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잊혀진 겨레의 축일, 삼일절

등록 2017.12.22 15:17수정 2017.12.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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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충칭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것을 두고 역사학자 전우용은 지난 18일 트위터 게시물을 통해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시민의 힘으로 기념관과 기념탑을 세울 것을 제안하였다. 해당 트윗은 2000회 이상의 리트윗과 1700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삼일절 100주년을 범국민적 행사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이 호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일절은 우리에게 있어 어떤 날이었는가.

많은 사람에게 "우리나라의 최고 경사스러운 날이 언제인가?" 하고 물으면 광복절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 중에서도 광복절은 유달리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독립 정신을 선양하는 경축 행사는 물론 연회, 불꽃놀이, 문화공연 등 다양한 축하 행사들이 이날에 벌어진다. 

반면 삼일절은 많은 사람에게 있어 그저 '독립 만세운동을 벌인 날'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날에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과 자유민주를 선언하여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인 삼일정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잊혀지고 만세운동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살상당한 것만이 전승되고 있다. 지난 70여 년간 삼일절은 의례상의 식전과 33인 추모식으로 기념됐을 뿐이며, 지난 20여 년 동안은 삼일정신 계승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불러 멋없이 매년 벌이는 만세운동 재현행사만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가오는 2019년은 3.1 독립선언 및 대한민국 국호 탄생 100주년이다. 대한의 독립과 대한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한 1919년 3월 1일, 국민주권이 천명되어 민권의 시대를 알리며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공동체와 그 정신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목전에 두고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삼일절을 외면해 왔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날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잊혀진 국경일, 삼일절

삼일절은 1920년 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내무부 포고령 1호로 삼일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 준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최초의 기념행사가 시작되었다. 당해 3월 1일 임시정부 차원의 경축식이 오전 10시 이동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임시의정원 대의원과 그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하이 올림픽 대극장에서 봉행 되었으며, 당일 오후 2시에는 대한교민단의 주최로 3.1절 축하회가 열려 여운형 당시 교민단장의 연설과 이동휘, 안창호의 축사, 중국 남녀 학생들의 축하 무용 등을 아우르는 성대한 축하 행사가 거행되었다.

기념식은 미주 지역과 국내 일부 지역, 연해주, 하와이 등지에서도 거행되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 다뉴바 시에서는 300인의 한인이 모여 태극기를 단 차량과 간호복을 입은 여성 부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 남성들이 사자탈을 쓴 춤꾼과 함께 시가행진을 벌였으며, 국내에서는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장병준이 잠입하여 <대한독립 1주년 축하 경고문>이란 전단을 살포하여 3월 1일을 '건국의 기념일'로 선전하였다.

이와 함께 1920년 3월 15일 임시의정원 제7차 회의에서 3월 1일을 '독립선언일'이란 이름의 국경일로 지정하는 국경일 안이 통과되었다. 이때부터 삼일절은 민족의 국경일로 출발한 것이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명칭인 삼일절(三一節)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식 명칭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는 국경일의 명칭을 쌍십절(雙十節)로 부르는 중화민국, 혹은 독립기념일을 4th of July(7월 4일)라고 부르는 미국의 사례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독립선언기념일, 독립기념일, 독립기원절, 삼일국경일, 독립경축일 등의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었으나 정부 수립 후 사실상의 별칭이었던 삼일절이 정식 국경일 명칭으로 확정된 것이다.

해방 이후인 1946년에는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에서 3월 1일을 국경일로 하는 법률안이 제정, 통과되었고 동년 3월 1일 서울 보신각에서 삼일절 경축식이 열렸다. 이것이 해방 이후 최초로 맞이한 삼일절 기념인 셈이다. 한편 삼일절은 냉전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1949년 이전까지 줄곧 좌우 대립의 장으로 치닫곤 하였다. 우익 진영은 서울 운동장에서, 좌익 진영은 서울 남산에서 각기 따로 기념식을 열었으며 각 진영의 입장을 선전하는 공연이나 군중대회도 난무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국회가 국경일 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3월 1일은 삼일절이라는 국경일로 공식 확정된다. 1950년대까지는 삼일절에 중앙 경축식을 비롯한 음악회, 문화공연, 농악대와 밴드의 시가행진, 경축 에어쇼, 연회 등이 열리면서 명실상부한 민족의 4대 국경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언론사들도 일제히 특집 프로그램과 지면을 마련하여 이날을 경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삼일절의 위상은 1960년대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크게 달라진다. 1950년대까지 그 맥이 이어져 오던 시가행진은 학생운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박정희 정부에 의해 중지되었으며, 시민회관에서 거행되는 의례상의 식전과 탑골공원 내 33인 선열 추도식만이 남게 되었다. 간간히 3.1절 경축 문화예술제와 불꽃놀이가 열리긴 했으나 지속해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삼일절은 정부에게서조차 외면받는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이전까지 대통령이 낭독하던 경축사를 국무총리 대리가 대독하게 하였으며, 그 내용도 3.1 건국 정신과 관련되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독립을 기념하는 축하공연이나 불꽃놀이, 예술제 등의 경축행사는 광복절에만 집중되었으며, 언론에서도 점차 삼일절 특집 지면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는 삼일절 80주년을 계기로 학생들을 동원한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기념행사는 눈에 꼽을 정도로 찾기 힘들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의 97주년 삼일절 기념사에서 언급된 "진실한 사람"에서처럼 삼일절 기념은 여전히 의례상의 기념식에서 머물러 있으며, 기념사 또한 건국 정신을 되새기는 내용으로 차 있기보다는 정부 정책 홍보의 장으로 전락한 상태다. 기념의 대상도 독립선언이 아닌 만세운동으로 변질됨에 따라 일부에서는 "삼일절은 슬퍼해야 하는 날"로 오해하는 경우까지 간혹 보인다.

