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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둔 에이즈 환자들, 이렇게 발랄할 수가

리뷰 - 영화 < 120 BPM > 1980년대 후반, 프랑스 '에이즈' 운동 단체들의 이야기

17.12.04 16:35최종업데이트17.12.0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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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올해 열린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로빈 캉필로 감독의 영화 < 120 BPM >(2017)은 1980년대 후반 프랑스 내 에이즈 행동주의 단체 '액트 업(ACT UP) 파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액트 업은 프랑스 외에도 전 세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에이즈 운동단체다. 에이즈 환자 증가에도 치료제 하나 내놓지 않는 정부와 제약회사에 뿔난 액트 업 파리 멤버들은 각종 집회와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 증진과 에이즈 확산 방지 운동에 앞장선다.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알려져있다-기자 말) 양성 보균자는 아니지만, 액트 업 파리 활동에 관심이 많아 신입회원으로 합류한 나탄(아르노 발로아 분)은 액트 업 파리 멤버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션(나후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분)에게 호감을 느낀다. 션은 HIV 양성 보균자이지만 나탄이 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차곡차곡 둘만의 사랑을 키워가던 어느날, 션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가고 이별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에이즈 확산 방지 및 환자들을 위해 형식적인 정책만 내놓고 있는 정부에 대항해 싸우는 액트 업 파리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자주 모여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한다. 어느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단체의 주요 안건과 행동 강령을 두고 각자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은 종종 갈등을 빚고 충돌한다. 하지만 이들은 에이즈 환자 인권 증진과 에이즈 확산 방지 운동을 위한 목표 아래 하나로 뭉친다. '똘레랑스(관용의 정신)'로 대표하는 프랑스의 정체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국 관객으로서는 슬프게도 1989년 프랑스 내 HIV 양성 보균자들의 상황이 2017년 한국의 HIV 감염인 및 에이즈 환자들이 처한 현실보다 더 나아보인다. 2017년 한국에선 유독 HIV, AIDS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점철된 이슈가 부각됐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용인 여중생 에이즈 사건부터 부산 에이즈 사건까지,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당연히 에이즈 확산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응책을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HIV 보균자와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 것, 동성간 성행위는 당연히 금지하는 것 등 HIV와 AIDS에 관한 편견을 조장하는 극단적인 '루머'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서울프라이드영화제


< 120 BPM >에서 '액트 업 파리' 멤버들은 에이즈 치료제 요구 외에도 에이즈 예방 운동에 많은 공을 들인다. 에이즈는 예방이 중요한 질병이다. HIV와 AIDS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고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당시 프랑스 정부는 자국 내 에이즈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으로 일관한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는 오직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있다. 상황이 이러니 HIV 감염인, 에이즈 환자들이 직접 나서서 짱돌을 던질 수밖에 없다.

< 120 BPM >은 극영화임에도 불구, 액티비즘(적극 행동주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그래서 < 120 BPM >의 장면들 대다수는 화면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촬영 기법)로 촬영, '액트 업 파리' 멤버들의 투쟁과 일상을 생동감있게 담고자 한다. 장면 대부분이 핸드헬드로 촬영된 터라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된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로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특히 '액트 업 파리'에 속한 청춘들이 젊음을 불태우는 클럽 씬들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요근래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영화 중 < 120 BPM >만큼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이미지의 총체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 120 BPM >은 심장 박동수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처럼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HIV 양성 보균자들인 이들의 삶은 더욱 위태롭게 느껴진다. 격렬한 시위 도중 누군가 쓰러지고 동료들이 한두 명씩 곁을 떠나는 슬픔 속에서도 '액트 업 파리' 멤버들은 뜨겁게 사랑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다소 신파로 빠질 위기의 순간에도 < 120 BPM >은 어떤 순간에서도 빛을 잃지 안는 '액트 업 파리' 멤버들처럼 굳건한 발랄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항시 도사리는 죽음의 위기, HIV와 AIDS를 둘러싼 각종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용기. 이것이 영화 < 120 BPM >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영화 < 120 BPM >은 지난 11월 2일~8일 열린 2017 서울프라이드 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에선 처음 상영됐다. 오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열리는 2017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에서도 소개된다.

120 BPM 에이즈 HIV 영화 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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