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생각' 아이들 보며 군대 고참 떠올린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127] '정규직'이라고 쓰고 '기득권층'이라고 읽는다?

등록 2017.12.12 20:52수정 2017.12.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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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의 자율학습 모습 ⓒ 연합뉴스


올 초부터 비로소 야간자율학습(야자)이 '정명(正名)'을 찾아가고 있다. 야자가 생겨난 후 수십 년 동안 아이들로부터 무늬만 '자율'일 뿐 반강제적으로 시행돼왔다며 볼멘소리를 들어왔다. 요즘엔 매일 정규수업에 이어지는 방과 후 수업도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대학의 수강신청 방식처럼 선착순으로 모집, 운영되고 있어 강제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분노할지언정 가슴앓이만 했던 아이들과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의 잇따른 항의에 지역 교육청이 일선 학교로 공문을 내려 규제한 결과다. 관련 민원이 제기될 경우, 사실관계 확인 후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지까지 밝히고 있어 대부분의 학교가 교육청의 지침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던 아이들도 반색하며 자율의 분위기를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행 초기라 섣부르지만, 우려했던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이른 시간 하교를 하면 사교육이 창궐할 것이라거나, 가정으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비행에 빠져들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기실 자신의 일과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그 어떤 부작용도 상쇄시키고 남을 만큼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자율 '야자'에 억울해하는 아이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렇듯 아무것도 아닌 결정을 하는 데 애면글면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아이들의 분노가 후배들에게 이어지지 못한 채 '일회용'이었던 탓이 크다. 학창시절 강제적 야자에 불만을 느끼지 않은 아이는 거의 없지만, 하나같이 졸업하고 나면 이내 관심을 꺼버린다. 심지어 졸업생 중에는 힘들었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회상하는 경우마저 있다.

더욱 황당한 건, 자기 때는 야자가 강제였는데, 바로 이듬해부터 자율로 바뀌었다며 억울해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학년별로 점심시간 운동장을 분할해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고학년 아이들이 분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전에는 후배들이 먼저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선배들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와서 동등하게 사용하라고 하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거다.

학교에서 이런 일들은 실상 비일비재하다. 몇 해 전의 일이지만, 점심시간 급식도 3학년부터 2학년, 1학년 순서대로 해오다가, 배식 창구를 학년별로 구분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이 나자 당시 3학년 아이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왜 자기 학년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토끼 눈을 떴고, 결국 논의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지금도 '고3 급식 우대'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2022학년도부터 전면 시행하겠다고 밝힌 고교 학점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학벌 구조가 온존한 탓에 숱한 시행착오가 있을 테지만,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 신청하고 소정의 학점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다는 고교 학점제의 취지는,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같은 이야기다. 당장 수많은 '수포자(수학포기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문제는 역시 '시기'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제도가 왜 이제야 도입되는 거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한 아이는 손아래 동생은 자유학기제 시행으로 한 학기 동안 시험에 대한 부담 없이 학교생활을 즐겼다며 시샘하기도 했다. 더욱이 내년 중1인 막냇동생은 자유학년제가 도입되어 아예 1년 동안 진로 탐색 과정을 경험하는 혜택을 누리게 됐다면서, 하나같이 자신만 예외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나아가 그럴 바에야 고교 학점제고 자유 학년제고 모두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게 공평한 것 아니냐며 반문하기까지 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줄곧 딱딱한 의자에만 앉아 책과 씨름했는데, 몇 년 차이 나지도 않는 후배들은 바뀐 교육과정 덕으로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있다면서, 심지어 자신들을 '저주받은 세대'라며 자조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군대 고참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어이없는 '항변'을 듣노라니, 군대 시절 걸핏하면 후임병들을 불러다가 단체로 얼차려를 주던 고참들의 몽니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줄지어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는 후임병들 앞에서 그들은 거친 욕설과 함께 입버릇처럼 '군대 참 좋아졌다'는 말을 내뱉었다. '너희가 쌍팔년도 군대를 아느냐'는 말은 전가의 보도처럼 따라오는 수식어였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는 후임병들에게 자신들이 후임 시절 당했던 온갖 얼차려 방법을 고스란히 전수해 주려는 듯 허구한 날 집합을 시키곤 했다. '빵빠레'와 '원산폭격'은 기본이고, '불도저'와 '한강철교' 등 그야말로 이름마저 기발한 얼차려가 정말 많았다. 숱한 얼차려를 받으면서 입대 동기들과 되뇌었던 게 바로 우리가 고참이 되면 저러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고약한 심보에 혀를 내둘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식으로, 애먼 후임병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하긴 간부들도 사병들 사이에 얼차려가 횡행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지만, '군기'를 잡고 있는 것이라며 묵인해주었다. 그들은 숫제 얼차려 현장을 보고도 '살살 하라'며 고참의 어깨를 다독이는가 하면, '신병들은 맞아가면서 크는 것'이라며 은근히 폭력을 부추기기도 했다.

