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노숙→고시원…
56세 그는 평생 '집'에 살지 못했다

[지옥고에 산다 ③] 식당서 살다가 직업 잃어 고시원으로… “조그마한 집 있는게 소원”

등록 2017.12.19 15:40수정 2017.12.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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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법에는 최저주거기준이란 게 있다. 인간이 쾌적하게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 확보해야 하는 주거 면적을 말한다. 1인 가구의 경우 대략 4평(14㎡)이 최저주거기준이다. 요즘 유행하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는 주거유형은 대부분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다. 즉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 하지만 지옥고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지옥고 경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그 실상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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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방 벽에는 다양한 풍경 사진들이 붙어 있다. "나는 산을 좋아해서 이런 풍경 사진들 많이 붙여 놨어요".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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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방 한켠에는 고시원비용을 지불하고 받은 영수증이 차곡 차곡 쌓여 있었다. 22만원, 최씨가 받는 기초생활수급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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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앞에 벗어 놓은 슬리퍼를 보면 최씨가 방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최씨는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 문소리가 날까 조심하며 방문을 닫았다. ⓒ 이희훈


"목욕탕에서 일할 땐 목욕탕에서, 식당에서 일할 땐 식당에서 먹고 자고 했죠"

평생 제대로 된 집에 살아본 경험이 없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최아무개(56)씨 얘기다. 가족이 없던 그는 전북 익산의 한 고아원에서 자랐다. 19살이 돼 고아원을 나오면서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목욕탕, 식당, 양복점 등 일하는 곳이 사는 곳

청계천에 있는 한 식당에 취직했다. 연예인 백남봉씨 등이 자주 찾던 유명한 식당이었다. 숯불에 불 붙이는 허드렛일을 했다. 잠은 식당에서 잤다. 7년을 일했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월급을 달라고 하니 주인은 "먹고 자게 해준 것만 해도 어디냐"며 1원 한 장 내놓지 않았다.

땡전 한 푼 없이 식당을 나오면서, 군산으로 내려갔다. 친구 소개로 군산의 한 목욕탕 세신사로 일했다. 잠은 목욕탕에서 잤다. 목욕탕에서는 그나마 벌이가 있었지만,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몇 년 뒤 목욕탕 주인이 바뀌면서 떠나야 했다.

그의 '집'은 늘 이랬다. 중국집에서 일할 때는 중국집, 구두방에서 일할 때는 구두방, 양복점에서 일할 때는 양복점이 집이었다. 사장들은 숙식을 해결해준다는 이유로 월급을 많이 주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에 취직한 한 양계장에서는 월급 6만원을 받았다.


"그냥 공짜로 일을 한 거죠. 힘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어요. 사회가 그렇게 대접했어요.그러니까 돈을 못 모았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갔다. 예전처럼 취직하기가 어려워졌다. 초등학교 졸업에 변변한 기술 하나 없는 그를 받아줄 곳은 많지 않았다. 배달이나 서빙, 접시닦이 등 그가 평생 해온 허드렛일은 더 젊은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나이 드니 받아주는 곳 없어, 노숙 생활 하다가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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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지하상가를 지나 고시원으로 돌아가고 있는 최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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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22만원하는 최씨의 고시원 방은 한평이 되지 않는다. 겨우 발을 뻗고 누우면 방이 가득 찬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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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방 바로 옆은 공동주방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주방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가 있다. ⓒ 이희훈


"가장 배우고 싶었던 것이 목수일이에요. 그것이 오리지날 기술이에요 그걸 못 배운 게 한이 맺혀요. 직업을 너무 많이 갖다보니 뭣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제 안 받아줄라하죠. 나이드니까"

직장이 없어지면서 '집'도 사라졌다. 서소문공원에서 6개월간 노숙 생활을 했다. 영등포구 문래동 자유의집 등 노숙인 쉼터에서도 몇 달 머물렀다. 그러다가 지난 2006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시원에 자리를 잡는다.

