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남성들 '뒷모습' 500장, 선입견 완전 깨졌다

[리뷰]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전시, '<반>展'

등록 2017.12.15 21:11수정 2017.12.1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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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가 제기하는 문제들 중 쉽게 답을 내놓을 만한 것이 거의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분야를 하나 고르라면 바로 성매매가 아닐까 싶다. 워낙에 입장도 극명하게 갈리거니와 어느 주장을 들어도 설득이 되거나 혹은 그럼에도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지금과 같은 성매매는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어렵다. 일단 성매매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도 힘들다. 이것은 단지 현황과 규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성매매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몸집에 비해 드러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사람들이 수면 위로 올리기 꺼려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매매는 모두가 그 존재는 인지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분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매매에 대한 입장은커녕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의 구매 경험이 성매매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성매매가 남성들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해결할 정당한 수단이며 그렇지 않으면 성범죄가 만연할 것이라고 읍소한다. 접근법이 틀렸는데 입장만 완고하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지점을 주목해야 할까. 어떤 태도로 성매매 현장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마주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축척된 연구를 살펴보는 것이겠지만 길은 문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작업을 한 예술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전시가 현재 진행 중이다. 바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주최로 열린 '<반>展'이다. 이번 전시는 진흥원이 1년간 진행해온 '예술로 반성매매 프로젝트'의 성과를 담았다.

윤나리, 손상민, 전민주 작가와 (주)둘 중하나(이기성, 이현정)팀은 예술이 왜 성매매를 말하고,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에 관한 고민을 담았다. 12월 11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될 이번 전시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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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최한 '<반>展'의 포스터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테이블> - 윤나리


집결지 성매매 업소는 대부분 투명한 유리문 너머에 성판매 여성들이 '상품'처럼 앉아 있는 소위 '유리방' 구조를 지니고 있다. 판매를 하는 사람과 매수를 하는 남성이 너무나 투명하게 잘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가 정확히 어떤 사람이고 매매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며 사람들은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말하자면 성매매 업소를 덮고 있는 유리는 투명하지만, 그래서 다 보인다고 믿게 만들지만 정작 포착할 수 있는 진실은 늘 일부에 불과하다. 이것이 서두에서 언급했던 성매매를 둘러싼 역설이다.

전시장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길을 끈 작품 <테이블>은 이 같은 딜레마를 다룬다. 현존하는 성매매 집결지 숫자인 42개의 원통형 설치물 위에는 작가가 직접 들은 당사자의 말들, 학자들의 분석들, 혹은 성매매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겨졌다.

이 설치물들은 모두 투명한 유리이기에 속이 훤히 보이지만 적힌 텍스트들은 그래서 간단하게 읽기가 힘들다. 눈을 가까이 대도 보이는 것은 말의 일부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문장을 조금씩 읽어가야 겨우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유리 너머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 성매매는 쉽게 다 안다고 말해선 안 되고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것일까.

실제로 윤나리 작가는 1년간 성매매에 대한 당사자와 연구자의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고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작품에는 작가가 알아가고 이해해가며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세심한 주의가 그대로 담긴 셈이다.

즉 작가는 성매매를 이야기 할때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만 하는 자세를 작품 속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며 전달했다. 진솔함과 치열함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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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리 작가의 <테이블> ⓒ 신필규


성매수에 포커스를 맞추다: <뒷모습> - 손상민


성폭력, 성추행 등 대부분의 젠더 폭력 사건들은 '여성 문제'로 갈무리 되곤 한다. 이 같은 명명은 거의 모든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선 정확할지 몰라도 문제의 근원인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성범죄에 있어서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이들은 드물다. 대부분에게 가해자란 '으슥한 골목길에서 선량한 피해자를 노리는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는 성매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성판매에 나서는 여성이 어떤 사람인가는 끊임없이 이야기 하지만(이마저도 대부분 편견이 가득찬 것이 대부분이지만) 구매자가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지는 질문하지 않는다. 초점에서 벗어나 있다보니 성매수를 하는 남성들이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손상민 작가의 <뒷모습>은 이 같은 현실에 주목한 작품이다. 작가는 서울, 부산, 전주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 인근의 옥상이나 건물 창문에서 야생동물을 찍는 대형렌즈로 성매수범들의 뒷모습을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500매의 사진 중 일부를 슬라이드 영상으로 공개했다.

