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공부해 보니, 이런 역술가는 99% 사기꾼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⑬] 사주팔자와 운명, 과연 우리는 팔자대로 사는가

등록 2017.12.12 10:36수정 2018.01.2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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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거리를 걷는데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아이가 한숨을 내쉬며 "아이고 내 팔자야!"라고 말했다. 그 말의 뜻도 모를 천진한 꼬마가 내뱉는 소리라서 기가 막혀 "네 팔자가 어떤데?"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마도 꼬마는 가족 누군가의 말버릇을 무심결에 배웠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도 모르게 팔자타령을 한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는 "아이고 내 팔자야!"라는 소리를 자주 입에 담았었다. 어머니의 삶을 생각해 보면 참 박복한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팔자가 박복한 여인이 낳은 아들인 나 역시 탄생부터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잉태했을 때 외가 동네 남의 집 셋방살이를 했는데, 그때 집주인 여자도 비슷한 무렵에 아이를 가졌다.

같은 해에 한 지붕 아래서 두 사람 이상이 해산하면 어느 편이든 한 편 아이가 불길하다는 소리가 있다. 같은 날 같은 산부인과에서 많은 아이가 태어나는 오늘날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미신이지만, 그 당시는 믿었던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한 집에 살면서 사이좋게 지냈던 두 임산부는 먼저 해산한 사람이 방에서 낳고, 나중 사람은 마당에서 낳기로 약조했다고 한다.

그 후 해산달이 되어 내 어머니께서 먼저 산통을 시작했는데,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의 도리상 그럴 수가 없어 새벽에 변소 처마 밑에서 몸을 풀었다. 그래서 어릴 때 내 별명은 마당에서 낳았다 하여 '마당쇠'였고, 며칠 후 방에서 낳은 주인집 아이는 '방쇠'로 불렸다. 시계가 귀한 때라서 내가 태어난 시간은 정확하지 않다. 나를 낳고 한참 후에 새벽 첫닭이 울었다고 하니, 동이 틀 무렵으로 짐작할 뿐이다.

날씨마저 금방이라도 비바람이 몰아칠 것처럼 음산했다고 한다. 가련하게도 변소 처마 밑에서 태어난 아기 앞에 놓인 인생길은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 길게 이어졌고, 사이사이에 돌밭 길과 진창길도 있었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하는 일마다 틀어지고 꼬일 때가 있다. 순풍에 돛단 듯이 잘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느냐며 부모를 원망하고, 조상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때로는 위로가 되는 '팔자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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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주장 <명심보감>에 "산래유명불유인(算來由命不由人, 부귀는 운명에 말미암고 사람에 말미암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도가의 경전에는 상반된 "아명재아불유천(我命在我不由天, 나의 명은 나에게 있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나온다. 운명은 해석하고 활용하기 나름이다. ⓒ 이명수


'방어기제'라는 정신분석 용어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자존심과 자아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조상 탓과 환경 탓도 그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천차만별의 환경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자신의 '업에 의한 인과응보'라고 하고, 다른 종교에서는 '신의 뜻'이라고 한다.

신의 은총을 듬뿍 받고 아주 풍족한 환경에서 태어난 운 좋은 인생이 있는 반면에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 내동댕이쳐지듯이 태어난 기구한 인생도 있다. 환경 탓, 조상 탓을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세상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기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혹독한 가난이나 불행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불행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쉽게 입을 놀린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과 부닥칠 때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나기 어려운 수렁도 있다. 실패와 절망이 닥칠 때는 적당히 세상 탓, 조상 탓, 팔자 탓도 하면서 살아야지, 모든 게 다 '내 탓'이면 무능하고 못난 인생은 살 방도가 없다. 고단한 세상살이가 내 탓도 아니고 네 탓도 아닌 팔자 탓이라면 그것도 하나의 위로가 된다.

세상에는 지독히 팔자 좋은 사람과 팔자 나쁜 사람이 엄존하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불평등은 인류의 숙명일 수도 있다. 운명은 대체 어디서 결정되는 것일까? 누가 이따위로 사람의 운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편파적이고 불합리하게 운명을 만든 조물주가 있다면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따지고 싶은 사람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근래에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부모 잘 만난 금수저들에겐 아주 재밌고 신나는 세상이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게 마련인데, 한국 사회의 처절하고 어두운 단면을 솔직하게 묘사한 표현이다. 파급력이 큰 것은 공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금수저에 관한 얘기는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왕조 시대 때는 엄격한 신분 사회였다. 왕족, 귀족, 평민, 노비 등으로 신분의 고하가 있어 관직의 등용, 특권 등에 차별이 있었다. 왕족과 귀족은 황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최고로 팔자 좋은 특권층이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반상(班常)의 구별이 엄격해서 양반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과거, 음서, 천거 등을 통하여 국가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다. 반면에 천민은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신분 상승의 기회조차 없었고, 죽을 때까지 온갖 핍박과 고통을 견디어야 했다.

