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말 한마디에 네이버를 그만뒀습니다

[공무집행방해: 마케터의 공무원 적응기⑤] 난 온실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등록 2017.11.29 21:05수정 2018.01.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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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에 걸린 문구가 내게 말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입니다.' ⓒ 신영웅


[기사 수정 : 2018년 1월 16일 오전 11시 40분]

#퇴근길에 고개를 돌리다

퇴근길 괜히 서울광장을 가로지르고 싶은 마음에 평소 타는 버스 대신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무심코 서울도서관에 시선이 머무르고, 눈길 끝에 잊고 지내던 기억이 시작된다,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던 그 때가.

'오늘담보대출', 오늘을 담보로 언제 올지 모르는 내일에 있을 행복을 기대하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대학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부터 시작해서 "취직하면 실컷 하면 되잖니?"라는 불멸의 레퍼토리로, 오늘을 희생해 내일을 준비하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개미처럼 살 것을 교육 받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10분 남짓이면 끝이 나는, 그래서 개미의 행복한 결말을 우리는 목격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개미와 같은 따뜻한 겨울은 빨리 오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살았고, 선배들도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내게도 이런 삶의 방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 부모의 삶이 틀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보여주신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다만 정답이 삶의 길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고민은 시작된다.

#곽백수 작가를 만나다


당시 홍보실 막내로 선배들의 보조역할을 충실히 하던 때였다. 그들의 말이 진리였고, 법전이었고, 미래였다. 부모 대신 회사 선배들의 보호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던 나는 한 웹툰 작가와의 만남으로 삶의 궤적이 완전 변해버렸다. 그가 던진 몇 마디 말로 '오늘담보대출'의 대출이자가 아까워졌다.

홍보실은 업무 특성상 언제나, 항상, 매일, 늘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과 같이 일을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래서 항상 레이더를 세우고 있어야 하며, 자연스레 야근이 많은 구조다. 특히 그날따라 더더욱 일이 많았던 (내가 진짜진짜 좋아하는) 선배가 나를 불렀다. 자신이 내일까지 보고해야 할 게 있어서 대신 인터뷰 지원을 나가줄 것을 부탁했다.

다른 선배들의 백업을 해야 해서 나 역시도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날따라 뭔가 위로가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택시에서 잠깐 졸아도 되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사실 택시에서 잠깐 조는 게... 그게 또 아는 사람만 아는 숨통 트이는 순간이다. 군대에서 화장실에서 초코파이 먹는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예상보다 인터뷰가 일찍 끝났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려고 하는데, 곽 작가가 날도 좋은데 평상에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얼른 자리를 털고 복귀를 했을 텐데 그날따라 또 이상하게 몸이 스르륵 평상으로 갔다. 누군가에게 억지 호감을 얻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시작된 평상 대화는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 적도 없지만 도사 같은 말들을 쏟아내며 나와 기자들의 입에서 끊임없는 탄식이 나오게 만들었다. 직장 경험이 없는 그가 우리보다 직장인의 애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들어서 아는 겉핥기 느낌도 아니었다.

#퇴사를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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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가우스 전자>의 곽백수 작가. 그의 말이 내 인생을 바꿨다. ⓒ 연합뉴스


기자들은 인터뷰 때보다 더 열심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고, 곽 작가는 행복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자신만의 경험치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들의 대화 속에서 존재감 없이 감탄만 하는 관객으로 남아 있었다. 뭔가 입을 열었다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사실 홍보실 취직을 하기 전부터 막연히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대학원 시절에는 운이 좋게도 방조교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배려로 광고와 디자인을 동시에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칠 때쯤 지병이 있었던 아버지가 위독해 지셨고, 그때부터 공부 대신 취업을 택했다. 그리고 가고 싶은 회사는 딱 한군데였다.

