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고요"

등록 2017.12.04 11:02수정 2017.12.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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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중학교 동창을 만난 이야기]

한 열흘 전, 동창 A를 만났습니다. 거의 30여 년 만에 만난 셈입니다. 중학교 때만 해도 꽤 활발하고 명랑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그는 지나칠 정도로 과묵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만나게 되니 중학시절 때 서로가 공유했던 추억 거리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로 이민 갔던 동창 B가 10여 년 만에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잘됐다 싶었습니다.

나 : "오늘 너 만나기 잘했다. B가 12월에 온다는 소식 들었지?"
A : "음…, 나는 못 가…."


제 기억 속의 A와 B는 단짝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B의 이야기를 꺼내면 A가 중학교 시절의 명랑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A는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자꾸 캐묻는 저에게 A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A와 B는 사소한 의견 차이로 말다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를 비난하며,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합니다.

B : "너는 돌대가리야."
A : "너는 새대가리야."
B : "육갑하네!"
A : "지랄하네!"
B : "미친 새끼!"
A : "병신!"
B : "……."


A는 이제야 알겠냐는 듯 저를 쳐다봤지만, 저는 '그게 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유치한 말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저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는 소아마비였습니다.

A는 물론 소아마비인 B를 겨냥해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B에게 내뱉은 한마디에 화들짝 놀란 것은 A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A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B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30여 년이 지나도 그 미안함은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A의 말을 듣고 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 "30년이 지났는데 B가 그걸 기억이나 하겠어? 그리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A : "그건 네 생각일 뿐이지."


A는 이렇게 말하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11월 27일,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습니다.

지난 11월 2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세월호 유골 은폐 사건은 국정조사해야 한다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출연했습니다. 그때 그가 김현정 앵커와 나눈 이야기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정 : "(…) 유골 은폐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 정말 국정조사감이다. (…) 이것은 아마 국민과 유족 가슴을 몇 번 더 아프게 한 사건이 아닌가 (…)."

김 : "(…) 그런데 세월호 유족들은 (…) 그동안 세월호 진상규명에 그렇게 소극적이었던, 심지어는 방해가 되는 말까지 해왔던 자유한국당이 지금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느냐. 가족협의회 입장 어떻게 보세요?"

정 :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진상규명에 그렇게 반대를 했습니까? 진상규명은 밝혀져야죠. 그리고 같이 세월호 특조위도 했기 때문에…."

김 : "세월호의 '세' 자도 입에 담지 말라는 게 가족협의회 위원장 이야기더라고요."

정 : "그건 그분들의 생각이고요(…)."

그것 참….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저는 한참 동안 생각이 툭 끊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0년 전의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이렇게 물었다지요?

"네가 유대의 왕이냐?"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대의 말일 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최낙영 위원은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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