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 전 펼쳐보면 좋을 책, <백퍼센트 부산>

등록 2017.12.15 20:16수정 2017.12.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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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몇 년간 거주하며 깨달은 게 있다. 체류 기간이 아무리 길다 한들, 머무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외지인으로서는 특정 지역을 정확하게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어렴풋이 감을 잡았다 싶으면 다시 그것이 뒤집어지는 일을 경험하곤 했다. 하물며 짧은 여행으로서 여행지의 무엇을 알 수 있으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그렇다고 여행의 재미가 반감될쏘냐. 절대 그렇지 않다. 알지 못해서, 조금 알게 되어서, 혹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내 여행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온몸을 들썩인다.


여행지를 잘 알지 못해도 여행의 감동이 줄지 않지만, 마음먹고 특정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이왕이면 현지인의 이야기를 택하겠다. 나보다 먼저 그곳을 지나간 관광객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현지인의 시각을 통해 전해 듣는 지역 이야기는 또 다른 깊이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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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퍼센트 부산> 책표지 ⓒ 하나의책

<백퍼센트 부산>은 부산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송정에서 웨딩 촬영을 하기도 했다는 저자가 쓴 여행 가이드북이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부터 마음에 든다. 이미 여러 번 가본 부산이지만, 다음번 여행 때 나의 동행은 아무래도 이 책이 될 듯하다.

그러고 보니, 해외여행을 갈 때는 가이드북을 한번이라도 꼭 펼쳐보는 내가 국내 여행을 갈 때는 그런 적이 없었다는 자책이 들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곳이나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러했겠지만, 책을 보며 새롭게 알게 되는 정보들과 은근슬쩍 자극받는 말랑한 감성이 더없이 반갑다.

책을 보며, 다음에 가 볼 장소로 꼽은 몇 곳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먼저, 기장 대룡 마을이다. 이곳은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 예술촌이 형성되고, 관광객도 늘어났다고 한다.


한때 재정 지원이 줄고, 예술가들의 작업도 일회성에 그치는 등 활기를 잃을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예술가들의 협동조합이 결성되어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있다고. 도보 여행자에게 교통이 편한 곳은 아니라지만 그 점마저 매력적으로 들리니, 아무래도 나를 이미 반쯤은 홀린 듯하다.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부산과 울산을 잇는 광역전철화 공사로 해운대역부터 송정역까지의 구간이 이설되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곳이라고 한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이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오직 나만의 감성은 아닐 듯하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존재하는 폐선부지는 관광 자원 개발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주제넘은 생각도 잠시 해 본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새로운 곳을 만들기보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을 주민의 쉼터이자 관광지로 조성하는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닐지.

보수동 책방 골목 또한 나를 유혹한다. 국내 얼마 남지 않은 헌책방 골목이라 하니, 책을 좋아하고, 낡은 책의 묵은 냄새마저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명성이 있으니, 부산이라고 하면 활기찬 도심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바쁜 일정을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곳도 꽤 많이 소개되고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그 중엔 생태공원도 있다. 부산에는 삼락을 포함해 맥도, 을숙도, 대저, 화명, 이렇게 총 5개의 생태공원이 있다고 하니, 녹색의 느긋함이 그리워질 때면 들러봐야겠다.

범어사와 법기수원지 역시 고요하고 차분한 여행지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바 있다는 범어사 왼편의 돌담길도, 정확히는 양산에 위치하지만 부산에서 쉽게 갈 수 있으며 반딧불이와 원앙의 서식지라는 법기수원지 역시 이미 수첩에 적어두었다.

흙 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회동수원지는 어떠한가. 맨발로 황토를 직접 밟을 수 있다는 오륜본동의 '땅뫼산 황토숲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여행 가이드북이지만, 정보만 담긴 책은 아니다. "'부산인'들의 추억이 가득한 곳"으로 소개되는 영도대교는 슬픔과 미소를 동시에 짓게 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온 이 다리는 어르신들을 추억에 젖게 하지만, 꼭 그들만의 전유물만은 아니라고.

"부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영도대교가 출생지다. 어릴 적 부산 아이들은 "니는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 왔데이"라는 소리를 엄마에게 수도 없이 듣는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저자의 부산 소개에 빠져들며,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의 고향을 소개한다면, 나는 어떻게 소개할 수 있으려나. 나는 내 고향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고, 본문에 앞서 실린 저자의 말을 곱씹어본다.

"우리 동네의 골목길도 여행하듯 다녔더니 매 순간이 즐거웠습니다. 편한 신발을 신고 커다란 백팩을 메고 카메라를 든 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여행자였습니다. "여행 오셨나 봐요." 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유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여행지를 완벽히 아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생각해보면 꼭 여행지가 아니어도, 살아 숨 쉬는 세계를 '완벽히' 안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사람이 그렇듯,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계 또한 그러하리라.

고향이든, 타지이든, 애정을 갖는 만큼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터전은 물론, 세계의 모든 곳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결론을 낸다면 너무 뜬금없을지. 당장에라도 부산으로 떠나고 싶어 조급해지던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집밖을 나서든, 그렇지 않든, 나의 여행은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백퍼센트 부산 - 언제 가도 좋은 부산의 모든 것

신주현 지음,
하나의책, 2017


#백퍼센트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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