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바지 입은 여성, 고궁 무료입장 안 된다고?

문화재청 '성별에 맞는 한복 입어야 무료 관람'.. 민변, 인권위 진정 "성차별적 고정관념 강화"

등록 2017.12.08 19:16수정 2017.12.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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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입장하고 있다. ⓒ 김경년


1. 전통한복, 생활한복 모두 무료관람 대상 포함
2. 성별에 맞게 상의(저고리)와 하의(치마, 바지)를 모두 갖춰 입는 것을 기본으로 함
- 남성은 남성한복, 여성은 여성한복 착용자만 무료관람 대상으로 인정함

2013년 10월부터 문화재청 정책에 따라 한복을 입으면 고궁에 무료 입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한복이나 입으면 안 된다. 남성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꼭 입어야 한다. 생활한복 착용도 무료관람 대상이지만, 여성이 시중에 판매되는 '생활한복 바지'를 입을 경우는 무료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규정에 반발해 지난해 10월에는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서울 인사동 주변과 경복궁 앞에서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입장 규정 변경하라"며 두 차례 항의 시위와 퍼포먼스를 벌였다. 당시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에 대한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졌으나, 오히려 문화재청은 2016년 11월 가이드라인 개정 때 성별 관련 조항을 더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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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 ⓒ 경복궁누리집


"여성이 남성 한복을 입으면 왜 무료입장이 왜 불가능한 것이냐"는 의견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공익인권변론센터에도 전달이 됐다. 결국 지난 5일 민변은 '남성은 남성 한복만, 여성은 여성 한복을 입어야한다'는 문화재청의 고궁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고 밝혔다.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문화재청의 가이드라인이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성차별과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이며, 또한 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차별에 해당한다"며 국가인권위 진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12일까지 진정에 참여할 진정인을 모집해, 19일에 진정을 낼 계획이다.

민변 장길완 간사는 이번 진정에 대해 "지난해부터 퍼포먼스를 통해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음에도 가이드라인 기준이 더 강화됐다.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을 언급해 진정을 제기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 문화시설 한복 할인 혜택 "가이드라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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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치마 한복을 입으면 안 되죠?' 퀴어 활동가 김우주 씨(왼쪽)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와 지지자들이 2016년 10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남자는 치마 한복, 여자는 바지 한복을 입고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이날 퍼레이드는 한복을 입으면 고궁에 무료 입장할 수 있도록 한 문화재청이 남자는 바지 한복을, 여자는 치마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둔 것에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열렸다. ⓒ 연합뉴스


한복을 입고 입장할 때 혜택을 주는 곳은 고궁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국민속촌 역시 한복을 입고 갈 경우 자유이용권을 반값에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문화재청 한복 가이드라인과 거의 동일하다. 여자는 '고름이 있는 저고리, 한복치마'를 입어야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남자는 '고름이 있는 저고리 혹은 두루마기, 한복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렇듯 할인이 적용되는 복장 규정은 명확하게 성별에 따라 구분됐다.

서울시도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한복 입고 공연 보면 50% 할인' 정책을 진행했다. 한복을 착용하면 서울시 문화시설 4곳 (세종문화회관, 남사국악당, 서울돈화문국악당, 삼청각)에서 열리는 공연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매표소 옆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한복 입은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인증했다.

그렇다면 서울시에서는 따로 한복 규정을 만들었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따로 규정을 정하진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진 촬영을 통해 한복 입은 게 증빙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 한복이라고 여겨지면 충분하고, 티셔츠 등을 입고 와서 괜찮냐고 묻는 경우에는 할인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라고 전했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가 모호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성별에 따른 한복 규정을 정하진 않았다.

"성별 이분법 고착화" - "한복에 대한 올바른 가치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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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은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문화재청 한복가이드라인에 대한 국가인권위 집단진정인을 모집하고 있다 ⓒ 민변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공동대리인으로 진정에 참여하는 한희씨는 "고궁 한복 무료관람 규정이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법을 고착화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라고 밝혔다.

한씨는 "성소수자들이 자기의 정체성대로 입으면 한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진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해도 한복을 서로 바꿔 입고 사진 찍을 수 있지 않냐. '여성은 치마, 남자는 바지'로 구분하는 건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적 가치로 따지자면 '표현의 자유'나 '평등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진정인들의 '진정 이유'를 모으고 논의를 정리해 인권위에 진정을 낼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한복 무료 관람 가이드라인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전달한 답변서에서 "한복 착용 방식의 왜곡 및 부작용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들을 배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한복 무료관람 정책은 우리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한복을 고궁에 맞는 가이드라인에 맞게 입고 왔을 때 무료입장 혜택을 주는 제도"라며 "실례로 남자들이 재미로 여자 한복을 입고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되기 때문에 한복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인식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전했다.

성소수자들의 '가이드라인 개정' 퍼포먼스 이후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강화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운영상 보완점이 발생해서 개정했다. 가이드라인 개정 전후 남녀 한복 구분에 대한 규정은 동일하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일부 내용을 명확하게 하였다"고 강조했다.
#한복 #고궁무료관람 #한복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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