결과물은 성매매에 대한 선입견을 확실하게 부순다. 나도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달리 집결지는 번화가를 방불케 할 만큼 번잡했고 성매매 업소를 드나드는 남성의 숫자도 매우 많았다.

그들은 마치 동네 마트에 들어가듯 쉽게 업소의 문턱을 드나든다. 추정되는 그들의 연령대도 다양해서 그날 현장에 '남성 보편'이 존재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실제로 2016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성매매를 경험한 남성의 비율은 50.7%, 즉 두 명중 하나 꼴이다.

손상민 작가는 성매매의 수요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 작품을 통해 성매수범들이 성매수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 행위에 약간의 공포를 느끼기를 바랬다고 언급했다. 나는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작가의 사진 속에서 만큼 그들은 프레임의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의 근원을 향해: <(주)둘 중 하나>

이번 전시에는 성매매에서 매수를 하는 사람에 주목한 또 다른 팀이 있다. 이들의 작업은 보다 적극적이다. 작가들은 성매수가 문제의 근원임을 집중함과 동시에 이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

'(주)둘 중 하나' 팀이 만들어낸 'Anti_STB(Sex Trafficking Buyer)'는 바로 그 결과물이다. 무려 성매수 경험을 검진하고 이를 예방하거나 이미 성매수를 한 사람들의 회복을 돕는 키트다.

물론 가상의 제품을 시연한 것이지만 적어도 예방과 정화, 차단에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듯싶다. 이들은 키트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매수는 성 상품화 문화를 조장하고 확산하며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 한다. 그래서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오늘 안 걸리면 내일 걸린다.

흥미로운 것은 팀의 작업 방식이다. 언급했듯 작가들은 성매수가 성 상품화를 조장함을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는 여성을 마치 물질처럼 다루고 상품화 하는 풍조가 즐비하다. 가령 여성을 단지 몸으로 환원한 후 온갖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여 노화 방지 제품을 팔아먹는 화장품 광고가 대표적이다.

(주)둘 중 하나는 이 방식을 거꾸로 돌려 성매수범들을 겨냥한다. 팀이 만들어낸 가짜 광고에서 성매수범들은 키트의 효능을 입증할 대상이자 실험 모델로 등장한다. 똑같은 접근 방식이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작가들의 행위는 매우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매수범들은 대상화 되고 분석되고 주목과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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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둘 중 하나의 전시 ⓒ 신필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A TOWN STORY> - 전민주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은 군산 미군 기지촌에 마련된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이들은 노래를 하고 주스를 팔며 때로는 반쯤 강요된 성매매 권유를 받으며 돈을 번다. 미군 기지촌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자국에서 빈곤의 벽에 부딪히고 때문에 중개 업체를 통해 한국의 미군 기지촌으로 넘어온 외국인 여성들의 삶을 카메라로 비춘다. 사실상 인신매매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호스트 네이션>이 이야기 하듯 이제 기지촌에서 성판매를 하는 여성과 성매수를 하는 남성의 국적과 인종, 쓰는 말은 달라졌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일과 뿌리 깊게 이어져온 성매매의 역사다.

전민주 작가의 <A TOWN STORY>는 '군산 아메리카 타운'을 카메라로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작업인 '2017 GUNSAN AMERICAN TOWN'과 몇 점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특히나 작가의 영상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만감이 교차하도록 만든다.

영상에서 작가는 아메리카 타운의 소음으로 추정되는 소리를 배경으로 이제는 폐가가 된 그곳의 집들을 비춘다. 울창하게 새로 잎을 낸 풀과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폐가들은 곳곳에 녹이 슬고 거미줄이 쳐진 채 그대로 낡아간다.

작가는 말한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고. <A TOWN STORY> 그 멈추어진 시간을 간결하고 강력하게 드러낸다.
#성매매 #여성주의 #페미니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반>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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