선열들의 바람은 달랐다

그렇다면 선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삼일절을 기념했을까? 이는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1920년 3월 4일 자 삼일절 특별판 독립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삼월 일 일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선언한 삼월 일 일. 이천만 대한인은 가는 곳마다 있는 곳마다 천년 후 만년 후까지 자자손손 열성과 환희로써 지켜 축하할 삼월 일 일"

"…매 일요일과 경절에 영미법(영국, 미국, 프랑스)의 국기가 호호에 날릴 때에 우리는 얼마나 그를 부러워하였던고. 동포들은 아이들까지도 수일전부터 이 신성한 국경일의 준비를 하여작일에 이르러 아주 명절기분이 되었다. …천만대에 기념할 우리 민족의 부활일인 오늘 하루를 무한이 기쁘게 축하하자, 놀자."

애국선열들은 삼일절을 '민족의 부활일'이자 '독립기념일'로 간주하여 이날을 성대히 축하하며 놀자고 하였다. 그것이 삼일절을 보냈던 초창기의 광경이었다. 의례상의 식전과 만세운동 재현 등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현대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부 수립 초기에까지 이어졌다. 1949년 3월 1일 동아일보의 "삼일절에 제하여" 라는 사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늘은 3월 1일! 우리 겨레 삼천만의 최대 국경일인 삼일절이다…이날이야말로 우리 겨레가 인류평등의 대의를 천하에 극명하여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겁이 누리기 위하여 인류공존동생권을 전취하려고 완전한 자주독립을 확보할 때까지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싸울 것을 굳게 맹세한 날이다. 그러므로 이날은 우리 겨레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장 거룩한 최대최고의 국경일이다."

"…이날에는 명실상부하게 거족적인 국경일로 남북의 삼천만이 다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즐겁게 노래하고 맘껏 뛰놀며 이날을 경축하자. 이것이 최대 국경일인 오늘을 맞이하여 최대의 축원(祝願)이며 최고의 이상이다."

1950년대까지 신문에 실린 삼일절 특집 기사를 보면 대체로 '경축'의 느낌을 풍기는 어휘가 많이 사용되었다. 식전이 봉행 되었던 서울운동장의 현수막과 시내 주요 도로 가에는 '경축 삼일절'이란 문구가 나붙었으며, 브라스밴드와 농악대의 시가행진과 꽃 전차의 운행, 경축 에어쇼, 축하 연회 등이 개최되었다. 1950년대 중후반에는 삼군 군악대와 의장대가 시가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삼일절을 대한민국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제의 장으로

여운형 선생은 제1회 독립기념일 대한교민단 연설에서 삼일절을 미국의 독립기념일, 프랑스 바스티유의 날, 중화민국 쌍십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축일로 언급하였다.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바스티유의 날, 쌍십절은 자국의 건국 이념이 탄생한 날로 이들 나라의 국민들은 퍼레이드와 불꽃놀이, 춤과 노래로 이날을 축하하며 즐긴다. 이는 곧 삼일절이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기념(紀念)의 정의이다. 기념이란 곧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헌 이래 삼일정신을 민주공화국 건립 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립 이념이 탄생한 3월 1일을 열성과 환희로써 축하하기는 고사하고 물리적 사건에 불과한 8.15 해방을 가장 기쁜 것으로 여겨 이날을 경축해왔으니 애국선열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이제 다시 겨레의 명절이자 축일인 삼일절의 본 자리를 회복시켜주자. 선열들이 바라던 대로, 3월 1일에는 노래와 춤으로써 독립 정신을 기억하고 독립국의 기쁨을 나누자. 의례상의 식전과 만세운동 재현에서 벗어나 불꽃놀이와 문화공연, 축하 퍼레이드 등 다양한 경축 콘텐츠를 개발하여 3.1 정신을 되새기고 계승하자. 이것이 바로 2019년 독립선언 100주년을 목전에 둔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백범학술원장인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함으로써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조금 반성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민족의 기념일이라든지 그런 것이 언제 정해지고 왜 정해졌는지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이유 없이 의례적으로 행사를 해오는 경우가 많죠. 3.1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3.1운동 그러잖아요? 그래서 3.1운동 그래서 그냥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는 것을 위주로 행사를 하죠.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근데 1919년 3.1절은 만세 부르자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부정한다. 우리는 독립이다 라고 하는 것을 선언한 것이 근본적인 취지입니다.또 그것을, 그 독립을 실현하려는 방법으로 태극기를 들고 가서 만세를 부른 것이죠. 근데 우리는 지금 독립을 선언했다고 하는 진짜 목적은 별로 안 하고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른, 만세 운동 위주로 행사를 하잖아요. 그런 것이 국가기념일을 우리가 잘못 기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그 3.1절을 기념하면서 좀 정부고 국민들이고 좀 새롭게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3.1절은 우리가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른 만세 운동을 부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우리는 일제 식민지 지배를 부정한다. 우리는 독립국이다. 라고 선언한 것이 3.1절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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