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쓴 선비들이...?' 600여년 전 고지도에 빠진 까닭

[지도와 인간사 1] 나사렛 지명이 1402년 조선의 세계지도에 표기됐다?

등록 2017.11.27 11:37수정 2018.03.1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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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성장한 '나사렛'을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그 나사렛을 조선 초의 어떤 선비가 지도에 기록했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 또한 없겠지요? 국내에서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나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미 두 명의 국외 학자가 1402년의 조선 지도에 나사렛뿐 아니라 예루살렘, 메카,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바그다드, 파리, 마르세유 혹은 바르셀로나, 로마, 리스본, 지브롤터, 그라나다, 제노바, 모나코, 카사블랑카 등의 서역 지명이 표기됐다고 밝혔으니까요.

(관련기사: 미 고교에서 가르치는 조선 문화재, 한국은?)

여기서는 몇 개의 지명만 살펴 봅니다. 먼저 아래 지도를 봅니다.

첫 번째 지도는 1402년 원본지도의 모사본(부분도)입니다. 이름은 줄여서 <강리도>라 부릅니다. 일본 교토의 류코쿠 대학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모사 시기는 여러 설이 있지만 1480년대 초가 아닌가 합니다(이화여대 조지형 교수). 이게 언제 어떻게 우리 땅에서 사라졌는지,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지만 아마 임진왜란 때의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이외에도 일본에만 세 가지 버전이 더 존재합니다. 모사 시기가 각각 다르고 소장처도 각각 다릅니다. 그 중에서 류코쿠본이 가장 오래됐고 보존 상태도 좋아 보통 <1402 강리도>라 하면 이 지도를 말합니다. 명주 비단에 붓으로 그려져 있는 이 지도는 아래에서 보다시피 고색 창연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겪었으니까요. 그러나 걱정할 건 없습니다. 1910년 일본 교토대에서 모사본을 만들었는데 아주 선명하니까요. 여기 두 번째 지도가 교토대본을 재현한 것입니다.

먼저 양 지도에서 중앙의 녹색 동그라미를 봅니다. 탑이 하나 솟아 있습니다. 이 탑은 무엇일까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파로스 등대라 합니다(1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됐다). 이 등대는 서양과 이슬람의 여러 고지도에도 등장합니다. 아득한 한양에서 그린 지도에도 나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그 아래 보라색 원을 봅니다. 阿剌賽伊(중국어로 '알러사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바로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이제 붉은색 동그라미를 주목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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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부분도 1402년의 원본을 1480년대 초 모사한 것 ⓒ 일본 류코쿠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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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부분도 강리도 교토대 본 ⓒ 일본 쿄토대


'那撒里',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답을 아래 스기야마의 일람표에서 찾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건 급하지 않습니다. 이 기회에 지명해독에 관한 유의사항을 알아보고 아울러 학자들의 육성을 들어 봅니다. 앞으로 지명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올 테니까요. 지도상의 서방 지명들은 모두 원래 지명(그것이 무엇인지가 문제지만)의 발음을 따서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지금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외국 지명 'LA-羅城(루어 청)', '워싱턴-華盛頓(화셩뚠)'의 경우에서 보듯이 서로 발음이 흡사한 경우도 있고 차이가 상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강리도의 서쪽 지명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극소수의 지명만이 해독되었을 뿐이었지요. 이건 한문 실력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소리를 표기해 놓은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해독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근래에 두 학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스기야마와 카자흐스탄의 눌란입니다. 먼저 스기먀아의 설명을 들어 봅니다.

"강리도에 한자로 표기된 중앙아시아 서쪽의 많은 지명이 거의 해독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2년의 <지도제작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미국) 이래, 강리도가 중심 테마의 하나가 되었다.

강리도에 모습을 드러낸 대지평은 인류 역사상 그때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다에 둘러싸인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종래의 지식으로는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1488년 처음으로 아프리카 남단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이 지도는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간단히 뒤엎는 이런 내용은 누가 보아도 명확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볼수록 '충격적인 메시지'로 다가온다.

또한, 이 지도에 기록된 중앙아시아, 인도 지역, 러시아 방면, 이슬람 중동지역, 지중해지역, 유럽, 아프리카 등에 대한 다량의 지명정보는 몽골시대 이전에 동방에서는 대부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 지도는 경계가 없는 아프로 유라시아(Afro-Eurasia)가 출현하는 거대하고 획기적인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강렬하게 동요시키고 만다.

