝내는 배에서 나오시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공허함 뿐... 어떻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요.

싸늘한 바닷바람이 당신의 체온을 낮추고 차가운 죽음의 물살이 당신에게 마지막임을 알릴 때, 어느 누구의 손길이 간절하고 어둠이 두려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그래도 살아야지' 하며 너무나도 멀쩡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캄캄한 바다 속에서 여전히 당신은 굶주리는데 밥을 넘기고 있는 저를 용서하세요. 낮과 밤 구분 없는 당신은 여전히 어둠 속인데 밝은 빛을 보고 있는 저를 용서하세요. 당신을 딸로서 지켜주지 못해, 찾아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을 보내드릴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께 마지막 인사, 안녕이라 해보지만 마음의 시계 바늘은 4월 16일 그날인데. 당신과의 함께 했던 기억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에 나에겐 당신이 묻어 있기에...

4월이 오면 당신이 생각납니다. 바다를 보면 당신이 생각납니다. 나에겐 더 이상 4월이... 그리고 바다가 보통의 평범한 그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당신이 편히 쉬도록 그곳으로 보내드려야 할 때입니다. 3년 7개월 동안 희망이 있었기에 간절함으로 버텼지만 이제는 이마저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하늘을 보는 일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비가 오면 당신이 우는 거고, 햇빛이 비치면 당신이 웃는 거겠죠. 문득 밤하늘을 보다 유난히도 밝은 별이 있다면, 당신인 줄 알겁니다.

당신의 가족... 나 그리고 동생 그리고 3년 7개월 동안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당신을 간절히 기다린 엄마... 당신의 몫까지 제가 지킬게요.

너무 일찍 져 버린 당신...

나는 당신과 좋은 이별로 남을 수 없는 것이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의 '최고의 아버지'이자 '단원고의 참스승'이라는 영원한 빛으로 남는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나의 아버지...
영원히 사랑합니다... ♥ 보고 싶습니다...

- 당신의 하나뿐인 딸 양지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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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경기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발인을 앞두고 가족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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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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