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보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배구 선수

[시골에서 책읽기] 배구 선수 김연경이 쓴 <아직 끝이 아니다>

등록 2018.01.23 08:40수정 2018.01.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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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한국말로 '하느님(하늘님)'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ㄹ이 떨어져 '하느님'이라고만 합니다만, '-님'을 붙이는 말씨는 매우 흔해요. 나라를 다스린다는 임금을 놓고 굳이 '임금님'이라 했습니다. 꽃이나 풀을 놓고 '꽃님·풀님'이라 해요. 해나 별이나 달을 놓고 '해님·별님·달님'이라 하고, '이웃님·동무님'처럼 쓰며, 사람 사이에서 '어머님·아버님·누님'처럼 씁니다.

이러한 '-님'은 아무한테나 붙이지는 않으나, 누구한테나 붙일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하느님'이란 하늘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높거나 거룩하거나 뻬어난 아무개를 가리킬 적에 살며시 빗대는 이름으로 삼기도 해요. 이를테면 연예인 가운데 어느 분은 '유느님' 소리를 들어요. 운동선수 가운데 '연느님' 소리를 듣는 분이 있지요. 그런데 운동선수 가운데 '연느님'은 하나가 아닙니다. 둘이지요. 하나는 피겨 선수요, 하나는 배구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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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가연

나는 엄마에게 배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힘든 일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약을 바르며 아픔을 참고 있던 큰언니의 모습보다 허공으로 점프하며 네트 너머로 공을 날려 보내던 큰언니의 모습이 나를 더 매료시켰다. (31쪽)

나는 고민이 많았던 유년 시절의 나에게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기본 실력을 탄탄하게 해서 선수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온힘을 다하자고 말했다. (41쪽)


<아직 끝이 아니다>(가연 펴냄)는 배구 선수로서 '연느님' 소리를 듣는, 때로는 영어로 '갓(God)'을 넣은 '갓연경' 소리를 듣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무대를 주름잡는 김연경 님이 쓴 책입니다. 어떻게 배구 무대에서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선수가 되었는가 하는 삶을 찬찬히 돌아본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아직 끝이 아니다>는 배구 무대에서 으뜸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우쭐거리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고등학생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키가 매우 작아서 늘 수비 훈련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키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문득 무대에 설 틈을 한 번 얻고, 한 번 무대에 설 틈을 얻었을 적에 '이 틈이 앞으로 또 올는지 알 수 없다'면서 악을 쓰고 용을 쓰면서 온힘을 뽑아낸 이야기를 다룹니다. 온몸을 경기장이라는 무대에서 불사르면서 꿈을 이루는 길을 걸어온 아이가 어떤 삶을 보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코트 위에서는 딱 하나만 생각한다. '무조건 이긴다.' (76∼77쪽)
코트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훈련을 해왔고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말이다. (119쪽)
'내뱉은 대로 해내면 되지 뭐!'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 내뱉은 말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체육관에서 배구공을 한 번 더 잡는 것을 선택했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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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뛰던 김연경 선수 ⓒ 김연경

이제 연느님이나 갓연경이 된 김연경이라는 배구 선수입니다만, 어릴 적에는 언니가 배구 무대에서 새 한 마리처럼 날아올라 공을 맞은편에 내리꽂는 모습에 반해서 배구판에 뛰어들고 싶다는 꿈을 키운 작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다만 언니가 처음 배구를 배울 적에는 학교에서 '주먹질'이 흔했다고 해요. 두 딸아이가 운동 선수라는 길을 걷는다고 할 적에 두 딸아이 어머니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지요. 눈에 넣어도 아플 수 없는 두 아이가 훈련을 받을 적에 늘 '맞아서 몸에 멍이 드니'까요.


배구 선수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읽다가 살며시 덮고서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으로서 운동 선수를 이끄는 엉터리짓을 멈출 수 없을까요?

요즘도 '운동부 주먹질'이 곧잘 도마에 오릅니다. 때려서 말을 듣게 한다든지, 나이나 계급 따위로 억누르면서 막말을 일삼는다든지, 이런 낡은 버릇을 왜 털어내지 않을까요.

재활이란 몸을 다시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대면하고 하나하나 점검하는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 코트 위에서 훈련해 온 대로 몸이 움직이고 감각이 살아나고 공이 시야에 들어와 내가 낼려보낼 방향을 판단하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135쪽)


어느 모로 본다면 <아직 끝이 아니다>는 꿈을 이룬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꿈을 이룬 이야기라기보다, 꿈을 이루려고 얼마나 마음을 쏟고, 얼마나 땀을 바쳤으며, 얼마나 힘을 다했는가를 적은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이렇게 해야 뜻을 이룬다'는 책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틈도 나한테 찾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하려는 일, 스스로 가려는 길만 바라보면서 밑바탕부터 차근차근 다스리고 꿈만 보며 즐겁게 한길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보다 푸름이가 읽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앞날이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푸름이가, 대학입시에 지친 푸름이가, 입시학원하고 보충수업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학교에서 고달픈 푸름이가,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 자라는 푸름이가, 한 줄 두 줄 찬찬히 새기면서 읽어 봄직하다고 생각해요.

단맛을 본 이야기는 거의 없이, 쓴맛을 본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에요. 오늘 우리 곁에서 '하느님 김연경' 소리를 듣는 그 엄청나거나 멋지거나 놀랍거나 대단한 사람이, 참으로 오랜동안 '아무것도 아닌' 작은 아이로 살아오면서도 웃고 춤추면서 즐겁게 제 길을 걸어온 이야기가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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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로 뛰던 김연경 선수 ⓒ 김연경

그때 나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답변을 했다. "기자 분들이 선수의 미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여자 배구를 소개하는 기사에 대부분 '미녀 3인방' '미녀들의 대결' 등 '미녀'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남자 배구에선 '미남 대결'이란 말이 없잖아요. 왜 여자 배구만 유독 그런 단어를 써야 하는 거죠? 선수들 모두 먼저 배구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178쪽)


할 말을 하는 배구 선수 한 사람은 '내뱉은 말은 꼭 이룬다'고 다짐한다지요. 경기에 나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만 한다지요. 그리고 이녁 스스로 성평등을 따지려는 생각은 없이 '그저 한 사람으로서, 오직 사람으로서' 서로서로 바라보고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힙니다.

배구 선수이기에 겉모습이나 몸매 아닌 배구 솜씨로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키가 더 커야 운동을 더 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귀여겨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아직 끝이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 땀을 흘릴 줄 아는 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온누리에 으뜸가는 배구 선수 한 사람으로서도,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가꾸는 우리로서도,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로서도, 참말로 끝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꿈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제껏 했는데 늘 쓰러지거나 고꾸라졌으면, 다시 한 번 일어나서 나아가면 됩니다. 웃으면서 일어서고, 춤추면서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됩니다. 우리 곁에서 연느님이 속삭여요. 넘어졌으면 일어나자고, 한 번 더 해 보자고, 다시 넘어지면 또 일어서자고, 한 번 해서 안 되니 두 번 더 해 보자고. 우리가 입으로 내뱉은 말은 참말 누구나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덧붙이는 글 <아직 끝이 아니다>(김연경 글 / 가연 / 2017.9.15. / 13800원)

아직 끝이 아니다 - 배구여제 김연경의 세상을 향한 강스파이크!

김연경 지음,
가연, 2017


#아직 끝이 아니다 #김연경 #푸른책 #삶읽기 #연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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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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