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폐경... 왜 이리 억울하고 서럽지

꽃 피고 잎이 무성한 시절만 사랑해 줄 건가요?

등록 2017.12.09 19:28수정 2017.12.0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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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산부인과에 갔다. 증세가 방광염인 것 같아서 갔는데, 의사는 오랜만에 왔으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간 김에 하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겸사겸사 검사를 받았고 목요일은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방광염이 심한데요. 좀 일찍 오시지. 일단 항생제로 치료하죠."

예상한 질병이어서 덤덤하게 앉아 있는데, 차트를 보고 있던 의사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방광염은 문제가 아니고요. 어쩌죠. 폐경이 됐어요."

순간, 정막이 흘렀다. '어? 뭐라고?' 하는 지점에서 내 머릿속이 멈춰 버린 느낌이었다. 40대 비혼. 출산 경험 없음.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여성으로서의 내 나이와 현실이 엑스레이처럼 머릿속에 찍혔다.

생리가 불규칙하긴 했어도 벌써 폐경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적어도 50이 넘은 뒤에나 닥칠 일이라고 막연하게 유통기한을 정해 놓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산부인과에 온 날, 폐경 진단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 기습적이라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갑자기 폐경이 되나요?"

의사는 예의로나마 안타까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좀 빨리 온 편이네요"라고 했다.

"한약 같은 거 먹으면 기능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내 말에 의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달맞이꽃 같은 건강보조식품 먹으면 호르몬 수치가 좀 올라가지 않을까요?"

난 당황한 나머지 의사 앞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의사가 무슨 말인가 열심히 했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성 호르몬 수치가 폐경 기준에서 한참 떨어져 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말만 윙윙 거릴 뿐이었다.

여성성이 끝장나 버린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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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은 여성에게 사형선고일까? 진짜 그럴까? 홍역 같은 시간을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unsplash


병원을 나와서 무작정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폐경이라는 단어가 나를 사정없이 찔러댔고 머리와 가슴에서 위산이 분비되는 것처럼 찌르르 쓰라렸다. 그날 밤을 거의 새고 새벽에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핸드폰을 켜 보니 여러 개의 문자와 카톡이 와 있었다. 젠장, 내 마흔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요즘 30대 아가씨들 중에도 조기 폐경되는 사람들이 많대."
"생리대 문제 많은데, 홀가분하게 생각해."
"아이 있는 사람도 폐경 오면 허무하고 공허하다더라."

친한 사람들은 갖가지 말로 위로하려 했지만, 모든 말이 귀에 닿기도 전에 공기처럼 흩어졌다. 내 슬픔과 아픔이 일반화되는 게 싫었다. 지구에서 나만 폐경되는 것도 아니고, 나쁜 병에 걸린 것보다야 낫다는 걸 나도 아는데, 위로를 들을수록 속이 더 상했다. 그냥 입을 닫고 내가 나를 위로하고 설득할 수밖에.

'노안이 온 것처럼 내 자궁도 그런 것뿐이야.'

그 생각에 설득 당해서 괜찮다가도, 차라리 노안이 오지 눈은 쌩쌩하고 왜 하필 폐경이냐고 하면서 울분이 올라오기도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설움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억울함이 온 몸에 차올랐다. 도대체 뭐가 그리 서럽고 억울한 것인지 나도 궁금했다. 그동안 권태기를 맞은 부부마냥 성가셔 하고 무심했으면서 떠나고 난 뒤에 이렇게 유별난 징징거림이라니.

마흔을 넘어서부터는 내 한 몸 챙기기에도 버거워져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폐경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이없게도 아이에 대한 거였다.

'이 세상에 나를 닮은 '내 아이'를 남기지 못한 채로 난 진짜 혼자겠구나.'

내가 아무리 아이 낳는 것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실제 임신 불가능한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폐경'으로 확증 받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아픈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절망스러웠던 것은 이제 내 여성성이 끝장나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여자로서 끝난 것일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성(無性)의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

세상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더 많이 친절하고 관대하다. 또한 여성은 가지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봄직도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선택받을 수 있다면서.

나이 든 여자는 그 선택에서 소외된다. 이런 식으로 여성을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사회 속에서, 나도 어느새 그런 분위기에 동화되었던 모양이다. 난 이미 봄직도, 가질 만한직한 선에서 멀리 벗어났음에도, 폐경은 그 사실을 더 확고히 하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나의 폐경을 충분히 애도하며
  
폐경은 여성에게 사형선고일까? 진짜 그럴까? 홍역 같은 시간을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나한테 달려 있고, 난 계속적으로 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실 앞으로 내 몸이나 삶에서 잃어 버릴 것이 더 많을 거라는 사실은 더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를 잃을 때마다, 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늘어날 때마다 이렇게 무너질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폐경 이후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젊음'과만 연관시키지 않고, 더 다양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잎이 많은 여름나무와 달리 다 떨궈낸 겨울나무는 좀 더 본질에 가까울 수 있으니까.

내 몸의 젊은 기운이 빠져나가고 시든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꽃 피고 잎이 무성한 시절만 사랑해 줄 순 없다는 걸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닥친 폐경에 대해 나름의 모범 답안을 정해 놓고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하지만 불쑥 슬퍼지고, 난데없이 허무함에 다 쓸데없이 느껴지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억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그리고 점점 삐걱거리며 아픈 관절과 근육들. 그 모든 통증에 화가 나고 연민이 느껴지고 슬퍼질 때면, 모범답안에 짜증이 솟구치기도 한다. '겨울나무는 추할 뿐이지 본질은 개뿔~'하면서.

지금 난 솔직히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고, 그런 나를 조금 기다려 주려 한다. 너무 급히 모범답안으로 나를 떠밀지 않으면서, 폐경을 충분히 애도하며 그동안 여성으로서 수고한 내 몸을 다독여 주고 싶다. 그동안 애쓰고 수고했다고.

이제 100세 시대, 별 일이 없다면 4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이제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간결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가기까지 준비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젊으니까.
#40대 비혼 #여성 #폐경 #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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