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노조, 고대영 사장보다 더 얄미웠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434] 김은곤 KBS PD

등록 2017.12.01 10:50수정 2017.12.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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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곤 KBS PD ⓒ 이영광


언론노조 KBS본부(아래 KBS 새 노조·위원장 성재호)에서 만든 '파업과 사람들'이란 영상이 있다. 그중 하나가 파업 봉사단이다. 이게 KBS 새 노조는 물론 네티즌에게서도 화제라서 3편까지 나왔다.

파업 봉사단이 궁금해져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신관에서 파업봉사단으로 활동하는 김은곤 PD를 만나 파업봉사단 이야기를 비롯해 지난주 나온 KBS 이사들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와 KBS 내부의 분위기를 들어보았다.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오늘(28일)로 파업이 86일째입니다. 지난주 감사원 결과가 나와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을 것 같은 데 어떤가요?
"사실 지난주 금요일(24일) 감사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출구가 안 보여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MBC 파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서 희망도 보였지만, 저희만 남다 보니 여론의 호응도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과거 고대영 사장과 국정원의 커넥션이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 명백히 드러났는데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다는 게 더 답답했죠.

그래서 이사들 비리 문제나 경영진의 무능함에 대한 철저한 감사 결과가 나와야 어느 정도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난주 금요일엔 조합원 모두가 민주광장에서 집회하며 결과를 숨죽여 기다렸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기대했던 것만큼 감사결과가 나온 거 같아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죠. 이제 방통위에서 적절한 해임 절차를 진행한다고 하니 이번 주부터는 파업의 열기가 더 뜨거워졌습니다."

- 공영방송 KBS가 석 달 가깝게 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방통위 등 정부 기관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느낌도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과거 적폐청산이라고 해서 검찰이나 정부 조직 내에서 많은 개혁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방송의 적폐 청산 문제에 대해선 매우 소극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지난 9년 동안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역할을 못 했기 때문에 정부에게도 국민들에게도 1/N도 못 한 방송국이 돼버렸죠.

지난 시간처럼 더 이상 전파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아까운 시간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을 이제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됩니다. 감사원 결과에서도 명백한 문제가 밝혀졌기 때문에 이제 속도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 최근 사 측이 구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단체협약이죠. 본부노조와 단체협약 관련해 단 한 번의 상의도 없었고, 또 듣기론 구 노조 조합원들과 의견 공유도 안 된 모양이에요.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항의 글들이 빗발쳤어요. 그리고 사장 퇴진을 외칠 땐 언제고, 이제 와 사장과 손 맞잡으며 단체협약서를 듣고 사진을 찍은 모습에선 정말 웃음도 안 나오더라고요.

이제 내년부터는 새 노조가 교섭단체가 됩니다.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마음이 급했나 봐요. 구 노조 유리한 대로 멋대로 협약 내용을 고쳐서 사인을 했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많아요. 그리고 그 날 저녁 언론에 '3년 만에 어렵게 단체협약을 맺었다'라고 기사를 뿌렸죠. 하지만 내부 구성원과의 협조 없이 단체협약 효력은 이뤄질 수 없을 거예요. 본부노조도 무효소송을 진행하고 있고요.

저는 이번 파업에서 사장 보다 더 얄미운 사람들이 바로 구 노조 사람들이에요. 한때 방송법 개정과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며 파업을 한다고 출정식을 했는데 그 뒤로 제대로 모여 집회를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사실상 파업을 안 했어요. 제대로 파업한 적도 없으면서 회사와 협약하고 자유한국당 논리대로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니 기명 파업으로 전환하고, 얼마 전엔 아예 파업을 접고 들어갔다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했죠.

그때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수십 통의 축하 전화를 받았어요. 정말 허탈하더라고요. 뒤통수 세게 맞은 느낌도 들고. 모두 분노를 참지 못했지만, 오히려 이젠 확실하게 구 노조가 어떤 존재라는 걸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을 테니 잘 된 측면도 있다고 봐요."

