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아니지?" 나는 HIV 감염인입니다

[평등행 버스를 타겠다 ①] '질병은 죄가 아니다' 우리가 차별금지법 말하는 이유

등록 2017.11.30 21:26수정 2017.11.3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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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앞둔 12월 9일,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이 열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07년 삭제되었던 7개의 차별금지사유(병력, 출신국가, 성적지향, 가족형태, 학력 등)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묻는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나중인가? 차별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평등행 버스를 타겠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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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자리에 붙어 있는 'I AM HIV(나는 HIV다)'가 적힌 캠페인 스티커. 해당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상관 없습니다. ⓒ 이희훈


최근 부산 HIV 감염인 여성의 성매매가 이슈였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에이즈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몇몇 활동가들과 '평소에 아무리 외쳐도 묻히더니, 이런 일로 에이즈가 세상의 관심을 받는구나'라며 농담했던 게 기억난다(에이즈와 HIV는 정확히 말하자면 구분되는 개념이다. 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HIV에 감염된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특정 질병이나 증상이 보이는 에이즈로 이어질 수 있다. -편집자주). 농담을 해서라도 불편한 마음을 감추려 했던 것 같다.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를 앞두고 기고를 제안받으며 내가 느끼는 '차별'은 무엇이었을까, 돌아봤다.

언론에서 다루는 '나'

부산 HIV감염인 여성을 다룬 기사 이전에도, 언론은 대부분 에이즈를 '문제적'으로 그려졌다. '소나무 에이즈', '꿀벌 에이즈' 등 죽음과 에이즈를 연관짓는 표현도 많았고 'HIV=동성애'라는 편견에 기대어 동성애 혐오를 합리화하는 악의적인 기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만큼 악질적인 기사들이 쏟아진 건 처음이다. 인권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보도들이었다.

HIV 감염인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치료를 받는 등 꾸준한 관리를 이어가면 전염 위험은 거의 없다(출처 - 다음 백과 'HIV 낙인'). 그런데도 언론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채 감염인 여성이 에이즈를 부산 전역에 퍼뜨린 것처럼 공포를 조장했다.

이로 인해 부산 시민들이 자가검진키트를 구매하기도 했는데, 자가검진키트는 오진의 확률이 있다. 그리고 보건소나 병원 등으로 진료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약 복용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언론은 공포를 팔면서 정작 공포에 대응하는 방법은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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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에이즈'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실제 해당 여성은 에이즈 환자가 아니라 HIV 감염인이다. 자극적인 단어들만 줄줄이 써 내려 간 기사들은 누구보다도 기사 속의 HIV 감염인 여성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 포털사이트 갈무리


자극적인 단어들만 줄줄이 써 내려 간 기사들은 누구보다도 기사 속의 HIV 감염인 여성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를 읽는 HIV 감염인 당사자인 나 또한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구매자 남성이나 성매매를 알선한 남성에 대한 내용은 쥐꼬리만 한 비중으로 다루면서 HIV 감염인은 아무 데나 병을 퍼뜨리고 성매매를 일삼는, 세상에서 배척당해 마땅한 존재로 다루고 있었다.


HIV 감염 증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확실하지도 않은 증상들이 제시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배척당해 마땅하므로 알 필요도 없다는 것. 감염인을 싸잡아 "정부 손길을 거부한다"던가 "문란한 성생활을 한다"는 등의 말을 쏟아낼 때마다 당사자로서 가슴이 후벼파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날 걸려온 전화

나는 HIV감염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부모에게는 평생 약을 먹고 관리해야 하는 병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부모님도 그냥 그러려니 하셨다. 그런데 최근 TV를 틀면 시끄러울 정도로 뉴스 보도가 이어진 탓이었을까? 부모님이 내게 전화를 하셨다.

"혹시 너 에이즈니? 아니지?"

나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애써 아니라고 웃으며 손사래 치면서도 그런 모습이 내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자괴감이 들다 못해 죄송하기까지 했다. 수화기 너머 부모님의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질병은 죄가 아닌데 죄책감이 드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가족들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나를 철저하게 격리한 시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울타리가 되어줄 부모님에게조차 힘들다고 토로할 수 없었다. 슬픔을 넘어 고립감을 느끼게 된 지도 오래다. 그러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내 모습도 이따금 발견한다.

누군가에게, 아니 가족에게조차 들키면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격리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점점 숨어드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 상황에서 질병을 가진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에이즈라는 질병을 공포와 범죄로 몰아가며 낙인화하는 언론과 사회가 잘못한 걸까? 답이 너무 명확한 질문이다.

두려움은 일상

직장을 구할 때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웠다. 올해 2월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원하고 싶은 회사의 입사지원서를 다운로드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끼게 한 것은 병역란이다. 다른 칸을 다 채우고 나서도 병역란과 면제사유란을 번갈아 보며 수십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포기였다. 면제사유란을 채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사지원서에 병역란이 왜 있어야 할까? 도대체 왜? 입사지원서를 무사히 제출한다고 해도 면제 사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문화도 문제다. 졸업 후 간단한 이력서와 함께 포트폴리오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5명인 전 직원이 사흘 동안 군대 면제사유를 묻는 바람에 얼마 안가 그만뒀다.

이 과정을 무사히 넘긴다 해도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채용 전 건강검진이나 직장정기검진에 혹시 HIV 검사항목이 있지 않을까 매번 걱정해야 한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입사한 지 6개월째다. 2년째 되는 해에 건강검진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고 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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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 년간 의학의 발전은 HIV감염인이나 AIDS환자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가능성 역시 없애고 있다. ⓒ pixabay


의학의 발전에 역행하는 한국사회

지난 30여 년간 의학의 발전은 HIV감염인이나 AIDS환자들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가능성 역시 점차 없애고 있다.

또 비감염인이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에 비해 한국의 예방 정책엔 큰 변화가 없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이다. 2017년 12월 1일 열리는 '디셈버 퍼스트'는 동성애 혐오조장 세력들이 여는 반동성애운동 행사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HIV와 동성애는 인과관계로 묶여있지 않다는 것은 확립된 지식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행사가 버젓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HIV 감염인들을 숨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엔에이즈(UNAIDS)는 감염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기 진단과 빠른 약 복용, 그리고 소수자들과 질병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한다.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조기 진단을 받는 데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치료를 받지 않거나 받지 못하는 HIV 감염인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감염 확산으로 이어지기 쉽다. HIV 확산을 막고 싶다면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질병은 죄가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질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일순간 사라지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질병이 죄가 아니라, 질병을 죄로 낙인화하는 차별의 행태야말로 사라져야 할 대상이라고 못 박을 수 있을 것이다. 입사지원서에 있는 병역란을 보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이 줄어들거나, 부모님에게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적어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운영지기 소리 님입니다.
#차별금지법 #에이즈 #디셈버 퍼스트 #질병 낙인 #병력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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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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