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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씨 미안해요... 24년차 <출발! 비디오여행>의 반성

[장수 기획 ⑨-1] 원조라는 자부심, 오행운 피디 "우린 끊임없이 혁신했다"

17.12.09 12:01최종업데이트17.12.1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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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93 최고의 영화정보 프로그램'

24년째 매주 일요일 낮을 책임지고 있는 MBC <출발! 비디오 여행>(아래 '출비')의 캐치프레이즈는 간결하다. 여기서 최고라는 단어의 뜻은? 굳이 풀지 않더라도 지상파 3사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수준 높은 프로를 지향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지난 11월 26일이 1205회였고, 회당 5편 이상을 소개했으니 어림잡아 계산해도 이 프로에서 소개한 영화는 6000편을 훌쩍 넘는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 에서 방송인 김경식은 '영화 대 영화' 코너를 맡고 있다. 이 코너는 전창걸 때부터 쭉 이어진 장수 코너기도 하다. ⓒ 이희훈


<출발 비디오여행> 녹화에 참여 중인 서인, 양승은 아나운서. ⓒ 이희훈


김생민 역시 지난 14년 동안 <출발 비디오 여행>을 책임지는 주요 출연자다. 현재 '기막힌 이야기' 코너 등을 담당하고 있다. ⓒ 이희훈


이렇게 장수하는 이 프로의 또 다른 특징이 있으니 진행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출연진의 평균 출연 기간 역시 10년을 훌쩍 넘긴다는 사실. 이철용 성우가 만 16년, '영화 대 영화' 김경식이 15년, '기막힌 이야기'의 김생민이 14년, 그리고 김구 성우가 10년째다. 여러 영화 정보 프로가 명멸했고, 같은 요일 경쟁하던 다른 지상파 프로들이 방송 요일을 바꾸는 중에도 <출비> 만큼은 꾸준했다. 지난 30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한창 녹화 중이던 제작진과 출연진을 직접 만났다.

타사 프로 모니터링은 기본, '유튜버'도 만나

상암MBC 스튜디오 부조정실에서 녹화를 지켜보고 잇는 <출발 비디오여행>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 이희훈


<출발 비디오여행> 녹화는 초록색 판을 배경으로 크로마키 기술을 사용하는 식이다. ⓒ 이희훈


분주하면서도 정확하다. <출비> 팀의 녹화를 지켜본 소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한 스튜디오 녹화는 11시를 막 넘기기 전에 끝났다. 특수 효과를 입히기 위한 녹색 크로마키 판을 배경으로 김생민, 서인 아나운서, 양승은 아나운서, 김경식 등이 순서대로 들어갔다. 본인들에게 주어진 대본을 받자마자 쓱 훑어 보더니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가 오면 정확히 분량을 소화했다.

현재 지상파 3사 모두 외주 제작사와 함께 본사가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중 <출비>는 한 제작사와 20년 가까이 인연을 맺고 있다. 작가진 역시 10년 이상 호흡한 이들이다. 그만큼 노하우가 쌓여 있고, 시스템 역시 안정적이라 볼 수 있다.

