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성공적인 혁명" 독일에서 갈채받은 '대한민국 촛불'

[해외리포트] 베를린에서 개최된 2017 에버트 인권상 시상식 밀착 취재기

등록 2017.12.06 20:18수정 2017.12.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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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테겔공항에 도착한 에버트재단 인권상 수상자 ‘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 대표단 장애진, 박진, 박석운 ⓒ 권은비


공항으로 가는 길에 노란 장미꽃을 샀다. 꽃집에 있는 수많은 꽃들중 노란장미가 장애진씨와 꼭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로 불리는 장애진씨는 참사를 겪은 후, 응급구조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아름다운 청년이다. 그가 베를린에 온다는 소식에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베를린 테겔공항으로 내달리는 버스의 창문 밖으로 흰 눈이 휘날렸다. 베를린의 첫눈이었다. 어둠 속에서 흩날리는 수많은 하얀 눈송이들을 보며, 지난 겨울 한국의 어둠 속에서 수천, 수만개로 반짝이던 촛불이 떠올랐다.

베를린행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뜨고, 드디어 서울에서 온 2017 에버트재단 인권상 수상자 '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 대표단 장애진, 박석운 그리고 이번 시상식의 실무자 역할을 하는 박진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바로 작년 이맘때의 서울광장에서 1년동안 1000만 촛불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다.

촛불시민이 에버트 인권상을 받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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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 권은비


1994년부터 매해 전세계의 다양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인권상을 수여했던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올해 최초로 동북아시아 국가, 그중 한국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2월 5일, 프리디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개최된 인권상 시상식에서 에버트재단의 이사장인  쿠르트 베크씨는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정권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시민들의 핵심적인 권리를 갉아먹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속에 존재했던 독재자들로 인한 폭력과 전쟁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민들은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입막음하지 않고 다원성과 민주주의를 지켜냄으로써 진정한 신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한국의 촛불 시민이 결정적으로 이번 인권상을 받게 된 것에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한국사무소 소장인 스벤 슈베어젠스키씨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가 한국사무소 소장으로 부임하여 한국에 도착한 날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었다.

TV속에 뒤집힌 세월호를 보며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다큐멘터리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자신이 본 광경이 세월호 보도의 생방송장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 역시 촛불집회에 빠지지 않고 나왔고, 그 스스로 '촛불혁명'의 산 증인으로서 독일에 본사를 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 2017 인권상의 후보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에버트 재단의 2017 인권상 시상식에 참여한 독일의 '저항과 운동 연구소'의 부대표이사 사브리나 자약씨는 다양한 혁명과 파업, 집회의 사례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촛불혁명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사건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성공적인 혁명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랍의 봄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집회와 다양한 혁명의 시도들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인도, 캄보디아, 터키, 러시아 등등 많은 국가에서 현재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고 사람들은 시위를 할 용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촛불집회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에버트재단 인권상 수상자 '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을 위해 베를린을 찾은 장애진, 박진, 박석운 세 사람은 우연히도 각각 20년 터울의 20대, 40대, 60대이다. 대략 20년 터울의 세대가 이번 '촛불시민'의 대리수상자로 선정이 된 것이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합치면 곧 한국의 현대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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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민 대리수상 대표단 장애진씨 ⓒ 권은비


장애진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이른바 세월호참사의 생존자, 대한민국의 20대, 현재 응급구조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등등, 흔히 그를 수식하는 이러한 말들로 장애진씨를 설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이번 시상식 자리에서 그가 자신이 써온 수상소감을 차곡차곡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말을 독일어로 번역하던 통역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가만히 통역가의 말을 기울이던 청중 속 몇몇 독일사람들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저는 세월호 참사 당시 그저 혼자 있었던 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친구들을 도와주었는지, 아니면 가만히 있었는지 무엇인지 몰라 무섭습니다…….비상구를 향해 걸어갔을 때 문을 열었다면, 뒤를 한번만 돌아봤다면, 친구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과 제가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면 많은 친구들이 탈출하지 않았을까란 죄책감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 죄책감을 평생 가지고 갈 것 같습니다"

지난 한국 사회는 아주 죄가 없는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갖게 했다. 그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온 어른들은 그에게 무서움, 그리고 죄책감, 부끄러움의 감정을 짊어지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에서 그는 이제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담대하게 또다른 한명의 '촛불시민'으로서 "앞으로 천천히 똑바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같은 또래의 독일 친구에게 한국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나라고 묻자, '이제 다시 시작하는 나라, 국민들이 만든 나라'라고 대답한다. 장애진씨는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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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을 기뻐하는 박진씨 ⓒ 권은비


박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촛불을 지켜주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지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기간 동안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변인'이자 '공동상황실장'으로서의 박진씨의 본업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다. 20년 넘게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그는 아직도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에버트 인권상 시상식동안에 그는 그저 묵묵히 장애진씨의 옆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는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애진씨가 웃으면 함께 웃고, 울면 함께 울었다.

그는 몇 만 명이 쉼 없이 촛불을 들고 모였던 기간 동안, 촛불의 최전선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지난겨울, 촛불집회에 관련된 수백 가지의 실무적인 일들을 매주 반복하며 밤낮없이 광장을 지켜야해던 그는 수많은 촛불을 보며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2500여개의 단체들, 매일 이어지는 토론, 회의, 의사결정, 그리고 다시 집회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1년 동안 진행되는 사이 서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힘들 때,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촛불들을 보면 다시 힘이 불끈 났다는 그는 타고난 활동가였다.

이른바 촛불혁명을 이끈 여러 세대중 40대에 속하는 박진씨는 윗세대와 아랫세대 사이에서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일들을 해야 하는 세대였다. 실무자로서 너무 앞서가지도 너무 뒤처지지도 않아야했고,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아야했다.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 하나하나를 만족시킬 수도 실망시켜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 늘 외나무 줄을 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인권상 수상을 기뻐하며 마냥 행복해야할 시간에도 그는 앞으로의 촛불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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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 대표단 박석운 ⓒ 권은비


박석운 "촛불은 내 인생 첫 번째 성공이다"

한국진보연대 대표인 박석운씨는 소위 '베테랑' 시위꾼이다. "제 개인적으로는 1960년 4.19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집회를 해봤지만 이번 촛불집회가 45년만의 첫 성공이었습니다"라고 그가 시상식에 이야기하자 독일 청중들이 한국 촛불 집회의 성공을 축하한다며 박수를 친다.

그는 이번 시상식 토론회에서 촛불혁명의 성공원인을 '다양성'이라고 꼽았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많은 단체들과 시민들의 다양성을 묵인하지 않고, 모두가 100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공감과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에버트 인권상 시상식에 참여한 한 함부르크 사민당소속의 정치인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젊은 민주주의'라며 이번 촛불집회에 참신성, 에너지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속에 60대의 박석운씨가 지난 한국의 근현대사의 산증인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셈이다. '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 대표단 중 가장 원로인 그는 어쩐 일인지 다른 젊은 사람들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그는 오늘날의 촛불집회의 성과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 아니라, 지난 60년간의 고단한 투쟁 속에서 얻어진 교훈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스스로 어느덧 윗세대가 되었지만 이번 촛불집회로 세대 간의 배합을 통해 젊은 세대들로부터 새로운 영감과 감수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촛불 기간동안 아마도 그의 마음에는 아직도 '청년' 박석운이 존재하기에 다른 세대와의 토론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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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촛불시민’의 대리수상 대표단 인권상 수상모임 ⓒ 권은비


#에버트 인권상 #촛불시민 #세월호 #장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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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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