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과 맞바꿔먹은 '인천 민주화의 성지'

시민단체들 “등록문화재로 신청해야 할 건물”... 중구 “답동성당 재정비…2월까지 철거 계획”

등록 2017.12.05 17:37수정 2017.12.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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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가 철거할 예정인 인천가톨릭회관. 외벽에 ‘재개발 지역에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군부독재 시절 인천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인 인천가톨릭회관이 철거되고 주차장이 생길 예정이다. 중구(구청장 김홍섭)의 '답동성당 일원 관광자원화 사업' 때문이다.

중구는 1897년에 건립된 답동성당(사적 287호)에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답동성당 앞에 위치한 가톨릭회관(1973년 준공)과 옛 박문보통학교로 사용됐던 사제관ㆍ수녀관(1954년 준공)을 10월부터 철거해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건물인 가톨릭회관과 인천 근대교육의 상징인 옛 박문보통학교 철거를 결사반대한다'고 했다.

가톨릭회관은 사제와 신도들을 위한 강당ㆍ식당 등으로 사용됐다. 군부독재 시절인 1970~80년대에 사법당국의 감시가 비교적 덜했던 종교시설이라, 5.3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 7ㆍ8ㆍ9 노동자대투쟁 등,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 사용됐다.

당시 천주교 인천교구의 <인천주보(1986년 5월 11일자)>에는 인천에서 전개된 5.3 민주항쟁에 대해 "코끼리의 부분만을 가지고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는 장님들처럼 5월 3일 학생ㆍ노동자들의 시위가 지나치다고 나무라기에 앞서, 1980년 5월 현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광주시민학살의 천만부당함과 그 책임은 물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실리는 등, 천주교 인천교구는 학생ㆍ노동자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30주년인 올해에는 답동성당 옆에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허물어 관광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게 중구의 계획이다. 중구의 '관광사업'에 따른 문화유산 철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엔 1919년 지어진 남한 최초의 소주 공장인 '조일양조장'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들었으며, 올해 5월에는 송월동 동화마을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1912년에 준공된 건축물 '애경사'를 허물었다.

애경사 건물 철거 장면. ⓒ 시사인천


애경사를 철거할 때 중구는 당초 6월 2일자로 철거하겠다고 공고했으나. 시민사회단체들이 5월 29일 반대 기자회견을 하자, 일정을 앞당겨 기자회견 바로 다음날 오전 8시부터 철거했다.


가톨릭회관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근대산업 유산인 애경사를 주차장으로 만들기 위해 파괴하고, 군부독재 시절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가톨릭회관마저 철거하려는 중구의 관광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거듭 요구한다"며 "해당 건물들은 철거가 아니라 등록문화재로 신청해야 할 건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구가 2016년 말 제정한 '인천시 중구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 조례를 보면, 향토문화유산은 원형 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해 보호해야한다.

향토문화유산은 향토의 역사ㆍ학술ㆍ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과 이에 준하는 유ㆍ무형 자료로, 근현대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존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것 등을 향토문화유산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 후 지정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서울시가 미래문화유산 발굴과 보전에 나선 마당에, 건물 철거를 강행하려는 모습은 너무나 비교되고, 그 자체로 위법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 뒤, "김홍섭 구청장이 독단적 행정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음은 물론, 향토문화유산 보전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다. 조례를 준수해야할 구청장으로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천 가치 재창조를 시책으로 내건 유정복 인천시장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가톨릭회관을 주차장과 바꿔먹는 이 사업이 어떻게 '인천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에 포함됐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한 뒤, "엉뚱한 '애인광장'을 건설하지 말고 민주화운동의 상징부터 철거되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 인천을 사랑하는 애인정책이란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어서 "중구의 가톨릭회관 철거와 주차장 조성사업을 도시재생사업에 포함시킨 유 시장은 국민들의 촛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의 상징마저 철거하는 것을 끝내 방관할 것인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만약 이 건물들을 애경사처럼 급작스럽게 철거한다면, 김홍섭 구청장은 물론 유정복 시장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5일 가톨릭회관 앞에서 하기로 했던 기자회견은 일부 단체의 반대로 인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 스페이스빔


이은주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사무국장은 <시사인천>과 한 전화통화에서 "가톨릭회관이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개발 사업으로 철거할 것이 아니라 보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중구가 왜 이렇게 급한지 모르겠다. 지역사회와 함께 상의하고 위원회가 있다면 논의하고, 주차장이 정말 꼭 필요하다는 결정이 나왔다면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고하고 시작한다면 시민들이 공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중구 담당자는 "사적으로 지정된 답동성당이 길 밖에서 볼 때 가톨릭회관에 가려 보이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답동성당 복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성당 재정비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향토문화유산 보호 조례에 관해선 "언론을 통해 (시민단체가 반대한다는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 쪽으로 공식 민원이나 공문이 제출된 적이 없어서 위원회 심의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가톨릭회관 앞에서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단체의 반대로 근처 카페에서 했다. 기자회견을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은 '중구 개발을 막는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방해했고, 그 과정에서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는 등 몸싸움이 벌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게시 되었습니다.
#인천민주화성지 #철거 #가톨릭회관 #중구청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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