"매주 타사 프로를 모니터링 한다. 당일 방송을 못 보면 다음날 보기도 하고, 일단 챙겨 본다. 어떤 아이템을 다뤘고 얼마나 다뤘는지 초를 재면서 본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차별성은 일단 가장 오래됐다는 것, 그리고 각 코너들이 그 자체로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대 영화', '기막힌 이야기' 등은 15년 가까이 된 코너다. 눈으로 우리 프로를 보지 않더라도 목소리만 들어도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작사가 아피아 스튜디오인데 여기 대표님이 <출비>의 전신 <비디오 산책>이 끝난 직후부터 함께 했다. 다른 방송사는 몇 개의 제작사가 번갈아 만들거나 필요하면 제작사를 교체하기도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이 지점에서 궁금했다. 최근 영화 정보 소개 콘텐츠 시장은 지상파뿐만이 아닌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 등 다양한 채널로 확대돼 있다. 특히 몇몇 유튜버들은 많게는 수십만 명의 팔로우를 갖고 있어 그 파급력이 강하다. 지상파 영화 정보 프로그램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저 역시 유튜브 등을 자주 보면서 뭔가 배울 게 있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한 유튜버를 모셔서 함께 더빙한 적도 있다. 장단이 있더라. 이 분들은 본인이 작가인 동시에 내레이션도 하잖나. 가감 없이 본인 생각대로 영화를 해석하고 날 것 그대로 이야기하는 면이 있다. 이건 큰 장점이긴 한데 지상파 방송은 또 다른 면이 있다. 언어도 정제해야 하고, 시각 역시 일방적일 수만은 없다. 유튜브 등은 그것대로 발전해 가는 것이고 우린 우리가 지킬 걸 지키며 가는 것이니 역할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 동안(오 피디는 2년 전부터 현재까지 해당 프로 책임피디 직을 맡고 있다-기자 주) 제 가슴에 새긴 게 있다. 첫째는 시청자를 바라보고 방송하자는 것, 둘째는 제작진에 대한 존중, 셋째는 영화에 대한 존경이었다. 이게 지상파가 갖춰야 할 틀이라고 본다. 유튜브나 다른 비디오 매체는 본인들 개성과 시각을 드러내며 하는 게 묘미다. 그걸 요구하는 시청자 층도 있고. 그걸 TV로 가져 온다고 해도 성공할 것 같진 않았다."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지상파의 본분, 그리고 <공범자들>

MBC <출발 비디오여행>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 이희훈


지상파의 틀, 본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갔다. 오행운 피디는 "보통은 (시청률을 생각해서) 상업영화에만 관심을 두기 쉬운데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신작 영화 60% 정도에 지난 영화와 저예산, 예술영화를 적절히 소개하는 방향으로 작가들과 논의한다"며 그는 "12월 3일 방송엔 서울독립영화제 관련 내용도 넣었다"고 강조했다.

"나름 그 부분에서 노력하려고 했다. 특히 작은 영화제들 그러니까 환경영화제, 인권영화제, 제천영화제 등을 다루려 했다. 오히려 부산영화제 같은 큰 행사는 우리가 다루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조명하니까. 또 다큐 영화들도 한 달에 서너 편이라도 꾸준히 소개해 왔다. 그나마 지난 2년 동안 이 프로를 맡으면서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지난 11월 26일 <출비>는 최승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을 소개했다. 정권에 순응한 공영방송 몰락기를 다룬 이 영화를 소개한 것에 반향이 나름 있었다. 오행운 피디는 "오히려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제작진과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다. 작년 12월이었나. 내년이 기대되는 배우 특집으로 송강호씨를 다뤘거든. 그 하면 당연히 영화 <변호인>이 나와야 하잖나. 송강호를 다룬다고 하니 방문진에서 우리 대본을 달라고 했다더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사무처장을 통해 지시한 것이었다. (고영주 이사장은 <변호인>의 소재 중 하나인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다-기자 주)

뒷이야기를 알아보니 제작진들이 그간 <변호인>을 제대로 못 다뤘더라. 윗분들이 싫어한다고. 우리가 그런 시절을 살았던 거다. 마음이 무거웠다. <공범자들>은 다큐 영화로도 흥행을 했고, 아마 언제였더라도 소개를 했을 건데 특수한 상황에 막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정권은 바뀌었는데 MBC는 그대로였으니 그런 영화를 못 들이민 거지. (이제야 방영해서) 마음의 빚을 좀 던 셈이다.

