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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참상 뒤집은, 손정은의 '자성'과 최승호의 '사죄'

[하성태의 사이드뷰] '보도 참사' 되풀이 않겠단 의지 담은 '새' MBC의 '첫' < PD수첩>

17.12.13 14:50최종업데이트17.12.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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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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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촛불의 열기로 뜨거웠던 이 광장에서 MBC는 시민들께 숱하게 많은 질책을 들었습니다. 'MBC도 언론이냐', 'MBC는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기레기', '권력의 나팔수' 그리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까지 들었습니다. MBC에 대해 시민 여러분이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나셨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광화문광장에 선 손정은 아나운서. 지난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 'MBC 몰락, 7년의 기록' 편은 그간 망가진 MBC에서 공정방송을 꿈꿨던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듯, 위와 같이 손 아나운서의 '자성'으로 출발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MBC 상암 사옥을 거쳐 안산과 목포 신항의 '세월호'까지. 최승호 신임 사장 취임 이후 첫 방송된 '특집' < PD수첩>은 그간의 울분과 반성, 다짐을 모두 쏟아내겠다는 듯 MBC를 둘러싸고 7년간 벌어진 사건과 그 이면의 진실, 그리고 국민 다수의 평가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요약하자면, '새' MBC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공범자들'이라고 할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공범자들' 사이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의 한 장면. ⓒ MBC


"숨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누가 보면 안 되는 거예요, MBC는. 우리를 보면 안 돼요. (현장 근처) 골목 어디에 빵집이 있고 조그만 빌딩 복도에서, 복도 창문을 열고 등을 대고 서서 (기자가) 중계차 타는 걸 제가 직접 목격했어요."

해직됐다가 복직된 후 손정은 아나운서와 함께 <뉴스데스크> 새 앵커로 내정된 박성호 기자. 박 기자는 지난 촛불 집회에서 겪은 MBC의 수모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어디 박 기자뿐일까. 부지런히 광화문 촛불의 뜨거웠던 현장을 찾았던 사람들이라면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MBC의 기자들이, 카메라맨이, 중계차가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비난을 받고, 욕을 먹으며 도망 다녔다는 사실을.

그와 반대로 지난해 연말 이후 집중된 태극기 집회에서 MBC가 얼마나 종횡무진 '활약'했고, 또 환영받았는지도 기억할 것이다. < PD수첩>은 바로 이에 관한 증언과 실제 보도 사례, 그리고 '왜, 누가 그런 처참한 보도를 하게 했는지'를 먼저 규명했다. 이날 < PD수첩>이 조목조목 실제 뉴스 화면들로 비춘 보도 참상은 실로 처참했다. 7년 동안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속 시원한 '비교 분석'이었다. 

영상의 힘은 역시나 컸다. 과거 '망가진' MBC가 영상 편집을 통해 '촛불'을 축소시키고, '태극기'를 부각하려는 노력은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왜 그토록 이명박 정부가 MBC 장악에 사활을 걸었는지, 그리고 장악의 수혜자가 박근혜 정부였다는 사실과 함께 왜 시청자들이 MBC 뉴스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는지 단박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과거 MBC 측은 이른바 '태극기 집회'를 부각하며 지상파에 담기 쉽지 않은 단어들이 포함된 인터뷰도 여과 없이 내보냈다. 그리고 '정상적'인 편집으로 광화문의 촛불을 담아낸 영상 편집 담당자들은 일손을 빼앗겼다. 이와 같은 '왜곡'과 '날조'의 절정은 물론 '세월호'였다.

"제가 (영상을) 드렸는데 쓰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히 MBC를 포함한 공중파들은 본인들의 사명을 저버린 건 틀림없습니다."

아들의 휴대폰 영상을 각 언론사에 제공했던 고 박수현 군(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 박종대씨. 그는 자신이 제공한 영상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보도하기를 거부한 MBC에 대해 위와 같이 일갈했다. JTBC 등 타 언론사들이 보도한 해당 영상은 물론 그간 MBC는 여타 '세월호' 관련 외부 영상을 보도하는 걸 거의 '금기시'해왔다. 이런 보도 양상은 고 백남기 농민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 PD수첩>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세월호를 비롯한 MBC 내의 '금기'들이 어떻게 '왜곡'·'날조' 보도됐는지, 단독으로 입수했다는 '2010년 MBC 정상화 국정원 문건'과 함께 갈무리했다.

또한 방송분에서는 MB 정부가 '만든' 김재철 사장 이후 자행된 정권 차원의 'MBC 장악'과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의 '공범자들'의 활약, 이로 인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피해상이 담겼다. 대개 이미 보도됐거나 알려진 '팩트'가 다수였지만, 그럼에도 < PD수첩>을 통해 갈무리된 피해 상황은 분명 달라진 MBC를 실감케 했다.

