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서류뭉치 보는 나라...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

[2017 비포 앤 애프터 ④]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온전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기대하며

등록 2017.12.23 12:06수정 2017.12.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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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교수신문은 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습니다. 촛불, 탄핵 인용, 조기 대선... 연이어 큰 사건을 경험한 2017년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요. 내년엔 '파사'를 넘어 '현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올해 상황이 달라진 사안들, ‘보도 그 이후’가 알고 싶은 기사들, 사연 속 주인공의 현재가 궁금한 사례들을 모아 '2017 비포 앤 애프터'를 구성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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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신 못찾고... 세월호 떠나 세월호 미수습자 운구행렬이 지난 11월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시신 없는' 입관식을 마친 후 세월호 선체를 지나 서울과 안산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이 새롭겠지만, 2017년을 맞이했던 나의 마음은 유난히 특별했던 것 같다. 정상적인 생각과 의지만으로 살아가기에도 암울했던 지난 10여 년이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란 멍에를 둘러쓰고, 잘못된 정부와 맞서고, 그들에게 이용된 자들의 조롱을 참아내며 처절하게 살아남은 건 오직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어간 아들의 한을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란 이름으로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차갑고, 높고, 두꺼운 장벽 사이로 아주 가는 희망의 빛을 보았으니 어찌 가슴이 뛰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참으로 꿈만 같은 1년이었다. 잘못된 대통령과 그의 덕을 보고 살았던 많은 범죄자들이 자신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제자리를 찾아가거나, 가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정부로 '희망가'를 불렀으니 소망한 바를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리 억울한 시간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관해선 여전히 목이 마르고 조바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음 정부에서, 10년이 가든 20년이 가든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했는데, 그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 졌으니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게다가 신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을 대신하여 정부의 잘못을 솔직히 사과했다. 또 못된 정부의 나팔수였던 MBC는 새 수장이 들어서고 아이들 영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찌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부정할 것이며, 희망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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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안산 세월호 분향소를 찾은 최승호 MBC 사장 등 경영진 ⓒ 성하훈


세월호 참사는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

하지만 어쩌면 2017년에 기대한 건 여기까지가 끝인 듯하다. 정권 교체로 인하여 여당과 야당의 공수 교대만 바뀌었을 뿐, 세월호 진상규명을 지지하는 국회의원은 여전히 과반수에 못 미치고 있다. 특별한 정치 지형 변화 없이는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도 국회에선 박근혜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 했던 이들이 지난날의 과오에 반성하기 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정을 발목잡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비롯해 각종 적폐 청산 작업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그 뿐인가. 해수부 공무원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 싶어 했던 미수습자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선체 인양과 희생자의 유골'을 가지고 1년 내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12일엔 일부 해수부 공무원들이 세월호 특조위 업무를 방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더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지난 12월 3일 이른 아침, 영흥도 해상에서 발생한 '낚싯배 충돌 및 전복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9월 13일 '제64주년 해양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하여  "더 이상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바다에서 눈물 흘리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해경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100일도 채 지나지 않아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이날 행사엔 우리 유가족들도 참석했다. 지난날의 아픔을 억지로 잊어가면서, 오직 안전한 나라가 건설되길 바라며 함께한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는 오늘, 부활한 대한민국 해양경찰에 국민의 명령을 전합니다"라며 해양 안전을 특별히 강조했다. 하지만 해경이란 조직은 이 사건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고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수색 구조가 마무리 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사고와 관련한 브리핑 과정까지 세월호 참사 때와 매우 닮아 있는 모습은 나를 실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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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11월 23일 세종청사 해수부 브리핑룸에서 논란이 된 세월호 현장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월호 이후는 달라야 한다' 그들은 변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검찰의 내사 기록'을 검토하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대한민국 국민 304명이 희생된 참사이고, 명백한 해경의 부실구조 및 늑장 구조로 인해 발생한 참사임에도 검찰은 해경수뇌부와 상황실 근무자들을 '직무유기'의 잣대로 범죄행위를 판단했다. 그러면서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듯한 정황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검찰의 입장에서 보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적용은 내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을 수도 있고, 재판 과정에서 기술적인 입증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검찰이 자신들의 사명을 다했다는 인정을 받으려면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했다.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물론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되겠지만)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나 같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또 생기겠구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전원 구조'를 하지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해경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탈출한 사람만 구조해 놓고, 참사가 진행될 당시 언론을 이용해 마치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거짓말과 악질적인 은폐 행위를 벌였다.

만약 그들이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했지만 물리적으로 어려웠거나, 장비 등의 문제로 피해가 커진 거라면 나는 그들을 쉽게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노고와 희생에 가슴 깊이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몇년의 세월동안 내가 추적한 바에 의하면 그러한 정황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국가가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의심하게될 뿐이었다.

참사 이후 우리는 끊임없이 "세월호 참사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고 외쳤다.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이 나라가 '안전한 국가' 가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를 비롯하여 현장 구조를 책임졌던 말단 경찰까지 개입된 사건이다. 정부 모든 부처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이 개입된 사건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뒤에는 이 사건을 덮기 위해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를 방해했던 세력이 있었고, 언론을 지배하여 왜곡 및 편파 보도를 기획한 세력이 있었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고, 국회 국조특위와 1기 특조위 청문회에서 위증을 하고, 위증 교사를 자행한 이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들을 모두 찾아내어 합당한 처벌을 하고, 새로운 안전시스템을 만들어 대형 참사를 막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간절한 소망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 나라 적폐 청산의 완결판이다. 이것을 청산하지 않는 한 '희망찬 대한민국'은 결코 건설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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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2학년 남현철 학생의 아버지 경원씨가 17일 저녁 목포신항에서 아들의 관에 넣을 일기를 살펴보고 있다. 경원씨는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일기를 쓰면서 하루 하루를 버텼다. ⓒ 소중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정부가 '스스로' 해야 한다

며칠 전 최순실은 결심 공판에서  "앞으로 저의 삶에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진실은 꼭 밝혀지리라 믿는다. 재판부의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단다. '과연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진실은 꼭 밝혀지리라"는 말에는 100% 동의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언젠가'가 아닌 '하루 빨리'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법꾸라지'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돌고래호 전복사고,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고, 영흥도 선창 1호 전복 사고 등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박근혜는 우리 유가족들에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스스로 하라'는 태도를 보이며 무거운 등짐을 지게 했다. 새로운 정부는 새로운 각오로 출범은 했으나 아직도 그 짐을 벗겨 주진 못하고 있다. 유가족의 손에 진상규명을 위한 무거운 서류 뭉치를 쥐게 하는 나라는 나쁜 나라이며,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진정으로 새롭게 탄생했다면, 올바른 장관으로 교체 되었다면, 진정한 언론인이 메이저 언론의 수장이 되었다면 또 다른 새해에는 이 나라가 확실하게 달라져야만 한다. 대신해서 사과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상황이 끝난 다음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이런 풍경은 없어져야만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2기 특조위법(사회적 참사법)'에 미루지 말고 정부 스스로가 철저히 조사하고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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