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아니면 장례식,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평등행 버스를 타겠다 ③] 성소수자를 '그런 사람'으로 부르는 세상에게

등록 2017.12.05 17:02수정 2017.12.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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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앞둔 12월 9일,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이 열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07년 삭제되었던 7개의 차별금지사유(병력, 출신국가, 성적지향, 가족형태, 학력 등)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묻는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나중인가? 차별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평등행 버스를 타겠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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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는 11월 한달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집중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서명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 ⓒ 무지개인권연대



지난 10월 2일 대구에서도 본격적으로 차별금지법제정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동성로 중심에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한 서명캠페인은 무지개인권연대 이외에도 대구 지역 4개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가 함께 참여했다. 11월 내내 매주 수요일마다 대구지역 4개 캠퍼스(경북대, 계명대, 대구대, 영남대)에서 이어질 서명캠페인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고도 차가웠다. 막 쌀쌀해지기 시작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피켓을 든 활동가들을 돕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음향장비를 싣고 온 시민도 있었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간식을 사서 전달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동성로를 지나가던 한 모녀가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따님이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저 같은 장애인들도 차별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나요?"

자신을 장애인으로 소개한 딸이 펜을 들고 서명용지에 사인을 하려고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손을 들어 막아섰다. 딸의 펜을 막았던 손가락은 곧 내게로 향했다.

"근데 이 법, 이런 사람 때문에 만드는 것 아니에요?"

나는 '이런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지 잠시 고민했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어머니의 손은 다시 나눠주던 전단지로 내려가 '성소수자'라는 글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사람 때문에 만드는 것 아니에요?"

"이런 사람". 분명 처음 들어보는 말은 아니었다. 2015년 제7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를 한 달여 앞둔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직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왔다. 집에 들어서고 보니 환한 거실과는 반대로 내 방에만 컴컴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서자 책장에 꽂혀 있어야할 대구퀴어문화축제의 회의 자료들이 바닥에 흩어져있었고, 엄마가 방 한 가운데 앉아 울고 계셨다. 울고 있는 엄마를 향해서 나는 말했다.

"엄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7회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던 중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가족에게 강제로 아웃팅을 당했다. 엄마는 무명의 전화를 한통 받고 내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시고는, 방을 뒤져 책장에 잔뜩 꽂혀있던 회의 자료들을 펼쳐놓으셨다. 그리고 성적지향이라는 단어 위에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오전에 발신자가 표시되지 않은 전화를 무시했던 날이었다.
 
나는 왜 그날 엄마에게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야 했을까. 당당하게 '그래, 엄마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그런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울고 계신 엄마를 우선 달래야한다는 생각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 말은 동시에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해야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나는 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까. 지금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 일은 내 안에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외면당하는 "그런 사람들"

그날 서명 전에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한 어머님은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 아이 같은 장애인들이 이용당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 차별하는 걸 왜 금지해야 하는데요?"

마치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입에도 담기 싫다는 듯 나와 전단지를 번갈아 가리키는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딱히 무엇이라 응수할 수가 없어서 "그런 사람도 사람이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어머님은 따님이 쓴 서명 위에 볼펜으로 짙게 두 줄을 그었다. 며칠 후, 그렇게 서명된 용지는 우편을 통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로 부쳐졌다.

이렇듯 다른 차별에는 눈이 밝은 사람들도 성소수자 문제에서는 외면하거나 적극적으로 차별에 가담하는 경우를 자주 마주친다. 장애인 차별에는 예민한 당사자가 장애인이자 성소수자인 사람의 인권은 반으로 쪼갤 수 있는 것처럼 성적지향이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대명제 앞에서는 동의하는 입장이었던 사람들도 성소수자는 당연히 법적·제도적 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아무렇지 않게 혐오 발언을 뱉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지난 몇 년간 성소수자 관련 행사는 장소 대여와 집회 신고 등 제도적 영역에서도 지자체로부터 악성민원과 미풍양속 저해를 핑계로 거부당하고 있다. 제주시청에서는 제주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민원조정위원회를 열어 개최장소인 신산공원의 사용을 철회하기도 했다. 10월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동대문구에서는 행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돌연 체육관 대여를 취소했다. 이런 일들은 쉬지 않고 성소수자들의 생존을 위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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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구경북 인권시민사회단체 간담회가 열렸다. 오는 12월 8일에는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나

지난 5월 24일은 성소수자들에게 너무나 힘든 날이었다. 동성애자인 육군 대위가 합의한 상대와 동성 간의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군형법상 유죄판결을 선고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군형법 92조 6항에서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형법상 유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날 대구에서는 이 같은 판결에 분노하며 대구지역 성소수자 단체, 여성 단체, 장애인 단체 등 인권 시민단체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많은 성소수자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지향'은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보수기독교계와 보수정치인들은 동성애와 에이즈를 결부시켜 마치 성적지향으로 인한 차별이 금지되면 전국에 에이즈가 창궐할 것처럼 동성애와 에이즈를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병력과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 선동이다.

지금 이 순간 수없이 많은 "그런 사람"들이 이 같은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당하면서 내 존재를 감춰야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로.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정치가 되어버린 피곤하고 피곤한 나날들.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의 목표가 자살하지 않기인지, 그 날선 손가락 끝에 성소수자를 가리키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2016년 SOGI법정책연구회의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자살률은 비성소수자의 10배가 넘는다.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로 성소수자들이 가장 자주 만나는 장소가 퀴어문화축제, 그다음이 장례식장이라는 농담도 귓전에 들려온다. 많은 비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들이 그저 보통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하고 독특하고 외따로 있는 비일상적 존재로서의 성소수자만 상상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특수한 차별에 대한 특수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우리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그런 사람"이 일상적인 존재인 만큼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도 아주 특수한 차별이 아니다. 차별은 이렇듯 내 삶에 아주 가까이 붙어있다. 나는 단지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일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고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체육관을 사용하고 길을 지나가다 만난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아주 당연하고 보편적인 권리를 누리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제정하고자 하는 차별금지법 역시 대단히 특수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평등법이며 "그런 한사람, 한사람" 누구도 차별을 비껴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보편적 평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지금 내 앞에 산처럼 쌓인 차별과 혐오가 한순간 마법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숨 쉬듯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법제정 이후에도 마주해야할 수없이 많은 고통의 순간들을 감내하며 계속 싸우며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말하고 싶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두 줄 그어지지 않은 존재로 살고 싶은 나의 의지를.

그런 사람도 사람이니까. 우리는 누구나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녀야 하니까. 12월 9일 나는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로 향하는 대구 발 평등 버스에 오른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기린 님은 무지개인권연대 운영위원, 대구퀴어문화축제 집행위원입니다.

<12/9 함께 열자 평등 세상>

12월 9일 세계인권선언일맞이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 재정 마련을 위한 모금에 함께해주세요. https://socialfunch.org/equalact2017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집회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 200만원 모금 시 :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 최소 집회비용(공연 60만원, 수화 통역 20만원, 현수막 20만원, 음향 100만원)으로 (빚 안내고) 집회 성사!
△ 350만원 모금 시 : 힘차게 외쳐보자! 무대 업그레이드!
△ 450만원 모금 시 : 더멀리 더크게! 지역 참가자를 위한 버스대절!
△ 500만원 모금 시 : 어화둥둥 차별금지법 제정! 참가자 모두를 위한 무지개 팔찌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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