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가족들 국회서 또 하룻밤 "이번이 마지막이길"

[현장] '사회적 참사법' 통과 촉구하며 밤 지새운 유가족들의 소망

등록 2017.11.24 07:40수정 2017.11.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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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성욱


"제일 두려운 거는, 내 아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 진실이 안 밝혀졌는데 눈을 감는 거야."

24일 오전 2시 34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하늘에 대고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혼잣말을 했다.  비닐 천막에서 힘겹게 기어 나온 그가 몸을 떨었다. 그는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내일, 아니구나, 오늘도 안 된단 생각? 하... 솔직히 이젠 뭐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

3년 7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손주의 죽음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했다(그는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거듭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던 그는 국회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시 비닐 속으로 들어갔다.

국회 다시 찾은 세월호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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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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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성욱


이날 새벽, 세월호 가족 40여 명이 또다시 국회 앞에서 밤을 지샜다.  24일 오전에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아래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이 통과되길 촉구하기 위해서다.

23일 오전 일찍 안산 분향소에서 국회로 상경해 농성을 시작한 세월호 가족들은 밤이 되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말수는 줄어들어갔고 서로의 허리나 목을 두들겨 주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영하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텐트 열 동을 치고 임시로 비닐 천막을 구해와 덮었다. 모포가 부족해 여러 군데 연락을 했다. 그래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을 먹거나 발바닥에 핫팩을 붙이며 몸을 녹였다.


지난 2016년 12월 19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적 참사법'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 회복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후 330일 이상 국회에서 계류된 이 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이날 본회의에 자동 상정될 예정이다. 사회적 참사법은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이번 농성이 "마지막이길" 바라고 있었다. 고 오영석군 어머니 권미화씨는 "언제까지 피해자들이 이렇게 나와서 떨어야 하냐"고 되물었고 고 안주현군 어머니 김정해씨도 "간절한 마음으로 마지막이길 비는 거죠, 뭐"라고 했다.

세월호 유족들과 밤샘 농성을 함께한 이들도 있었다. '사회적 참사법'의 직접 당사자이기도 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인 조순미씨는 휠체어를 타고 산소발생기를 코에 낀 채 농성장을 찾았다. "뉴스로 사진을 보는데 도저히 방안에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농성에 참여하기 위해 회사에 연차를 냈다는 김진수씨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시작이죠"라며 가족들 옆에서 묵묵히 힘을 보탰다.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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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성욱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갈 무렵, 한 텐트에서 기자를 불렀다.

"추우신데 들어오시죠."

고 김수진 양 어머니 남영미씨네 텐트였다. 텐트 윗 부분에는 '세월호 & 가습기 살균제 철저한 재조사'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손이 빨개졌다며 기자에게 두유도 주시고 핫팩도 주신다. 목도리와 패딩으로 몸을 꽁꽁 싸맨 남씨는 그래도 추운지 대화 내내 핫팩을 흔들었다. 내리는 눈이 텐트 위를 타닥타닥 때리고 있었다. 그가 몇 분간 기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첫눈이에요. 전 올해 처음 (눈을) 봤어요. 안산에는 눈이 안 왔거든. 좋은 징조로 보이기도 하고. 우리 수진이가 또 음력 1월 1일 겨울 생이거든요. 아이고 눈 많이 온다.

지금은 이렇게 텐트도 치고 많이 좋아진 거지. 2014년에 여기 똑같은 자리에서 농성했을 땐 경찰들이 아주 빽빽하게 모여서 때려잡고. 1주기 때 광화문 앞에서 시위했을 때도 경찰들한테 우리 신랑이 붙들려가는데 제가 바로 옆에 있었거든요. 너무 겁나고 그날은 진짜... 가족들은 차벽 사이에서 어디 가지도 못하게 해놔서 화장실도 못 가고, 그래서 서로서로 주변에 둘러서서 길가에다 쌌다고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인가. 애가 죽은 것만 해도 억울해죽겠고 분통 터지는데, 그땐 더 악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지나서 누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싸워야지요. 다신 이런 일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일반적인 생활은  없어요. 여기 사람들 다 병원 다니고 있고, 나도 막 없던 당뇨가 생기고요. 갑자기 당 수치가 300 이상으로 올라갔어요. 지난 설날에는 입원해서 명절도 못 보내고. 몸에 안 나던 두드러기도 나고 그러기도 해요. 스트레스라고 하더라고.

지금도 이번이 마지막이길, 마지막이어야지, 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해요. 만일 통과 안되면 정말.지금 심정은, 사실 2014년에 이어서 여기 또 와 있는 것도 우습지만, 우린 어제 아침에 타고 온 차를 그냥 보내기로 했어요. 어차피 올라온 거 해결 짓는 걸 봐야 하고, 어차피 있는 거 하룻밤 있는 게 뭐가 대수냐고. 우리 엄마, 아빠들이 힘을 보여줘야 되니까. 일이 잘 됐으면 정말 좋겠죠. 그런 소식 듣고 싶어서 올라온 거죠. 이게 마지막이어야 되는데. 마지막이고 싶죠. 아직은 다른 건 생각 못하겠고. 바람이지 뭐. 설마 이게 또 싸움의 시작일까 봐 두렵기도 하고. 농성은 이제 프로인데 그래도 한 몇 개월 만에 하니까 힘드네.

딸만 셋이에요. 수진이가 막내. 키가 170이라고 좋아가지고. 여행가기 며칠 전에 학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키가 170이라고 그렇게 좋아하더라고...(눈물)

바람은 그냥, 우리들 억울함, 진실을 아는 거, 그거죠 뭐. 그게 이렇게 어렵네. 하나 더 있다면, 아이들이 뛰놀던 안산에 안전공원을 세워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있을 수 있는 거. 그게 바람이라면 바람이에요.

어쨌든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거니까.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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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김성욱


#세월호 #사회적 참사법 #국회 #4.16 #가습기 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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