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피 말렸던 '30시간'
세월호 유가족 얼싸안고 울었다

[현장] 사회적 참사 특별법 수정안 통과... "아이들 죽음으로 바뀌는 사회, 이제 시작"

등록 2017.11.24 14:41수정 2017.11.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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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법' 통과에 환호하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 피해자 모임 회원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이 통과되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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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유가족 '이제 시작이야'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이 통과되자, 법안 통과를 염원했던 세월호 유가족이 서로 안아주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통과 안 되면 저 거기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진짜 그럴 마음이었어요." - 고 유미지 학생 아버지
"통과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안 될까 봐 마음이 졸아들어서." - 고 김정해 학생 어머니

24일 낮 12시 54분, 정세균 국회의장이 "박주민 의원 등 43인이 발의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한다"라면서 의사봉을 두드리자 방청석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노란옷을 입은 세월호 유가족 70여 명이 한마음이 되는 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 명찰을 하나씩 목에 건 어머니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굳은 표정이던 세월호 유족 아버지들도 고개를 떨궜다. 24일 여야가 장시간 토론 끝에 합의해 낸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수정안'(아래 사회적 참사법)이 마침내 국회 벽을 무사히 넘은 것이다.

같은 시각, 국회 밖 상황도 비슷했다. 본회의 투표가 시작되던 낮 12시 53분, 세월호 유족들을 도우러 온 광화문 서명지기들, 자원봉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국회 본회의장 중계를 시청했다. "통과 안 되면 가만 안 있어" "잘 될 거야"라고 하면서도 이들은 두 손을 모아 같이 기도했다. 정 의장이 "가결 선포"를 외치는 순간 자원봉사자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손뼉을 쳤다. 이렇게 홀로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세월호 진상규명,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회앞 피 말리는 30시간... "3년 넘게 기다렸는데 이거 못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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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가슴 조리던 순간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 특별법 수정안이 재석의원 216명 중 162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표결이 시작되자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이 법안의 통과를 염원하며 지켜보던 세월호 및 가습기 사건 유족이 가슴 조리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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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안아주는 추미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이 통과되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안아주고 있다. ⓒ 유성호


'사회적 참사법이 좌초되면 어쩌나', 세월호 유가족들은 전날부터 마음을 졸였다. 눈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국회 본청 앞에서 밤샘 농성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본회의까지 불과 30시간, 그안에 진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내야 한다(예은아빠 유경근씨)"며 이들은 23일 오전 7시께부터 본청 앞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노란색 유족 옷을 입고는 '진상규명, 특조위 설립''국회가 답하라'라고 적힌 노란색 손팻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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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의원 향해 '사회적 참사 특별법' 통과 요구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현관 앞에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을 향해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이들은 오전 8시 30분께부터 약 1시간 30분간 본청 정문 앞 양쪽에 일렬로 선 채 본회의장을 향하는 국회의원들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배지를 단 정치인이 지나갈 때마다 "의원님, 좋은 아침입니다. 사회적참사법 통과를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진상규명 될 수 있도록 찬성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특히 권은희 의원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지나갈 때면 서로에게 "집중, 집중"이라고 외치며 더 크게 인사했다.

'피 말리는 30시간'이었지만 끝까지 쉽지는 않았다. 본회의를 방청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회의장으로 향하던 길, 이전 박근혜 정부 때 '진상규명'을 외치며 삭발을 하기도 했던 고 권순범군(2-6) 어머니 최지영씨는 '밖에서 잤는데 춥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나도 안 힘들다"라고 답했다.

"3년 넘게 기다렸는데 고작 몇 시간 가지고 힘들까요. 정부가 바뀌니 확실히 다르더라, 예전엔 화장실도 못 가게 했었다."

이날 수정안도 쉽게 나온 건 아니었다. 여야가 이견을 좁혀 수정안을 공동 발의하기까지는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새벽 1시까지 수정 조항을 교환하는 등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고비'는 본회의 때 나타났다. 정유섭 자유한국당(인천부평구갑) 의원이 토론을 신청해 단상에 오른 뒤 "세월호 '사고'가 가슴 아프긴 하지만 (법안은) 필요가 없다. 이미 다 조사 끝났는데 뭘 더 조사하나" "세월호 사고 이유를 아직도 모르느냐. 제게 물어보시라 제가 다 알려드릴 테니까"라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부터다.

"세월호는 사고... 조사 다 끝났다" 한국당 의원 도발에 유가족들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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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법 처리 반발해 투표 거부한 백승주-전희경 자유한국당 백승주, 전희경 등 소속 의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 처리에 반발해 투표를 거부한 채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전직 새누리당 의원의 도발적인 발언들이 이어지자 유가족들은 동요했다. 국회 경호가 제지했지만 "하!" "나 참"이라며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참다못한 한 예은엄마 박은희씨는 "그게 다 조사가 제대로 됐습니까! 당신들이 방해하지 않았느냐"라며 "세월호 7시간이나 밝혀달라고요"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기도 했다. 예은아빠 유경근씨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정 의원의 발언은 약 5분에 불과했지만, 방청석 곳곳에서 "낯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등 유족들의 눈물 섞인 비판이 흘러나왔다. 정 의원 발언이 끝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잘~했다" "잘한다"라고 외쳤고, 이내 6~7명 의원이 일어서더니 무리 지어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표결 참석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이어 표결이 이어졌다.

'재석 216인 중 찬성 162인, 반대 46인, 기권 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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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법' 국회 통과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 특별법 수정안'이 재석의원 216명 중 162명이 찬성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유성호




가결이었다. 유가족들은 서로를 얼싸안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은 특히 옆에 있는 이를 크게 포옹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앞서 본회의 내내 유족들을 지켜보며 박수나 함성을 제지하던 국회 경호원들도 이때만큼은 가족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회적 참사법 통과에 힘써준 모든 의원에 감사합니다. 함께해준 세월호 가족들도 자랑스럽습니다. 이 힘으로 진상이 밝혀지고, 피해자구제법과 재발 방지법도 잘 될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서 안전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여러 마찰,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더 좋은 법안 만들려 노력한 것에 (의원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온갖 방해가 있겠지만 오직 국민과 피해자들을 보고 진상 규명, 안전 사회가 되도록 국회가 견인해주시길 바랍니다." -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유가족들은 전날 밤을 새웠던 본회의장 앞으로 이동해 "진상규명, 안전사회" 펼침막을 든 뒤 국회의원들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쥔 채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2기 특조위에 유족들이 바라는 점은 뭘까. 가결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정해 어머니(단원고 2-8반 고 안주현 학생)는 "이런 참사가 없는, 더는 제 아들처럼 희생되는 국민이 없는 사회"를 꼽았다. 다음은 김씨의 말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박근혜 대통령이 한 국가의 수장으로써 도대체 7시간 동안 뭘 하며 있었는지를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더는 제 아이같이 희생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이런 사회적 참사가 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죽음으로 우리 사회가 정말 바뀌어서, 더는 이렇게 희생되는 국민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되길 정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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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법' 통과에 환호하는 세월호 유가족-가습기 피해자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이 통과되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윤소하 정의당 의원, 세월호참사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 피해자 모임 회원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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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법' 통과에 환호하는 세월호 유가족-가습기 피해자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수정안’이 통과되자,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 피해자 모임 회원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사회적참사특별법 #가습기살균제 #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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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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