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도 쌀이 나오냐고요?

[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 19] 제주 산듸쌀, 고슬고슬한 볶음밥에 딱!

등록 2017.12.16 14:01수정 2017.12.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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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대학 선배이자 고향 선배이기도 한 황교익 칼럼니스트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제주 산듸쌀로 밥을 하는 식당이 있냐고. 산듸쌀이면 무릉외갓집 전시판매장에서도 팔고 있는지라 흔하디흔한 쌀인 줄 알고 자주 가는 식당들에 전화를 했더랬다.


"우리 식당은 맛 좋은 쌀을 쓰고 있어요. 신동진이라고. 남도에서 수확한 쌀입니다."
"우리 식당은 처음엔 제주에서 나오는 산듸쌀을 썼는데요. 육지 쌀보다 가격은 비싼 데다가 도정해 놓으면 저장성도 좋지 않고 밭벼다 보니까 일반 쌀보다 밥 짓기가 어려워요. 특히, 물조절, 불조절이 어려워서 바꿨어요".

결국 식당 섭외에 실패했다. 제주에서 산듸쌀이 나오는 지역은 예로부터 토양이 좋기로 유명한 강정지역과 무릉, 도원지역, 서귀포 하논분화구뿐이다 보니 원체 생산량이 적은 데다가 산듸쌀의 특성이 일반 논벼와 달라 밥 짓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지어서 내 식당에 쌀을 쓰겠다면 모를까 육지 쌀에 비해 비싸고, 밥 짓기가 까다로운 쌀을 사용할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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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리의 밭벼 농민이 밭벼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 무릉외갓집


산듸는 밭에 심는 벼를 뜻하는 '산도(山稻)'의 제주말이다. 산듸, 즉 제주산 밭벼의 맛은 어떨까? 무릉외갓집에서 산듸를 구매해 밥을 짓고 맛을 테스트한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 대표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찰기가 많이 부족하다. 처음 접하는 쌀이라 불리는 방법, 불 조절, 뜸을 조절하면서 세 번 연속 밥을 해봤는데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낯선 밥맛이었다. 밥이 맛있어야 찬밥이 덜 남는 법인데 찬밥이 남는다. 찬밥을 냉동고에 보관하다 해동해서 쉰 김치와 볶음밥을 해 봤다. 의외로 괜찮다."

사람의 입맛이 비슷한지 함께 일하는 동료 한은주씨도 산듸쌀을 맛보고 평하기로 '리소토 쌀 같다'고 했다.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품종과 달리 찰기가 덜한 인디카 품종 같다는 것이다. 이후로 영어교육도시의 외국인 선생님들께 납품하는 꾸러미에는 이 쌀을 '리소토용 쌀'로 소개하고 있다.


'제주에 쌀도 나오나요?' 하고 신기해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제주에는 메밀도 많이 나온다. 심지어 전국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전국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 메밀밭 수십만 평이 관광지로 소개될 정도로 메밀밭이 많은데, 그 이유는 중산간의 초지가 넓은 데다가 메밀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에서 많이 생산되는 곡류인 보리 등 화본과 식물과 윤작해 생산하기에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제주에는 메밀로 만든 음식이 꽤 많은 편이다. 메밀국수는 육지에서 많이 먹는 방식이고 제주에서는 빙떡을 들 수 있다. 경사가 있을 때 빙떡을 지져서 먹는데 그 심심한 맛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다. 60년 된 동네 방앗간에서 메밀을 직접 갈아서 가루를 내 부치고 무채를 익혀 올린 후 깨소금 송송 뿌려서 말아 먹으니 맛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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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빙떡 메밀과 무로 빙떡을 지진다 ⓒ 홍창욱


모든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는 것처럼, 먹을 때가 있고 때를 지나면 맛이 없거나 구할 수가 없다. 제주의 메밀 또한 수확되는 시기를 놓치면 찾을 수가 없다. 95% 이상이 강원도 봉평으로 가서 '봉평 메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주 메밀 브랜드도 생기고 메밀을 가공하는 기계도 많이 보급이 되고 있지만 아직 지역 특산으로 알려지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찌보면 제주의 많은 농산물들이 그렇다. '섬'이라는 지역의 특성과 '화산'의 영향을 받은 토양, 바다와 산 등 다양한 지형에서 나오는 산물들이 모두 독특한데 그것이 육지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먹어야 맛이 좋은지 아직 모르는 게 너무도 많다. '고향 제주의 맛이 좋아서 산듸쌀로 밥을 한다'는 식당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산듸쌀의 특성을 살린 볶음밥'을 팝업레스토랑에서 한시적으로 팔아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아닐까?

나는 제주의 로컬푸드를 '소나기'로 부르곤 한다. 지역에서 갑자기 수확된 후에 며칠만 지나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 먹거리들. 지역 내 생산되는 농산물을 지역 내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먼저 이 소나기를 담을 작은 물통이 필요하다. 그 물통이 바로 회원제 정기배송 서비스, 직거래 판매장, 농부장터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홍창욱 시민기자는 무릉외갓집 실장입니다. 이 기사는 서귀포 지역의 주간신문 <서귀포신문>(www.seogwipo.co.kr)에 실렸습니다.
#산듸 #제주 #빙떡 #메밀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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