- 상실감이나 자괴감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죠. 사실 어떻게 보면 같은 회사에서 얼굴 보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한 회사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노조가 있다 보니 MBC처럼 한목소리를 내 파업을 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특히 이번 파업 같은 경우에는 '언론 적폐청산'이라는 큰 목표를 걸고 싸우고 있는데 구 노조에서 저렇게 나오니 저희 목소리가 오히려 묻히게 되는 것도 있고, 시민들도 오해하는 부분도 있고 그런 부분이 아쉽고 상실감이 커요."

- 파업봉사단에서 활동하시잖아요. 어떤 일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파업의 헤드쿼터는 노조 집행부와 각 구역 대의원, 중앙위원 등 비대위 위원으로 구성돼 있고 투쟁 전략을 짭니다. 그 전선대로 조합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집회에 참여하고, 구역별로 투쟁을 하죠. 고대영 사장 집 앞을 찾아간다든지, 이사 근무지를 찾아간다든지, 아니면 사내에서 피케팅을 해요. 그 중간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파업봉사단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하는 일은 집회 한 시간 전에 모여서 집회에 필요한 물품도 옮기고 피켓이나 방석도 깔고 중간중간 플패카드도 붙여요. 또 선전전에서 시민들에게 노보도 나눠드리는 등 잡다한 일을 하고 있어요."

- 파업봉사단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보통 PD, 기자, 아나운서, 제작기술 구역의 젊은 기수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봉사하고 있어요. 대부분 10년 차 미만이에요. 저도 7년 차인데 제 동기들이 앞 순번에서 봉사하고 제 차례가 와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초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못 했어요. 항상 집회와 구역 투쟁에만 참여하다가 동기, 후배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고 봉사하는 걸 봤어요. 다들 똑같은 입장일 텐데요. 괜히 미안하고, 저도 뭔가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파업과 사람들'이라는 파봉단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활동하게 됐습니다."

- 몇 명정도인가요?
"격일로 두 조가 돌아가며 봉사하는데 요즘은 집중투쟁 기간이라 거의 매일 다른 미션을 받아 봉사하고 있어요. 한 조에 15명씩, 총 30명 정도가 상주 인원이고 순번제로 돌아가다 보니 지금까지 참여한 전체 봉사 인원은 거의 100명 가까이 되죠. 꽤 많죠."

- 파업봉사단 활동하시며 재밌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
"매일 하는 일이 뻔하다 보니 일 중에는 재밌는 게 없고요. 파업기획단에서 파업봉사단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파업과 사람들'이라는 고퀄리티의 감동적인 미니 다큐예요. 보드피켓을 직접 색칠하고, 파업 손수건을 한땀 한땀 바느질해 만들고, 함수를 활용해 최대다수의 최대착석을 만들어낸다는 방석 깔기 기법까지 그 상상력이 과장되면서도 전혀 오버스럽지 않게 보여줘 첫 편이 조합원들의 대흥행을 이뤄냈습니다. 무려 3탄까지 나왔어요.

영상을 찍으면서, 찍고 난 걸 계속 보면서 은근히 저희가 단합되더라고요. 다른 직종이라 어색해지기 쉬운데 더 편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서로 다른 직종의 어려운 점도 이해하게 됐죠. 아무래도 함께 만드는 작업을 공유하다 보니 서로에 더 친숙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영상 찍을 때 분위기는 어땠어요?
"흥미진진했어요. 무엇보다 과장된 설정이라 재밌었죠. 저도 제 외모가 약간 중동풍으로 이국적인 인상이라 아랍지역의 대표적인 방송국 알자지라 방송 노조위원장 역을 맡게 됐어요. 당일 아침에 와서 대본도 없이 즉석에서 연기를 생각해야 하니 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서로가 자유롭게 아이디어도 내고 촬영하니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 PD라서 카메라 뒤에 늘 있는 데 카메라 앞에 서니 어때요?
"굉장히 어렵죠. 연출할 때는 뒤에서 출연자들에게 이상적인 연기를 요청하는데 아쉬운 점이 컸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이제 출연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 봉사하며 파업하는 동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다들 지금 한창 열심히 방송을 만들고, 사회 곳곳에 소외된 분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가야 할 시간인데 너무 안타까워요. 물론, 이 시간이 꼭 필요하지만, 조직의 몇몇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직원이 임금도 못 받고, 매일같이 추운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 더 미안하고 그래요. 그래도 함께 고생하며 외쳤던 이 시간이 나중에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한 싸움이라는 걸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란 생각에 늘 감사합니다."