고대부터 근세까지 노비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천민이 있었는데, 백정은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받던 신분이었다. 이들은 어린아이 앞에서도 머리를 숙였고, 기와집에서 살 수 없었으며, 비단옷을 입을 수 없고 초상이 나도 상여를 쓰지 못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신분제도가 철폐된 현대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극심한 빈부 격차 등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하고 있지만, 단군 이래 가장 높은 생활 수준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주팔자를 독학해 보니

​일찍부터 온몸으로 가난을 겪으며 살아야 했기에 어느 날 문득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운명이 궁금했다. 비법이 있다면 알아나 보자는 생각에서 괜찮다는 역학 관련 서적을 선별하여 읽었다. 내 서가에는 50여 권의 역학 관련 서적이 있다. 역학은 파면 팔수록 난해한 공부인 것 같다. 아무나 시작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파고들어 다른 사람의 운명을 들여다 볼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공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신의 앞일을 내다보고자 하는 욕망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점성술이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사주팔자, 관상, 수상 등으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쳐 보았다. 사주는 그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를 운명을 지탱하는 네 기둥으로 본 것인데, 각 기둥은 간지(하늘의 10가지 기운과 땅의 12가지 기운)가 각각 두 글자씩이 되므로 팔자(八字)라고 한다. 간지는 모두 60가지 조합이 되는데, 이것이 육십갑자이고 줄여서 '육갑'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문가라 자처하고 책을 쓴 이들의 해석마저 제각각이다. 수학이나 과학의 법칙처럼 어떤 정해진 원리에 의해 딱딱 맞아떨어지면 좋을 텐데 이랬다저랬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니까 문제이다. 사주팔자가 같아도 인생의 행로는 모두 다르다. 불과 몇 분 간격을 두고 태어난 쌍둥이의 운명도 판이하게 엇갈리는 사례를 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그래서 그 틈을 성명학이 파고들어 목소리를 낸다. 사주팔자가 같아도 이름에 따라 운명이 변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논리가 안 맞는 모순된 경우가 많고, 검증이 안 되며, 역술가마다 자신의 관법이 최고라고 하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가 없어 방향을 잃고 헤매기 딱 좋은 분야이다.

관상과 수상 등의 논리와 관법도 두루뭉술하다.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해석을 낳게 되고, 실력도 없으면서 말재주만 탁월한 사람의 세 치 혀끝으로 천변만화의 조화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분야는 언제나 사람을 속이고 농락하는 술사들이 들끓었다.

사주팔자 등의 역술 분야는 우리 사회의 근저에서 오랫동안 면면히 이어지며 한국인의 정서에 알게 모르게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우리의 말 속에 '망신살이 뻗치다, 역마살이 끼다, 팔자 고치다, 육갑을 떨다' 등 그쪽 분야에서 비롯된 관용어가 적지 않다. 또한, 인생의 주요한 지점이나 고비에서 역술의 논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보거나 이사를 할 때면 '손 없는 날'을 택하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손'은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을 말하는데, 그 귀신이 하늘로 올라간 날은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에 따라 그날을 택해 이사나 혼례 등의 중요한 일을 치르는 것이다. 손 없는 날의 이사 비용은 웃돈을 줘야 할 만큼 비싸다. 무의식중에 역술적 관념이 한국인의 마음 밑바닥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는 방증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역학 분야는 학문과 미신의 경계 선상에 있다. 혹세무민하는 미신으로 취급당하기도 하지만,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한국인은 사주팔자와 관상 등을 본다. <토정비결>은 아직도 소리 없는 스테디셀러이며, 용하다는 점집과 사주풀이를 잘한다고 소문난 철학관을 찾는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세상은 합리와 비합리의 연속이다. 우연성이라는 것이 불쑥불쑥 삶을 침범한다.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도 그냥 흘려듣지 못하는 것은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출판사 편집장을 하는 동안 역학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만들었다. 책의 저자들은 모두 그 분야에서 꽤 유명한 사람들이다. 제대로 공부한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 한 구절, 귀에 쏙 들어오는 한마디의 말이 나를 사유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실력 있는 저자는 많지 않다.

역술계에서는 무협지 용어가 곧잘 사용된다. 무협지에 빈번하게 쓰이는 '강호(江湖)'를 비롯하여 '고수'니 '내공'이니 '문파'니 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수십 권의 책을 스승 삼아 독학으로 사주 공부를 한 나는 한동안 주말이면 서울의 몇몇 유명한 역술가를 찾아다녔다. 철학관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는 프로 역술가들은 어떤 식으로 통변을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프로의 세계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책장에는 <주역>을 비롯하여 역학의 고전들이 가득 꽂혀 있고, 벽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무슨 비밀을 담은 듯한 서화 한두 점이 걸려 있다.

역술가는 방문객의 사주팔자를 운명의 바코드처럼 여기고 자신이 공부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만세력>을 펼쳐 사주 명식을 작성하는 것은 대동소이하나 해석은 제각각이다. 내 사주팔자를 놓고 저마다의 관법으로 풀이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춘다. 그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인데, 알고 보면 별 게 아니다. 사주풀이 이론과 실전 경험과 눈치로 재치 있게 통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열 마디 말을 하면 두세 마디는 전혀 엉뚱한 헛다리이고, 서너 마디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상식적인 내용이고, 두세 마디는 근접하게 맞추는데, 그것이 신통하게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3할대 타자라고 할 수 있다. 10타석에서 일곱 번은 헛스윙이나 불발로 그치더라도 세 번만 안타 또는 홈런을 치면 강타자가 되는 것과도 같다.

