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14명 배출한 산골마을, '기운'이 다르네

[오래된 마을 옛집굴뚝17] 봉화(3) 바래미마을 옛집 굴뚝

등록 2017.12.09 12:03수정 2017.12.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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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은 독특한 우리 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굴뚝은 오래된 마을의 가치와 문화,  집주인의 철학, 성품 그리고 그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 전화(轉化)되어 모양과 표정이 달라진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마을 옛집굴뚝을 찾아 그 모양과 표정에 함축되어 있는 철학과 이야기를 담아 연재하고자 한다. - 기자 말

경북 마을 18곳에서 독립유공자를 열 명 이상 배출했다. 안동이 8곳이고, 나머지는 영덕, 의성, 청도, 봉화, 예천, 청송이다. 마을의 영광이요, 가문의 영광이다. 봉화 마을도 영광의 한 자리를 거뜬하게 차지했다. 주인공은 바래미 마을이다. 봉화읍 해저리(海底里)에 있다. 닭실마을을 봉화 최고로 치지만 독립유공자 얘기만 나오면 바래미 사람들은 어깨를 으쓱한다.


독립유공자 14명이나 배출한 바래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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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미마을 정경 예전에는 솟대가 많이 걸렸다는데 이제 솟대 대신 온 마을에 태극기가 나부낀다. 독립유공자를 많이 배출한 점을 알리고 있다. ⓒ 김정봉


바래미 마을 독립운동 중심에 성주 대가면 출신 심산 김창숙(1879-1962)이 있다. 심산이 바래미 마을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하게 된 데는 마을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바래미 마을은 의성김씨가 모여 사는 동성마을로 파조(派祖)는 개암 김우굉(1524-1590)이다. 개암의 현손 팔오헌 김성구(1641-1707)가 300년 전, 강 건너 범들에서 이사와 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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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종택에서 본 바래미마을 개암종택(사진 오른쪽)은 마을 서쪽 끝, 산 아래 깊숙이 자리 잡았다. 종택 뒤 언덕에서 마을을 잘 내려다 볼 수 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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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미마을 정경 팔오헌종택 앞 도로 위에서 본 바래미 아랫마을 정경. 기와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 김정봉


개암은 성주 사월에 살던 동강 김우옹(1540-1603)의 형이다. 바래미 마을에서 태어난 심산의 아버지 김호림은 개암의 12세손, 팔오헌의 8세손으로 1864년 23세 나이에 동강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300년 세월을 넘어, 수백 리 떨어진 성주로 입양을 간 것이다. 

비록 심산이 동강의 13대 주손으로 성주에서 태어났지만 바래미는 본가와 같은 마을이었다. 심산은 바래미 사람들을 실질적인 혈족, 족친(族親)으로 여기며 깊은 애정을 나누었고 바래미 사람들은 심산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바래미 마을이 독립유공자를 많이 배출한 데는 심산의 역할이 컸으며 풍부한 재력과 유학에 기초한 통일된 의식, 역량 있는 인적 구성이 기반이 됐다. 마을이 생긴 이래 200년 동안 문과 17명, 사마시 수십 명에 달하는 인물이 배출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솟대 그늘에 우케도 못 말린다?

예로부터 솟대가 많이 걸려 '솟대 그늘에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거나 '솟대 그늘에 우케(찧기 위해 말리는 벼)도 못 말린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솟대는 마을 사람들이 급제를 하면 마을 입구에 높이 세운 장대를 말한다. 과장도 이런 과장이 있을까마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압축 업적'을 이루었으니 이런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마을은 윗마을 만회고택과 토향고택, 아랫마을 김건영가옥, 해와고택, 남호구택, 소강고택, 개암종택, 팔오헌종택이 동에서 서로 배(船) 모양처럼 길게 뻗어 있다. 독립운동을 벌인 김하림, 건영, 순영, 헌식, 창우, 뢰식, 창백, 창근, 홍기, 중문, 덕기, 창엽, 정진, 창신을 비롯해 바래미 마을 사람들이 긴박하게 움직인 고샅(시골의 좁은 골목)과 옛집들을 황소걸음으로 들여다 본다.

독립운동 기운이 가득한 만회고택

봉화의 낮은 믿을 게 못 되지만 한낮은 무척 따사롭다. 햇살 좋은 날 만회고택을 찾았다. '국가유공자의 집' 표지판이 겸손하게 집안 내력을 알린다. 검게 바랜 춘양목 마루에 감들이 검붉게 익어 가는데, 색감 좋아하는 사진작가들에게는 발품이 아깝지 않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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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고택 만추의 일상 검게 바랜 마루에 검붉은 감이 익어가고 있다. 익을 때마다 하나씩 곶감 빼먹듯 빼먹다보면 겨울이 오겠지. ⓒ 김정봉


만회 김건수(1790-1854)의 6세손 김시원 선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버지 김정진, 할아버지 김홍기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이다. 심산의 아버지 생가는 만회고택 왼쪽 마당에 있었다고 전해지니 이래저래 만회고택은 독립운동의 기운이 가득한 집인 게다.

종손은 '어디에서 왔느냐' 묻고는, 봉화와 마을 자랑을 섞어가며 만회고택에 대해 일장연설 한다. 명월루에 대해서는 "주변에 이만한 누각이 없다"며 "시인묵객들이 몰려와 1000편의 시를 짓고 읊었다" 한다. 손을 내밀어 명월루에 오르라 내게 청했다. 심산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지고,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한 곳이란다.