강리도의 서방 지명에 대하여 확정, 추측 등도 포함해 224개의 해독을 우선 마쳤다. 어떤 지명은 터키·몽고어계의 이름이고, 어떤 것은 페르시아어나 아라비아어, 또는 인도계나 슬라브계의 이름, 혹은 그리스어·라틴어·스페인어·카타루나어 이름 등이다."


-<대지의 초상(大地の肖像,2007)> 중 스기야마의 논문 '동서양의 세계지도가 말하는 인류 최초의 대지평'

스기야마의 연구가 나온 지 수년 후에 이를 발전시킨 학자 한 명이 출현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의 학자 눌란(Nurlan Kenzheakhmet). 훔볼트 재단의 후원으로 연구를 수행한 놀란은 최근 두 건의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2015년의 <강리도의 중앙아시아 지명 연구>(Journal of Asian History 49), 다른 하나는 2016년의 <강리도의 유럽·아프리카 지명연구>(The Silk Road 14)입니다. 몇 구절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서역이란 '서방 지역'으로서 예부터 중국인들이 그들의 서쪽을 지칭했던 역사적 명칭이다. 강리도에 담겨 있는 자세한 서역지도가 20세기 초 이래로 학계의 주목을 끌어 왔다. 강리도의 서역 부분은 430개소가 넘는 지명을 포괄하고 있다.


강리도가 유럽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지중해 지역은 상당히 왜곡하고 있지만 해안선을 식별할 수 있도록 윤곽을 그려 놓았다. 지중해에 바다 색깔이 칠해져 있지는 않다. 지중해의 동단은 더욱 혼란스러운데 발칸과 아나톨리아를 합쳐 놓았기 때문이다.

한자 지명을 연구한 결과 그 대부분이 아랍과 페르시아의 지리서에 나타난 지명들로 밝혀졌다. 강리도의 한자 지명들이 최대한 흡사하게 아랍어 원음을 기록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우리의 강리도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카자흐스탄 학자가 훔볼트 재단의 자금으로 연구했고 그 내용이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이 이채롭지 않나요?

이제 아랍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강리도 서방 지명이 아랍어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이슬람 전성 시대(8세기-15세기)로 옮겨 가보면 이해가 됩니다. 이에 대하여는 강리도 시대의 위대한 이슬람 학자 이븐 할둔(1332 ~ 1406, 튀니스)이 딱 부러지게 설명하고 있군요.

"무슬림들은 외래 민족의 학문을 배우기를 희망했고, 번역을 통해서 그런 학문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그것에 자기들의 고유한 관점을 각인했다. 비아랍계 언어로 된 저술들을 아랍어로 옮겨서 받아들여졌고 이제는 비아랍계 민족들의 성과를 능가하게 되었다. 비아랍계 언어로 된 사본들은 망각되고 폐기되어 사라져 버렸다. 모든 학문은 아랍어로만 존재하게 되었고, 그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도 아랍어로 집필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랍어 문자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 김호동 역 <역사서설> 512-513쪽 

또 한가지 염두에 둘 것은 위치 문제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아득히 먼 곳의 지명임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편, 지도의 좁은 공간에 많은 지명을 수록해야 하는 경우에도 부득이 위치 이탈이 발생합니다.

이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이제 다시 위 지도에서 붉은 동그라미를 봅니다. '那撒里'의 중국어 발음은 '나사리'입니다. 아래 스기야마의 일람표에서 123번을 보면 '那撒里'는 곧 나사렛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고 예수가 자랐던 이곳이 아랍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아랍인들은 이 도시를 '나시라' 혹은 '안 나시라'라 부른다 합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아랍 수도(Arab Capital of Israel)'로서 현재 약 70%가량 주민이 아랍계라는군요(나머지 30%는 기독교인). 역시 아랍과 관계가 깊은 지명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 푸른색 원을 봅니다.

'馬喝', 중국어로 '마허'라 발음합니다. 메카가 아닐 수 없습니다(아래 일람표 131번). 아랍인들은 '마카' 혹은 '마하'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표기하면 Makka 혹은 Makkah가 됩니다(위키피디아). 한자음 '마허'와 상통함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후두음 'ㅋ'와 'ㅎ'는 음가가 비슷하여 호환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방금 인용한 '이븐 할둔'과 '이븐 칼둔'이 혼용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겠군요. 후두음이란 예를 들면 '크흑' 할 때 나오는 소리로 목구멍 소리라는 뜻이겠고요.