그 중 인상적인 장면은 < PD수첩> 김재영 PD와 여타 PD들이 아직까지 회사 안에서 '월급도둑'을 자처하는 '공범자들'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고 다닌 그 화면들이었다. 마치 영화 <공범자들> 속에서 최승호 PD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방송분에서 그 '공범자들'은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의 책임자 중 하나인 박상후 부국장처럼 "내가 왜 인터뷰를 해"라거나 "대답할 의무가 없다"며 카메라를 피했다. 이날 방송된 < PD수첩>의 의의 중 하나는 여기에 있다. 영화 <공범자들> 개봉 당시만 해도 최승호 PD는 해직언론인의 타이틀을 단 '외부인'이었지만, 이제는 그가 MBC 신임 사장이 된 상황이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이날 < PD수첩> 방송분은 스스로 환부를 도려내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이 들이미는 수술의 칼날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처럼 보였다. 그간 취재를 하지도, 방송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던 '세월호 참사'를 환기하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새' MBC에서 방송한 '첫' < PD수첩>의 다짐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의 한 장면. ⓒ MBC


"내가 진짜 그때 조금만 용기를 가지고 뉴스 속보를 냈으면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여기 오기가 싫고, 오기만 하면 눈물이 나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을 기억하고, 당시 '전원 구조' 오보 사태를 막지 못한 MBC 구성원의 증언은 참담했다. 김선태 목포 MBC 보도국장은 목포 신항 앞에 정박된 세월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3년 넘게 묵혀온 그의 증언은, 그로 비롯된 눈물은 분명 그간의 침묵이 준 고통과 정비례할 것이다. 

"팽목항 쪽에 있는 이장한테 처음으로 우리가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이게 무슨 소리냐, 빨리 알아보자 그래서 다방면으로 알아봤더니, 전원구조가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현장에서 해경이 수색작업을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목포 MBC의) 한승현 부장이 (서울 MBC의 박상후 부장하고 통화를 했어요. 이거 지금 전원구조가 아니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현장에 지금 수백 명이 아직도 배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박상후 부장에게 그대로 얘기했어요. 내 말 못 믿겠으면 내가 휴대폰 번호 줄 테니까 현장 해결 현장 수색 구조요원하고 연락해 봐라."

김선태 국장은 그래서 "서울에서 취재할 의지가 아예 없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결국 오보와 이후 이어진 MBC의 '세월호 보도 참사'에 대해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언론이 정부의 편에 서서 또 저를 두 번 죽인 거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힘들어 죽겠는데"라고 회고했다. 이와 같이 < PD수첩>은 지속적으로 세월호를 소환했다. 3년 넘도록 열망했다는 듯, 그간의 보도 참사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는 듯이.

비록 때는 늦었더라도,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지금 MBC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자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지금에서냐'고, '7년이 아니라 9년, 14년 전부터 MBC는 망가지고 있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시청자들에게 변화의 단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망가졌다는 말도 웃긴 게, 망가졌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그게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망가졌다고 인식을 할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는 원래부터 (MBC는) 좀 이상한 곳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20대의 목소리를 일부 대변할 수 있는 '쥐픽쳐스' 국범근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평가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MBC 구성원들이 새겨야할 정도로 뼈아프다. 이날 < PD수첩>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를 공개하며 되짚었듯, 배현진 앵커가 '가장 신뢰하지 않는 앵커' 1위로 꼽히는 '영광'을 차지한 것은 상징적이다. 여타 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MBC가 언론으로서 잃어버린 신뢰성과 공정성 등은 1~2년으로 쉬이 회복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BC의 존재는 권력자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정방송을 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성하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방송,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방송,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 그런 MBC로 거듭나겠습니다."

손정은 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다. "국민을 위한 방송,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방송,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의 의미를 요약하자면, 더 이상 '세월호 보도 참사'를 내지도, 극우 '태극기 집회'를 유일하게 부각하지도 않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 이튿날인 13일 오전, 최승호 사장은 경기도 안산 세월호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최 사장은 희생자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MBC의 잘못을 사죄드린다"라고 인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사장이 취임 이후 첫 외부 일정을 세월호 분향소로 잡은 것 역시 '세월호 보도 참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MBC 최승호 사장님과 새 임원들께서 희생자들 앞에서 무릎 꿇고 진심을 담은 다짐을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분향소 안 MBC카메라가 생소하면서도 반갑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새' 사장 '새' < PD수첩> 만큼이나 달라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PD수첩> 역시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여러분(MBC 언론인)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 예은 아빠인 나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유 위원장의 일성을 'MBC 몰락, 7년의 기록' 편에 내보내기도 했다. 다시는 '세월호 보도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 PD수첩>의 다짐과 세월호 분향소를 방문한 최승호 사장의 행보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억해야 할 것은, 7년 전과 지금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한층 '매의 눈'이 됐다. 방송 지형 역시 그때와는 확연히 변화했다. 한편으로 이날 방송만으로 환골탈태를 예고 중인 '새' MBC의 '첫' < PD수첩>에 환영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주 < PD수첩>은 '망가진' 또 하나의 공영방송 KBS를 겨냥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최승호 체제'의 '첫' < PD수첩>, 이 정도면 충분했다.

PD수첩 MBC 최승호 손정은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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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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