사주명리학의 존재 이유

고수를 찾아 역술계의 강호를 떠돌며 적잖은 수업료를 바쳤다. 피 같은 수업료를 지급하고 내가 깨달은 것은 사주명리학의 존재 이유였다. 사주팔자를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역술가들이 많다. 개중에는 양자역학 또는 퍼지논리 등을 어쭙잖게 끌어다가 그것과 동등한 원리라고 강변하기도 하는데,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사주와 관상 등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일련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이론 체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과학이라고 이름 붙일 성질의 것은 아니다. 사주나 관상을 잘 본다고 소문난 사람은 눈치가 빠르고 언변이 좋으며, 잡학 지식을 이리저리 꿰맞추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역술가는 일종의 인생 카운슬러와 같다. 역술가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이 괴롭고 답답한 사람들이다. 걱정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여 희망을 품게 하는 것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다. 제대로 공부한 역술가는 삶에 지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역술계가 하도 도떼기시장과 같은 곳이라서 사이비 술사들이 뒤섞여 있다. 그들은 방문객의 불안한 심리를 악용하여 자기 잇속만 챙기느라 가련한 영혼을 더욱 가련하게 흔들어 놓는다. 나는 엉터리 술사들을 여럿 만났다. 안 좋은 말로 불길한 예언을 하거나 부적을 쓰라고 권하는 사람은 99% 사기꾼이다.

흔히 '팔자 도망은 못 한다. 팔자는 독에 들어가서도 못 피한다. 제 팔자 개 못 준다.' 등의 속담을 입에 담는데, 운명은 어떤 방법을 써도 피할 수 없다는 체념이 짙게 깔려 있다. 나는 역술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학인(學人)이지만 숙명론(宿命論)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술 관련 서적 중에 <요범사훈>이라는 아주 특별한 책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의 관리 원요범(袁了凡)이 지은 책이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위해 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뛰어난 역술가로 소문난 강씨 성을 가진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그대는 의학이 아닌 벼슬을 할 운명이다. 내년에 시행되는 초시에서 14등, 그 다음 시험은 71등, 마지막 시험은 9등을 할 것이다"라고 점쳤다. 그러고서 장차 전개될 일을 줄줄 말했다. 모년에 어떤 벼슬을 하고, 모년에는 승진하며, 모년에는 무슨 벼슬을 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53세 8월 14일에 생을 마치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자식은 두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요범은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과거 준비를 했는데, 실제로 이듬해 시험에서 노인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관직에 나가서도 노인의 예언은 신기하게도 모두 들어맞았다. 원요범은 정해진 운명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구하려는 마음이 없어졌다. 소극적 운명론자가 되어 그냥저냥 세월을 보내다가 37세 때 우연히 운곡선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원요범의 이야기를 들은 운곡선사는 크게 꾸짖고는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복은 자신이 구하는 것"이니 부지런히 공덕을 쌓으라고 말했다. 그 말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은 원요범은 팔자를 고치기 위해 3000가지 공덕을 쌓기로 했다. 아예 장부를 만들어 매일 선행을 하면 숫자를 적고, 반대로 악행을 하면 기록된 숫자를 지워 나가는 식으로 기록했다. 이후 자식을 두지 못할 것이라는 노인의 예측과는 달리 건강한 아들을 얻었으며, 69세에 인생 지침서인 <요범사훈>을 써 아들에게 남기고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범사훈>의 핵심은 공덕을 쌓아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명망 있는 역학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사주팔자 원국(原局)대로 사는 사람은 30%도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사주명리학이 참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한다. 자연에는 정교한 법칙이 있어 사계가 운행한다. 그것처럼 사람의 운명에도 내가 모르는 어떤 법칙이 적용되고 있을 것이다. 일상이나 대인관계는 변화무쌍하여 논리가 잘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사주팔자를 공부하면서 나조차도 몰랐던 '나'에 대하여 깊이 주시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유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사주 이론에 의하면, 좋은 사주는 음양오행의 중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중화를 이루지 못하고 무엇이 많거나 부족하다. 넘치는 건 줄이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사주팔자를 너무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철석같이 믿고 운명론에 빠지면 발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이 시들해지고 만다.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타고난 사주를 알고 좋은 운은 기회를 살리고 나쁜 운은 신중히 판단하여 조심하면 인생의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운명은 해석하고 활용하기 나름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클레안테스는 "운명은 뜻이 있는 자를 안내하고, 뜻이 없는 자를 질질 끌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지배 당하는 삶을 살 것인가, 지배하는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은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렸다. 운명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은 많지만, 나는 헤르만 헤세의 "당신이 등지지 않는 한 운명은 언젠가는 당신이 꿈꾸고 있는 대로, 고스란히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든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운명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단히 음덕을 쌓고, 내 노력으로 해낼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 성실하게 매진하는 일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사주팔자 #역학 #토정비결 #요범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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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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