위 지도에서 바그다드, 카이로 등도 금방 찾아 볼 수 있지만, 역시 나중으로 미룹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강리도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지식 정보의 전지구적 유통을 엿보기에 족합니다.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서는 서양에 의한 세계화(globalization)이전에 비서구권에서 이루어진 의미심장한 역사가 간과되어 왔습니다. 강리도로 인하여 세계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근래 서양에서 나온 역사 지리서에서 강리도를 통해 새롭게 역사를 조명하는 경우를 찾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앞서 스기야마가 강리도에 대하여 '유럽중심의 세계관을 간단히 뒤엎는다'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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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地の肖像(2007) 스기야마 마사아키의 강리도 논문이 수록되어 있음 ⓒ 김선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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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지명 해독안 <대지의 초상 大地の肖像> 60쪽, 스기야마 마사아키(衫山正明)의 강리도 지명 일람표 ⓒ 김선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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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코쿠 본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Vincent Vigra와 미국국회 도서관 공저 <카토그라피아CARTOGRAPHIA> 61쪽 ⓒ 김선흥 사진


위 지도의 아래 여백에 적힌 주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도판 51. Kangnido: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당시 서양지도는 1402년의 이 한국지도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지금 이 지도가 우리의 잠을 깨우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먼저 전도를 느긋이 들여다 봅니다.

세종이 6살 소년 시절이던 140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15년 전의 초가을 어느 날을 빌어 이 지도는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里歷代國都之圖>. '地圖'가 아니라 '之圖'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地圖'라는 용어가 없었기에. 이 길고도 난해한 이름은 우선 잊어버립니다. 그냥 <강리도>라 부를 겁니다. 서양에서는 흔히 Kangnido 혹은 1402 Kangnido라 불리고 있습니다. 

나그네(필자)가 우연히 이 지도와 만난 것은 10여년 전 상하이에서 만난 <1421년, 중국이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저자인 영국의 퇴역 해군 장교가 전하는 강리도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강렬한 의문이 곧 뒤따랐습니다. 그게 그렇게 굉장한 거라면 나는 왜 여태 모르고 있었지? 나만 모르고 있었나? 자신의 무지에 새삼 탄식이 나왔습니다. 탄식으로 끝났으면 오죽 좋았으련만….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에 그만 잡히고 만 것입니다.

갓 쓰고 도포 걸치고 곰방대 물고 살았다는 선비들이 어떻게 그 옛날에 지구 저 너머의 지리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그걸 왜 굳이 지도에 담았을까? 여행이나 항해를 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축소된 이미지밖에는 볼 수 없는데, 실물을 보면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해외에서는 이 지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강리도의 초광역적 세계관은 왜 우리 역사에서 계승·발전되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게 광대한 세계를 그렸던 조상들의 시야는 왜 점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줄어들고 좁아졌던 것일까? 그것이 결국 정체와 쇠망을 불러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도의 발자취 속에는 시야의 광협과 함께 흥망성쇠의 궤적이 담겨 있는 것일까? 강리도 시대는 한글 창제로 상징되듯 우리 민족 최고의 융성기였고, 그것이 사라진 뒤에는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그 사이 서양에서는 과연 어떤 지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나라 밖에서는 강리도가 성가가 높은데 왜 우리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실로 궁금증은 위험한 귀신입니다. 자칫 홀리고 나면 헤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어쩔 수 없이 나그네는 강리도에 대한 국내외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동서의 고지도와 지도의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부시시 일어나 그 일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궁금증이 파놓은 마의 심연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으니까요. 하지만, 독자들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끌려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네이버 포스트  '나는 왜 고지도에 빠지게 되었나'에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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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제작의 역사 History of Cartography 미국에서 출간된 지도의 역사에 대한 기념비적 대작 ⓒ 김선흥 서재 사진


이제 지도의 바다, 이야기의 바다로 돛을 올립니다. 정해진 항로도 운항 일정도, 나침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있습니다. 오직 바람의 힘으로 나아갑니다. 이 한 몸 애오라지 바람에 맡긴 채 나아갑니다. 이미 부풀어 오른 돛이 출항을 재촉하고 있군요. 동승을 환영합니다. 혼자 가긴 힘들어요. 바람도 좀 불어주시길….

기나긴 하루가 이울어간다. 달이 서서히 떠오른다.
깊은 신음이 많은 소리와 어우러져 메아리 친다.
오라, 내 친구들이여, 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설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떠나라. 그리고 차분히 앉아서 소리치는 파도의 이랑을 헤치고 나아가라.
-<율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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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흥 필자 2017년 9월 해남 달마산 ⓒ 사진


덧붙이는 글 네이버 포스트에도 '김선흥의 고지도 천일야화'를 싣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연재에서는 좀 더 느긋하게 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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