방송 후 회사 내에선 이심전심 다들 힘을 주는 느낌이었고, SNS 반응을 보니 '사장 없어지니 이런 것도 한다', '파업의 성과가 있나보다 대박' 이런 식이었다. 부끄럽고 마음이 그랬다. 우린 자율성 하나 지켜내지 못했고 그 대가를 치른 건데 시청자 분들이 늦게라도 반응해 주신 거니까. 어떤 영화라도 이젠 재밌으면 틀어야 한다."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선구자의 고민

'영화 대 영화' 코너는 김경식을 주축으로 서인, 양승은 아나운서가 대본을 숙지한 후 진행하는 식이다. ⓒ 이희훈


크로마키 녹화 중인 양승은 아나운서. ⓒ 이희훈


영화 장면과 진행자를 합성하기 위해 녹색으로 둘러 쌓인 크로마키 스튜디오 전경. ⓒ 이희훈


월요일엔 타 방송 프로 리뷰 및 자료 조사, 화요일은 제작진 회의와 아이템 확정, 수요일은 편집, 목요일과 금요일은 더빙 및 내부 시사. 그리고 일요일 본방송. 

<출비> 제작진과 출연진의 일주일 일정이다. 이 틀 속에서 다들 맡은 역할을 하는 셈인데 정작 오행운 피디는 "작가 분들이든 일선 피디들이든 난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무간섭의 원칙을 공개했다. 방향을 잡아주면서 나머지는 치열하게 회의를 통해 정하는 주의였다.

다만 이런 일상과 별개로 오 피디가 처음 이 프로를 맡자마자 한 일이 있으니 역사 정리였다. <출비>가 다뤄온 소재와 거쳐 온 여정을 꼼꼼하게 표를 만들어 정리한 것.

"그간 많은 책임피디들이 거쳐 갔는데 저 역시 처음엔 잘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이 프로가 MBC의 소중한 프로더라. 그런데 그만큼 대접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우리가 1200회를 넘어갔는데 1회부터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재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어떤 영화를 몇 분 소개했고, 누가 내레이션을 했는지 등을 모두 수작업으로 정리했다. 저 다음에 누가 오더라도 이 프로에 대해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가늠해 보려고 정리한 의미도 있다. 

MC를 비롯해 오래 하신 분들에게 보상을 해드려야 겠다고 생각해서 감사패를 드렸다. 사실 그 분들이 헌신한 것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건데 그래도 그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게 중요했다. 제작진들은 다른 형태로 보상해 드리려 한다. 제작비가 여전히 부족하다. 20년 전 제작비보다 오히려 깎였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제작비가 좀 오르면 좋겠다. 이 부분을 좀 강조해 달라(웃음)."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가장 먼저 길을 낸 선구자라지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오 피디는 "다른 영화 소개 프로들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서로가 다들 비슷해졌다"는 점을 짚었다. 개봉을 앞둔 영화를 주로 담으면서 아이템이 겹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오행운 피디는 "다들 영화 소개 프로에 제작비를 많이 투입하지 않다 보니 새로운 시도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며 "또 일부 프로는 지나치게 홍보성으로 가는 게 있더라. 그게 안타까운 지점"이라 털어놨다.

ⓒ 이희훈


ⓒ 이희훈


"시장에서 선구자였기에 시청자들에게 먼저 각인된 게 크다. 영화 소개 프로하면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생각은 무시 못 하거든. 여기에 더해 20년 이상 하면서도 꾸준히 변화를 모색했다.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공공적인 면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제작진의 헌신적 노력이 지금의 역사를 있게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수 프로는 곧 혁신에 성공한 프로라고 생각한다. 기업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신생 회사가 기발한 마케팅으로 주목받는 일이 있잖나. 그게 혁신처럼 보이는데 진짜 혁신은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중간중간 자기 혁신을 했기 때문이지. 혁신을 멈추는 순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프로도 '심스틸러', '영화 대 영화' 등을 만들며 혁신해 왔다."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MBC에 새로운 사장이 선출된 후 <출비>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오행운 피디는 <출비> 팟캐스트, 모바일 최적화 등 이루지 못한 목표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결국 제작비 문제"라고 애써 웃어 보이면서도 그는 "그런 시도를 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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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비디오 여행 MBC 오행운 김경식 김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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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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