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밤중에 초코바를 포장한 이유

[아직 젊은 엄마 육아분투기 7] 아이와 첫 비행기 탑승,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했다

등록 2017.12.09 19:29수정 2017.12.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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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서울살이와 직장생활을 내려놓고 제주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서른일곱 살 늦은 나이에 '육아'의 세상에 갑자기 던져져 온갖 추태를 보이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육아 중인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웃기고도 모자라게 육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드리기 위해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연재해 보려 합니다. - 기자 말


결혼과 동시에 제주로 이주하는 바람에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프리랜서'라는 이름표를 단 나는 일이 들어올 때마다 노트북을 책가방에 챙겨 도서관의 열람실이나 카페로 향했다. 임신을 하고 만삭의 몸이 될 때까지, 열람실과 카페는 나의 일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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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터 틈틈이 일거리가 들어오면, 나는 도서관 열람실이나 카페에서 작업을 하곤 했다. ⓒ 박진희


결혼하기 전까지, 아니 '출산'을 하기 전까지,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오면 나는 자리를 옮길 채비를 했다. "좀 조용히 해 주겠니?"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얼마만큼 떠드는지 확인해 보기도 전에, 이미 내 속엔 '아이들은 떠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만큼 나도 아이들이 내는 소음에 굉장히 인색했다.

원래 나는 귀가 예민한 사람이다. 두 가지 소리가 동시에 나는 것을 힘들어 하고, 무언가에 집중할 땐 음악도 듣지 않는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았다.

가슴 드러내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


아이가 생후 8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친구의 결혼식으로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초여름이고, 아이도 어느 정도 자랐기 때문에, 우리 세 식구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 함께 서울로 나들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이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짐과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고작 하룻밤 자고 오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젖병, 이유식, 간식, 기저귀, 아이의 여벌 옷, 체온계, 상비약…. 거의 이삿짐을 싸는 수준이었다. 배낭여행 경력 20년 차에 접어드는 나로선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를 가든 30일을 떠나든 책가방 하나만 둘러메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였는데.

하지만 짐 싸는 것 말고, 사실 더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기내에서의 돌발 변수'였다. 서울행이 확정되고, 나와 남편은 종종 생각날 때마다 답이 없는 질문을 번갈아 가며 하곤 했다.

"선우가 비행기 안에서 울면 어쩌지?"

아이가 우는 건 당연한 거고, 주변 사람들이 8개월도 안 된 아이를 나무라는 일은 전혀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걱정을 했다.

"나는 선우가 울면 무조건 젖 물릴 거야."
"그래,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아이는 당시 '엄마 쭈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시기였다. 나는 기내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보다 아이가 우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내가 웃옷을 벗는다는데도 얼른 동의하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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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수공업 기내에서 선우가 울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줄 선물을 만들었다 ⓒ 박진희


가슴 드러낼 용기까지 내고도 모자라, 우리는 서울 가기 전날 밤 짐을 싸놓고 앉아 가내수공업을 벌였다. 혹여나 아이가 시끄럽게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우리 상황을 알리는 손편지와 함께 줄 작은 선물 스무 개를 만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이는 가고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잠만 잤다. 호들갑스럽게 준비한 초코바 선물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선 꺼내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은 선물은 수고하는 승무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제주 집으로 돌아오던 밤차 안에서, 나는 아이를 안고 많은 생각을 했다.

'선우는 원래 울음이 짧은 아이고, 웃음도 많은 아이지. 그리고 기내에서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너그러웠어. 돌이켜 봤을 때 나도, 기내에서 남의 아이가 울면, 화가 나기보단 쩔쩔 매는 부모들 보며 안쓰럽다고 느낀 적이 많았잖아. 그런데도 나는 왜 그렇게 걱정하고 안절부절 못했을까?'

아마도 여행 가기 전에 겪었던 일이 내 마음에 불안함을 더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행을 앞둔 어느 날, 우리는 제주 동쪽에 아이를 데리고 소풍 갔다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 즈음이라 우리는 인터넷으로 괜찮은 음식점을 검색해 갔다.

말로만 듣던 '노키즈존'이었다. 처음 겪은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죄지은 사람처럼 얼른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이상하게 그날은 가고 싶은 식당마다 노키즈존이거나 아기 식탁의자가 없는 곳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노키즈존이 많은지 그날 처음 알았다. 두 시간을 헤맨 끝에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처음 겪는 일 앞에 나는 화가 나진 않았다.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건 슬픔 쪽에 가까운 당황스러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지난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 아니 출산 전까지 카페 안에서 내가 내질렀던 한숨과 눈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던 시절에 노키즈존 식당을 만났더라면, 난 아마 환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을 온전히 감당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노키즈존'이라는 글씨 혹은 말 앞에 내 심장도 쿵 내려앉긴 했지만, 그 문 앞에서 분노하는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다.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고 처음 비행기를 타던 날, 아이를 데리고 처음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던 날, 그날 내 마음의 결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몇 달 전 읽었던 <82년생 김지영>의 한 부분(유모차를 끌고 나와 공원 벤치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리고 인터넷에서 흘려 읽었던 사람들의 악성댓글로 무척 소심해져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그렇게 민감해져 있었던 것은, 어쩌면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내가 이렇게 아이에 대해 신경 쓰고 있어요' '나는 맘충이 아니에요'라는 표현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 걸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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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서울 아이의 첫 번째 만남, 소녀상 ⓒ 박진희


하지만 막상 비행기를 탔을 때, 카페에 갔을 때,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보다 더 열심히 아이와 놀아주던 뒷좌석 아저씨, 선우의 칭얼거림에 오히려 괜찮다고, 나무라지 말라고 웃어주던 카페 주인. 세상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려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출산과 육아의 세계를 뒤늦게 경험하고서, 나는 육아를 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삶의 거리가 참 멀다는 걸 느꼈다. 경험하지 않고선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미혼 시절, 앞서 출산과 육아를 겪은 친구들을 많이 배려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반대로 아직도 내 주위에 많은 비혼 친구들도 더 이해하는 시간도 됐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노키즈존'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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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육아 다음 연재 기사로 쓸 '육아빠' 여행 때 열일한 우리 아빠, 나의 신랑 ⓒ 박진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생각 끝에 오늘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까닭이 있다. 나는 요즘도 가끔 시어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프리랜서의 삶을 지켜내려 카페나 도서관에 간다. 그때마다 마주치는 어른이 있다. 열람실 안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받는 어른, 카페에서 옆 사람 고막을 터뜨릴 기세로 이야기하는 어른, 음담패설을 즐기며 키득거리는 어른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니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아이를 헤집고 다니는 걸 그저 방치하는 부모들도 사실은 아주 '극소수'이지 않을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애쓴다.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망치지 않으려고 오늘도 애쓰는 엄마와 아빠가 있음을, 당신의 미안한 눈빛에 괜찮다고 오늘도 도닥여 주는 식당 손님과 주인이 있음을, 부디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육아 #노키즈존 #맘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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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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