명월루에 오르니 전망이 좋다. 옛일은 까마득해지고 마음은 편안하다. 한참을 머물다 사랑채 뒤로 돌아가 보았다. 낮은 굴뚝 하나가 사랑채 토방 위에서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종손이 "우리 집 굴뚝은 좀 이상하게 생겼어요"라고 하던 굴뚝이다. 보통 굴뚝과 달리 몸통 없이 낮게 생겨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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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고택 명월루 고택에서 종손이 제일 자랑하는 곳이다. 태평할 때는 시인묵객이 모이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지사가 모여든 곳이니 그럴만한 게지.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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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고택 명월루 굴뚝 더 이상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는 모양이다. 굴뚝 목구멍에 검댕이 없어 슬퍼 보이는 굴뚝이다. ⓒ 김정봉


굴뚝은 안채 후원 곁에 있다. 한 여름 굴뚝 연기가 후원에 깔리면 모기 걱정은 안 해도 될 성 싶었다. 굴뚝 목구멍이 검댕 없이 깨끗한 거로 봐서는 더 이상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는 모양이다. '목구멍이 깨끗해서 슬픈 굴뚝이여!'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굴뚝은 새로 만들었지만 예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종손의 말에 한숨을 거두었다.   

바래미 아랫마을 집들

아랫마을이 윗마을보다 더 촘촘하다. 아랫마을 한가운데 들어서니 김건영가옥이 보였다. 사랑채는 지역 유림들이 파리장서에 연명(連名)한 곳으로, 1차 유림단 의거의 한가운데 있던 집이다. 연명에 참여한 사람은 마을 원로들이었다. 김건영은 72세, 김창우는 66세, 김순영은 59세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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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구택 솟을대문 1876년, 남호 김뢰식의 아버지, 김난영이 짓고 김뢰식이 살던 집이다. 대부호 집답게 솟을대문이 매우 크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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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고택 붉은 벽돌 굴뚝 만회고택, 해와고택, 개암종택 모두 굴뚝이 낮으나 토향고택과 이 집 굴뚝은 화려하고 크다. 집 주인의 개성을 드러낸 굴뚝이다. ⓒ 김정봉


가까운 곳에 남호구택과 소강고택이 있다. 남호구택은 남호 김뢰식(1877-1935)이 살던 집이고 소강고택은 김뢰식이 둘째아들에게 지어준 집이다. 십만 원 상당의 재산을 가진 대부호 남호는 심산이 군자금을 모을 때(2차 유림단 의거) 전 재산을 내놓으며 적극 가담했다.

대부호의 집답게 남호와 소강고택 모두 솟을대문 집으로, 대단히 크다. 집을 꾸민 디테일이 남달라 보인다. 소강고택의 붉은 벽돌 굴뚝은 토향고택의 검은 벽돌 굴뚝과 마찬가지로 굴뚝 높이나 재료에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집주인 개성에 따라 세운 것이다. 밥 짓는 연기가 집 밖으로 나가 이웃이 배고픔을 느낄까 봐 굴뚝을 낮게 만들던 시절은 지난 거겠지.   

고샅을 살짝 벗어나 보았다. 마을 서쪽 끝이다. 산 아래에 개암종택이 그윽하다. 김우굉의 10세손, 김연대가 의령여씨 집을 매입해 정착한 집이다. 13세손 김창우는 이 집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까만 기둥으로 생긴 사각공간의 흰 여백 때문인지, 개암종택 평대문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사랑채는 평대문과 어울려 집 주인의 성품을 드러내고 안채는 사랑채에 바짝 붙어 아늑하다. 안채 동북쪽에 사당이 있어 대종택의 면모를 갖췄다. 파조인 개암은 대종택 사당에서, 입향조 팔오헌은 소종택, 팔오헌종택 사당에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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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종택 평대문 막 솟을대문을 보고 와서 그런지, 평대문의 흰 사각공간의 여백 때문인지, 문을 보니 마음이 편하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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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종택 안채 측벽 개암종택 기둥은 유난히 까맣다. 까만 기둥으로 생긴 흰 공간은 눈 맛을 좋게 한다. ⓒ 김정봉


일경에 쫓기는 사람을 거두듯, 굴뚝을 안채와 사랑채 쪽마루 밑과 안채 후미진 곳에 숨겼다. 여성들이 거주하는 안채만은 크고 화려하게 지어도 될법하건만 안채 굴뚝마저 쪽마루에 설치했다. 예전에는 이웃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밥 짓는 연기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굴뚝을 숨겼는데…. 이래저래 이 집 굴뚝은 숨어 지내는 팔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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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종택 안채 굴뚝 보통 낮게 만드는 사랑채 굴뚝도 아닌데 쪽마루 밑에 숨겼다. ⓒ 김정봉


마을을 빠져나와 팔오헌종가가 내려다 뵈는 길 위에 섰다. 바래미(바다 밑, 해저) 이름처럼 마을이 움푹 들어가 고샅과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뒷짐 지고 유유자적하며 고샅을 걷는 선비의 모습은 싹 사라졌지만, 늦은 밤 독립의 꿈을 품고 고샅을 총총거리며 오가던 검은 사나이들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들의 심장은 뜨겁게 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참고 : 최미정 <봉화 해저마을 의성김씨 문중의 유림단 의거 참여>(학술논문)
#바래미마을 #봉화 #만회고택 #남호구택 #개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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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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