- 파업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제가 2011년에 입사해서 벌써 세 번째 파업이네요. 2012년 95일 파업 때는 신입사원 딱지를 막 뗄 때라 사실 그 기간에는 KBS라는 조직에 대해 선배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 제작을 한 지 7년 차가 된 이번 파업 때는 그 불합리했던 제작 환경을 몸소 경험했고,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당사자가 됐습니다.

파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건 아니에요. 그동안 쌓였던 조직 내부의 한계에 대한 울분이 파업을 통해 드디어 분출된 것일 뿐이죠. 세월호 참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 때마다 KBS는 현장에 있어도 제대로 된 현장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죠. 신뢰가 떨어지는 건 현장에 있는 실무 기자, PD들이 잘 알아요. 처음에는 국민들에게 공범자라고 욕을 먹는 게 두려웠지만, 지금은 무관심이 더 두려워요.

이제 국민들이 전혀 신뢰를 안 하고 KBS에 기대하는 기대치가 전혀 없어서 그저 1/N 역할도 못 하는 언론사가 됐단 생각이에요. 'KBS가 파업했어? MBC는 알겠는데 KBS는 왜?'란 목소리가 들려요. 언젠가 사장과 이사진은 바뀌겠죠. 하지만 우리가 당장 들어가서 그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가 더 어려운 과제에요. 신뢰라는 게 쌓이는 건 수십 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서 바닥을 쳤으니, 조금씩 우리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 지난주 시사교양 PD들이 고대영 사장뿐만 아니라 조인석 부사장의 퇴진도 요구했어요, 조 부사장은 잘 안 알려졌는데 어떤 인물인가요?
"솔직히 그 전에는 잘 몰랐어요. 과거 TV 본부장 때 시사를 직접 한다고 해서 시사하는 본부장이라는 정도였죠. 2011년 김인규 사장 시절에 다큐멘터리 국장을 하면서 백선엽 장군의 다큐,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한 다큐 제작을 강행하면서 승승장구했죠. 시사교양국의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배들에게 듣기론 한때는 프로그램을 만든 PD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싸워서 지켜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입사한 이래로 그 '시사'라는 게 너무나 당연한 관행이 됐습니다. 후배들은 무조건 선배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선배들이 고치라는 대로 영상 컷이든 원고든 잘 고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겁니다. 막 입사한 후배들은 초반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내기 위해 맞서다가도 '너희는 경험이 부족해'라며 일축하는 선배들의 목소리에 더 강하게 항의하지 못하고 결국 말 잘 듣는 후배로 남게 되는 겁니다.

조인석 본부장이 만들어낸 PD 사회. 그가 임명한 국장, 부장, 팀장 등 그들은 점점 그렇게 아이템에서부터 프로그램 세세한 내용까지 '시사'해 바꿔내는 PD 사회의 암묵적인 게이트키핑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시사교양이 깨야 할 벽이 된 거죠. 그가 줄곧 이야기했던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그 말. 우리 PD사회에는 그러한 PD 목소리가 절실합니다."

- 자괴감이나 모욕감도 컸을 것 같아요.
"엄청나죠. 많이 싸웠어요. 파업할 때가 아니라 실무를 할 때 일개 PD가 아무리 외친들 먹힐 수준도 아니고 그렇게 계속 항의했다간 기자들처럼 다른 부서로 발령 보내거나 좋은 프로그램 갈 기회가 없거나 하는 인사 조처를 하니까 말 잘 듣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시점이라서 그나마 그 이후를 더 생각하게 돼요. KBS가 파업해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게 우리 프로그램들이 별로 이슈가 안 된 영향이 컸던 거겠죠. 들어가서 더 치열하게 싸우고, 정말 필요한 방송을 만들겠습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말했듯이 저희는 더 치열한 내부적인 싸움을 하고, 공영방송이라는 가치에 맞도록 방송을 지키겠습니다. 저희 싸움 많이 응원해주시고,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김은곤 #파업 봉사단 #KVS새노조 #고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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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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