'가장 빨리 합격시켜주는 회사'

철없는 외동아들이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그때부터는 그냥 취직이 인생의 목표였고 운좋게 바로 취직이 되면서 짧게나마 성취욕을 맛봤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다시 스멀스멀 내 욕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지 않은가? 회사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곳이었고, 연봉도 '내가 이런 돈을 받아도 돼?' 하는 수준이었으며, 팀 선배들도 하나 같이 좋았다. 특히 동기들이랑 노는 것도 즐거웠다. 동기들에게 메신저를 뿌려서 4층 카페에서 7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선배들 뒷담화도 하고 신입사원의 멘탈에 대해서 꼰대질도 하며 그렇게 수다 떠는 시간이 삶의 낙이었다.

단 하나,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란 사실 그것만 빼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힘든 거라 믿고 참고 적응하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하면서 승진도 맛봤지만 그래도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곽 작가와 만난 것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에 '내 인생'은 없었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그가 던진 말에 나는 망치로 뒷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차암 몰라~. 지금 자기들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걸 말야. '내일' 있을 행복만 좇는데...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일은 항상 내일에 있는 거?"

저 말이 귀를 타고 목구멍을 지나 심장에 꽂혔다. 막연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내가 과연 '내일'은 행복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오늘 당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가정, 학교, 회사로 이어지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왔기에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온실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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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난 한 번도 온실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네이버를 그만뒀다. ⓒ 신영웅


#결심을 실행하다

'시스템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행복한 오늘을 만난 기쁨'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퇴사하기까지 7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선배들과 동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700원짜리 커피 한 잔과 동기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한 오늘을 위해서 난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7개월은 이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질척(?)거리며 퇴사 하고, 프리랜서로도 살아보기도 하고, 1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 들어가 브랜딩부터 퍼포먼스 마케팅, 홍보, 조직문화 설계(라고 쓰고 잡부라고 읽으면 딱이다) 등 창업자들의 배려 덕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회사의 성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창업의 짜릿함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라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목표 설정은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구체화 해보고 이를 위해 사소한 작은 행동이라도 행해야 한다는 것. 행동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리 큰 목표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 속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일에 있을 행복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이었다. 자신이 행하는 작은 행동 속에 기쁨이 없으면 목표설정을 의심해 볼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박원순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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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과 마라톤을(...) ⓒ 신영웅


그렇게 돌고 돌아 어쩌다보니 공무원이 됐다. 말 그대로 어공. 기업 홍보실부터 프리랜서, 스타트업, 창업까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색깔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을 때 지금의 '사장님',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를 점점 알아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어쩌면 세상이 그의 단면만 보고 있거나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도 안다. 그가 지금 예전 같은 상종가를 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사장님 알라뷰). 그러나 이런 시기에 과감히 사장님의 손을 잡은 것은 내가 그에게서 찾은 것을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맡고 있는 서울시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은 거만함보다 절실함에 가깝다. 왜 한 때 인기를 끌었던 광고 카피도 있지 않은가? "정말 좋은데~ 보여줄 방법이 없네~"

보여줄 방법이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지만 박원순을 리브랜딩 하고 있다. 마라톤도 함께 하고,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박원순이란 사람이 가진 욕망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한다. 그 욕망을 통해 서울시가 어떻게 변화해왔고, 앞으로 어떤 진화를 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오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행복한 내가 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서울과 박원순을 통해 세상에 내 역량을 점검 받고 싶다고 말하는 내가 너무 탐욕스러운가?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박원순을 팝니다' 연재를 통해 앞으로 서울과 박원순이란 프로덕트를 리브랜딩하기 위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등을 과감히 밝히고 시작해보고자 한다. 쉽게 말해서 패를 까고 한판 쳐보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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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을 팝니다. ⓒ 신영웅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신영웅님은 'Uncreative Director, 서울시장 비서실 미디어 비서관'입니다. 이 글을 포함해 신영웅 비서관의 다른 글 역시 필자의 브런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 #박원순 #서울시장 #퇴사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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