휴가를 나와 학교를 찾아온 제자들의 말에 따르면, 구타와 심한 얼차려는 거의 사라졌지만 '군대 참 좋아졌다'는 고참들의 '갈굼'은 여전하다고 한다. 그도 꼭 25년 전 내가 그랬듯, 나중 고참이 되어서는 저러지 말자고 입대 동기와 다짐했단다. 예나 지금이나 신병 때의 온갖 고생을 말년 병장 때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관행처럼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말한다. 야자와 방과 후 수업이 완전 자율화되고, 자유 학년제가 시행되며,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는 건 바람직한 변화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꿈조차 못 꾼 것들인데 후배들만 그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 솔직히 너무 억울하다며 속상해한다. 아예 불공평한 일이라고 명토 박은 한 아이는 부러 후배들을 찾아가 몽니를 부린 적도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후임병들도 아무런 죄가 없다. 말 그대로 '군대가 좋아졌다'라면 다 같이 기뻐할 일이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기준 삼아 후임병들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강요하는 게 과연 공평한 것인가. 다들 인정하는 잘못된 관행이라면, 바로 지금 자기 세대부터 끊어낼 수 있도록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옳다. 나의 노력으로 인해 다음 세대가 혜택을 받게 된다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 아닌가.

이른바 '본전 생각'에 억울해하는 아이들과 군대 고참들이 모습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 '무임승차'라며 반대하는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과 겹쳐졌다. 비교가 거칠뿐더러, 나 역시 정규직으로서 솔직히 반대 주장에 공감되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신분이 불안정하고 처우가 확연히 다른 것을 두고, 단지 입사 당시 치열한 경쟁률의 시험 결과만으로 기준 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본전 생각' 벗어나서 '역지사지' 해봤으면

그들은 또,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는 IMF 환란을 겪으며 모든 업종에 걸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현대판 '골품제'가 자리를 잡았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신분이 상승되는 통로는 시나브로 사라졌고, 흡사 순망치한의 관계처럼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보호막'으로 전락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출신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고 과거시험 한 번으로 미래가 좌우되던 야만의 봉건시대는 아니라고 믿는다.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이라는 당연한 주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차이를 들어 무시된다면, 과거의 신분제 사회와 하등 다를 바 없다. '무임승차'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선 같은 노동자로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줄 순 없을까.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학교에서도 얼마 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과 정규직 교사들이 불공평하다며 반대했다. 수험생들의 심정은 그렇다 쳐도, 정규직 교사들의 날 선 반응은 의외였다. 기간제 교사들도 학교에서 똑같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수업하며 헌신하는 동료 교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바로 임용고시를 치르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자신들은 최소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합격했는데, 그런 고통 없이 임시 임용된 이들을 마음속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동료 교사는 그걸 인정하는 순간 오로지 임용고시 합격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감내한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꼴 아니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깟 시험이 뭐라고, 그들도 하나같이 불공평함을 지적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다 보니,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공평함의 조건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한편으론 기존의 임용고시가 교사의 자질을 검증하는 데에 한계가 분명하다고 줄기차게 지적해온 이들 아닌가. 이래저래 '정규직'이라고 쓰고 '기득권층'이라고 읽는다는 조롱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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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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