한 평도 되지 않은 조그만 방이었다. 기초생활수급으로 나오는 돈으로 월세 22만원을 충당했다. 최씨에게도 고시원 생활은 고역이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게 가장 큰 문제다. 옆방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들린다. 가끔 술 먹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잠을 청하기 어렵다.

난방 제대로 안되는 고시원, 외투 껴입고 잠 청해

겨울은 추위까지 더해진다. 고시원은 난방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그 흔한 전기장판도 없다. 바닥이 차갑다보니, 패딩 잠바를 입고 이불을 덮어야 겨우 잠들 수 있다.

"어제 엄청 추웠잖아요. 방 안에 누워있으니까 입김이 보이더라고요. 전기 장판은 고시원 주인이 예전에 못 틀게 했어요. 합선 돼서 불 나면 큰일 난다고요. 지금은 (전기장판을 허용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방에 전기 장판은 없어요"

그의 방에 있는 가구는 TV와 소형 냉장고, 외투 하나 겨우 들어가는 옷장 뿐이다. 책상 위에는 보온병과 냄비 등 식기를 비롯해 다시다와 참기름, 간장, 봉지커피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 연락할 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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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성경을 들어 펼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이거에요"라며 두터운 손가락 끝으로 별표를 친 성경 귀퉁이를 가르켰다. "내가 가족도 없이 힘들고 외롭게 자라서 그런지 여기가 젤 좋아요"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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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창고는 발밑이자 책상 아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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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최씨. ⓒ 이희훈


책상 밑에는 얼마 전 마트에서 사온 라면과 우동이 눈에 띄었다. "이 방에 처음 오는 손님"이라며 취재진을 반기던 최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5년 전 뇌 쪽에 문제가 생겨 치료(병명은 기억하지 못했다)를 받았다.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하다.

"걱정이 되더라고요. 몸이 젊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앞날이 어떻게 될까 불안정하더라고요. 그게(고독사) 이제 걱정되죠. 연락할 데가 없으니까"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도 고독사가 있었다는 얘길 들었다. 

"총무가 잘 알죠. 소식이 끊어지면 방세를 받아야 하는데 일주일, 이주일 된 시간인데 문을 여니 돌아가셨다고 들은 적 있어요. 깜짝 놀랐죠.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껴요"

그의 낡은 폴더형 휴대전화에는 저장된 번호가 몇 개 없었다. 통화내역도 취재진과의 기록이 전부였다. 일주일에 1번씩 경기도 파주의 기도원에 가고, 보건소에서 두 달에 1번씩 안부 전화를 받는 것. 이것이 그가 사람들과 접촉하는 유일한 통로다. 

"집 한채 갖는게 소원, 외로운게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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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위에 붙은 비상구 표시, 그 옆에 유일한 창문은 복도를 향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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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젊을 때 사진이라며 부끄러워했다. 2014년에 발행된 최씨의 주민등록증에는 살고 있는 고시원 주소가 적혀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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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취재를 위해 방문한 기자에게 "저에게 찾아온 1호 손님이에요"라며 웃으며 배웅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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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 있다. ⓒ 이희훈


예전에는 주변 사람의 소개로 '선'도 몇 번 봤다. 그의 사정을 알게 된 상대방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외롭다. 얼마 전 가족들이 나란히 손잡고 나들이 가는 모습을 봤다. 그것이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원을 물었다. 집 한 채를 갖는 것이란다. 그러면 '가족'을 만들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집 하나 갖는 게 소원이죠.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내가 참, 기도원에서 많이 울었네요. 가족이라도 있으면 한 번씩 찾아가는데 (가족이) 없으니까, 외로운 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거예요"

최씨가 종이가 닳도록 들여다보는 성경 구절이 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라는 구절이다. 고아,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최씨를 위로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 같지는 않아 보인다. 고아와 나그네 신세인 최씨에게 세상은 제대로 된 방 한 칸 내주지 않았다.

#지옥고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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