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로 아이 얻은 이주노동자, 그들에게 찾아온 시련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부에게 찾아온 '국복이', 8천만원 빚으로 시작한 생명

등록 2017.12.06 17:05수정 2017.12.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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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만 낳고 베트남으로 가려고 했는데…" 


지난 4일 기자와 만난 완구억(48)은 말을 더 잇지 못하더니 "아이를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갈 수 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완구억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건 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2002년 겨울이었다. 3년간의 군 생활을 막 마쳤을 때, 먼저 제대하고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있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완구억은 한국어를 공부하면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을 통해 입국했다. 그러나 한국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학비와 생활비는 일 년 만에 동이 났다. 결국 어학연수를 다 마치지 못하고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공장으로 향했다.

그가 한국에 가려 했을 때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 장미(한국이름, 43)는 "군에 있을 동안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결혼도 하지 않고 한국 간다"며 극구 말렸다. 그랬던 장미는 3년을 조금 넘게 기다리다, 체류자격을 잃고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일하던 남자친구를 찾아 한국에 왔다. 

장미가 입국하고 일 년 뒤,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녹이 잔뜩 슨 컨테이너 안에 마련한 신방이었지만, 둘은 행복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 말고는 부족한 게 없다고 여겼다.

완구억이 한국에 온 지 십 년이 됐을 때, 이들은 시험관시술을 시작했다. 난임시술이 발달한 한국에서라면 임신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시술 비용은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었다. 게다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둘은 내국인에게 적용되는 시술비용을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갖겠다는 소망 하나만으로 매달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부부는 "애만 낳고 베트남으로 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그동안 벌었던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인공수정 끝에 두 차례 임신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유산으로 이어졌다. 두 차례 유산으로 체력도 떨어지고, 갖고 있던 돈도 다 떨어져 갈 즈음 세 번째 임신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아들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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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심장 수술 뒤 아이 엄마, 장미씨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 고기복


2017년 5월 17일, 둘은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대한민국에서 얻은 복덩어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국복'이라고 지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될 줄 알았던 국복이의 탄생은 부부에게는 시련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수술실로 옮겨졌다.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은 혈액을 심장으로 보내는 폐정맥에 이상이 있었다. 의사는 심장과 심혈관 등이 좋지 않고, 폐와 위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심장을 포함한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8시간이 넘는 수술은 잘 됐다.

국복이가 중환자실에서 총 3주 동안 입원하고 퇴원할 때, 병원에서는 6개월 정도 지켜보면서 재수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퇴원 후에도 호흡기를 코에 삽입하고 있던 국복이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 건 지난 1일이었다. 호흡 곤란과 함께 복부가 함몰되며 인공호흡마저 힘든 상황이었다.

그다음 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이는 수술 다음 날 오후에 의식이 돌아왔다. 의사는 심장 이상 여부는 계속 지켜봐야 하고, 먹고 토하는 것을 반복하며 영양을 흡수 못 하는 문제는 위 때문이라고 했다. 심장이 안정화되면 위도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완구억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인공 수정을 하느라 이주노동으로 번 모든 돈을 다 쏟아부었다. 첫 번째 수술에서 8천만 원이 나왔을 때 고향인 하노이에 사 뒀던 땅까지 다 팔았다. 아이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려고 했던 땅이었다.

이번에도 수술비 4천만 원에, 치료비로 3~4천만 원을 포함해 총 8천만 원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친구들이 알음알음 도와주기는 해도 이주노동으로 빠듯하기는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라 더는 손을 벌리기도 힘들다.

장미는 시험관시술을 받을 때부터 일을 하지 못했다. 완구억 역시 아내가 시술받기 시작할 때부터 회사 눈치가 보였다. 그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일당으로 받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아이의 갑작스러운 수술로 생활비마저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부부는 월세로 살던 집을 나와 이주노동자 쉼터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밤잠을 설치고 아이가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두 사람에게 국복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근심을 안겨도 부모에게 생명은 복덩어리다. 이 복덩어리의 치료를 위해 둘은 모든 것을 걸었다.
#이주노동자 #베트남 #의료보험 #체류자격 #수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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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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