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 가운데서 발목 부상,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유

TV보다 이끌려간 사하라 사막 마라톤, 나의 40대를 송두리째 바꾸다

등록 2017.12.15 13:47수정 2017.12.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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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움켜쥔 보따리에서 구걸하듯 일을 배우고,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했던 세대. 후배들 앞에서 억지로 요즘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놀아 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는 세대. 서른아홉 한 남자의 가슴에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었다.


2001년 가을,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배낭을 짊어진 선수들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사막을 질주하는 TV 다큐멘터리를 보다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와 미쳤다는 비아냥 소리를 뒤로하고 지구상 가장 혹독한 열사의 땅 사하라사막(Sahara Des)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사건은 내 인생의 40대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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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40대 열망을 안고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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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달리는 전사들 MDS 출발장면 ⓒ 김경수


사스(SARS)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2003년 4월, 나는 북아프리카 사하라에서 열리는 MDS(The Marathon des Sables) 대회 출전을 위해 인천공항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지중해 아랫입술'인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들어갔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사하라사막으로의 여정은 그 자체가 모험이었다. 다시 비행기로 이동한 와자자테(Ouarzazate)에서 버스로 바꿔 타고 에르푸드(Erfoud)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소와 낙타를 실어 나르는 트럭과 군용 차량으로 사하라 아주 깊숙한 곳까지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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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속으로 짐칸에 오르는 선수들 ⓒ 김경수


프랑스의 패트릭 바우어(Patrick Bauer)에 의해 1986년 첫 경기가 열릴 땐 고작 23명에 불과했지만 2003년 18회 대회에는 30여 개국 671명이 출전하는 세계적인 대회로 성장했다. 레이스는 자신의 식량과 장비를 짊어지고 5박 7일 동안 외부의 지원 없이 243km의 거리를 제한된 시간 안에 달려야 한다.

사하라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구상 최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달릴 수 있을지. 사람은 평생 자신의 능력의 3%밖에 써보지 못하고 죽는다는데 나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긴장과 흥분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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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위해 1년을 기다려온 선수들 제18회 MDS의 시작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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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유일한 안식처 모로코의 베르베르인 텐트 ⓒ 김경수


베이스캠프에는 참가국의 국기 대신 흰 비둘기가 그려진 대형 깃발이 게양됐다. 며칠 전 발발한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 탓이었다. 레이스 첫째 날 아침 9시, 출발 선상에 모여든 선수들이 패트릭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포효하듯 거친 함성과 함께 MDS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나도 건각들 틈에 섞여 떼밀리듯 뛰쳐나갔다. 푹푹 꺼지는 모래벌판과 너울거리는 듄(Dune, 모래산)이 번갈아 가며 선수들을 맞았다. 1km도 못가 온몸이 흙먼지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사하라 횡단을 위해 1년 넘게 준비한 모든 것들은 왼쪽 오금이 늘어나는 부상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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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모래언덕 너울거리는 빅듄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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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황홀할 수 없다 사하라의 석양 ⓒ 김경수


수천만 년 동안 문명의 손길을 거부한 곳 사하라. 섭씨 50도가 넘는 태양열에 땀에 젖은 살갗이 붉게 익어갔다. 거대한 모래폭풍 할라스가 뿜어대는 모래 먼지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모래와의 사투는 더욱 극에 달했다. 두 다리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향했지만 사하라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내 발목을 끊임없이 모래 속으로 끌어당겼다.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었다. 사막으로 이끌었던 호기심과 열정은 이제 사치에 불과했다.

레이스 4일과 5일째, 무박 2일 동안 사하라의 밤낮을 이어 82km를 달렸다. 혹독한 대자연의 반격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백 미터 높이의 엄청난 빅 듄(Big Dune)을 기어오르다 힘에 부친 두 다리가 모래 속에 처박혀 꿈쩍하지 않았다. 인생은 살면서 가끔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받아서도 안 된다. 오로지 '달릴 것인가' 아니면 '포기하고 주저앉을 것인가' 하는 단순한 선택만이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면하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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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Big Dune 이 곳은 절망의 장벽, 희망의 언덕!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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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광야에서 ⓒ 김경수


광야와 협곡, 바위산과 와디(Wadi)를 뒹굴다시피 넘어 긴 날의 밤을 맞았다. 은하수가 쏟아질 듯 무리지어 빛을 발했다. 주로에서 선수들과 조우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혼자가 됐다. 사하라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거대한 박테리아의 표피 속에서 헤매듯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전율이 엄습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했다. 그저 다음 CP를 향해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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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질주 이곳엔 삶의 숨겨진 희로애락이 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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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약육강식 낙타 사체 옆을 지나는 선수들 ⓒ 김경수


또다시 사하라의 아침이 밝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속에 선수들만 분주했다.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이중창 <저녁바람이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가 캠프 전체로 흘러 퍼졌다. 선수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확성기에 귀를 기울였다. 문명을 벗어난 지 고작 닷새밖에 안됐는데 마치 오랫동안 음악에 굶주린 쇼생크 형무소의 수감자들처럼 천상의 소리에 젖어들었다. 살아남은 전사들은 더욱 강해졌다. 아리아가 끝나자 선수들은 남은 레이스를 위해 눈을 번득이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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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때론 여유가 필요하다 캠프 사이트 전경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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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보호단체 회원의... 퍼포먼스 ⓒ 김경수


레이스 마지막 날, 세상 밖 사하라에서 다시 일상으로 가는 관문을 향한 질주가 시작됐다. 눈물도 말라버렸다. 가정과 직장에서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움츠렸던 나는 사력을 다해 사하라를 건넜다. 분단된 한반도 155마일 휴전선만큼이나 멀고 험난했던 레이스. 사선을 넘나들던 극한 속에서 사하라는 나에게 축소된 인생의 희로애락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빅 듄! 그곳은 넘지 못하는 자에게는 절망의 장벽이고, 넘어선 자에게는 희망의 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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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열사가 지배하는 땅 사하라 모래능선에서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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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국민이다! ⓒ 김경수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도, 까마득한 빅 듄도, 온몸을 휘감던 모래폭풍도 이젠 모두 추억이 되었다. 사하라는 아무 말 없었지만 나를 극복하게 해 주었다. 5박 7일의 처절했던 그때 그 모험이 내 인생에 어떤 선물이었는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았다. 잊고 살았던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2017년 한 해가 저무는 즈음 사하라를 다녀온 지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사하라는 여전히 그곳에 있고 나는 내 안에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사막 #오지 #김경수 #사하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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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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