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야가라·MB캐년... 모든 건 '예정된 참사'였다

[2017 비포 앤 애프터 ⑩] 4대강사업은 자연에 대한 전면전... 보 개방으로 전환 '가능성'

등록 2017.12.30 20:24수정 2017.12.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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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교수신문은 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습니다. 촛불, 탄핵 인용, 조기 대선... 연이어 큰 사건을 경험한 2017년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요. 내년엔 '파사'를 넘어 '현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올해 상황이 달라진 사안들, ‘보도 그 이후’가 알고 싶은 기사들, 사연 속 주인공의 현재가 궁금한 사례들을 모아 '2017 비포 앤 애프터'를 구성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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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 합수부부터 그 상류로 모래톱이 복원되고 있다. 4대강사업 이전의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 ⓒ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2016년 매서운 겨울 추위를 달구던 촛불 물결은 혁명이 돼 조기 대선을 이루어 냈다. 그 힘은 정권을 교체한 원동력이 됐고, 그렇게 구성된 새 정부는 이명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벌어진 적폐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여기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박근혜 정부가 방관한 '4대강 살리기 사업'(아래 4대강사업)도 포함됐다.

2017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으로 건설한 16개 보 중에 녹조 발생 우려가 높은 6개 보 수문 개방을 결정했다. 그동안 4대강사업을 비판해 왔던 전문가 집단과 환경단체는 이런 조치가 전면 수문개방에 이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4대강에서 벌어진 '총체적 부실'을 바로잡는 시작점이자, '4대강 회복'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예견된 파국을 피하지 못할 만큼 후진적이었나?

돌이켜 보면, 지난 10여 년 간 우리 강은 '잔혹사' 그 자체였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상식을 부정했기 때문에 '녹조라떼'가 대변하는 필연적 부작용이 발생했다. 여기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어떻게 추진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은 국내외 전문가는 물론 국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즉 예견된 파국을 피하지 못 할 만큼 후진적 시스템이었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4대강사업 10여 년을 ▲ 대운하 추진 및 4대강 전환기(2007~2008) ▲ 4대강 공사 강행기(2009~2011.10) ▲ 4대강 부작용 발생기(2011.11~2016.03) ▲ 4대강 회복 모색기(2016.04~2017.05) 등 네 단계로 구분했고, 각 시기 주요 사건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1기 '대운하 추진 및 4대강 전환기(2007~2008)'는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공약으로 시작된 '한반도 대운하'가 사회적 검증 속에 좌절되자, 2008년 4대강사업으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2008년 6월 이 전 대통령은 촛불 민심에 "국민이 반대한다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2013년 7월 감사원이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추진했다'는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사실이 아니었다.

제2기 '4대강 공사 강행기(2009~2011.10)'에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을 '이명박 정권 1호 사업'이라 칭하며 정부부처와 사정기관, 토건재벌, 어용학자, 언론 등 광범위한 세력을 결집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예비타당성 조사, 사전환경성 검토, 환경영향평가, 문화재 지표 조사 등, 그간 우리 사회가 어렵게 형성한 사회적 타당성 검증 시스템을 무력화 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1월 기공식을 갖고 4대강 95개 공구에서 365일 24시간 공사 체제에 돌입했다.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가 4대강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고, 전문가 집단, 환경단체는 물론 해외 전문가, 교민들이 반대 운동을 벌였다. 또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패배라는 4대강 반대 민심이 확인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공사 속도를 결코 줄이지 않았다.

4대강사업으로 2011년 6월 봄비에 근대문화제 왜관철교가 붕괴되고, 지류지천 역행침식(이 때문에 'MB야가라', 'MB캐년'과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10월 이 전 대통령은 남한강 이포보에서 열린 4대강 새 물결 맞이 행사에서 '생태계를 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강으로 태어났다'며 4대강사업 성공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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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4대강 사업으로 침수 위기에 처한 '팔당 유기농 단지'의 농민들이 대선 후보 시절 "유기농을 더욱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사진이 박힌 펼침막을 두르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108배를 올리고 있다. ⓒ 남소연


MB의 4대강 성공 선언 이후 드러난 부작용

제3기 '4대강 부작용 발생기(2011.11~2016.03)'는 역사의 필연을 증명했다. 예측의 한계가 분명한 자연을 대상으로 고장난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아이러니 하게도 MB가 성공을 선언한 직후부터 부작용이 본격화됐다. 2011년 11월 언론을 통해 낙동강 상주보 누수가 보도된 이후 함안보 하류 20m 세굴 현상 등 갓 지은 구조물의 안전성이 의심될 만한 상황들이 이어졌다.

2012년 7월에는 '녹차라떼'(이후 녹조라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녹조 번무 현상은 2017년까지 관찰됐고, 그 속에 간 독성을 일으키는 마이크로시스틴이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의 400배 넘게 검출되는 등 수돗물 안전성 논란까지 이어졌다. 2013년 7월 낙동강에서 첫 조류경보가 발령된 이해 거의 매년 조류주의보, 조류경보가 울려 퍼졌다.

앞서 2012년 10월 금강에서는 충남도 추정 30만 마리의 물고기 집단 폐사 사건이 일어났고, 낙동강, 영산강에서도 물고기 떼죽음 사건이 일상화됐다. 2014~2015년에는 이전까지 강 본류에서 볼 수 없었던 큰빗이끼벌레가, 2015부터 2017년에는 4급수 지표 생물인 실지렁이, 붉은색깔따구 애벌레가 창궐했고, 2016년 2월에는 기생충에 의한 어류 폐사가 일어났다.

이런 4대강사업에 대해 감사원은 2013년 1월과 7월 '총체적 부실'이라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초기 4대강 문제를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토부 2중대'란 소리를 듣던 환경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13년 8월 비서실장 김기춘의 등장부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후 박근혜 정부 동안 4대강은 사실상 '금기어'였다. 그에 따라 주민 피해 등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제4기 '4대강 회복 모색기(2016.04~2017.05)'는 2016년 4월 20대 국회가 야대여소 정국이 형성되면서 시작 됐다. 18, 19대 국회는 4대강사업을 옹호한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다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4대강 비판 측은 새롭게 열린 정치 기회 구조 속에서 4대강사업 진상규명과 책임 촉구 활동을 벌였고, 2017년 5월 국민 촛불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보 수문을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전환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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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코 앞에서 "이명박을 구속하라" 기습시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트리플데이를 앞두고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친이계 전·현직 수석 및 의원들과 송년 회동을 위해 들어서다 "MB 구속하라"고 외치는 한 시위대(왼쪽 아래 검은 모자 쓴 이)의 기습시위를 마주하고 있다. ⓒ 남소연


4대강사업은 자연에 대한 전면전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를 4대강사업으로 위장했다. 이를 위해 '녹색성장'이라는 성장'과 '환경' 프레임을 동원해, 개발 떡고물을 노리는 정치세력과 어용학자, 주류 언론을 참여시켰다. 정부 부처 핵심 인사를 자기 사람으로 채워 공직사회를 장악했고, 4대강사업을 홍수와 가뭄 극복, 기후변화 대비, 수질개선, 경기활성화 등 못할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사업'으로 만들려했다.

4대강사업은 보편적 상식의 부정이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상식적 비판을 이명박 측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매도하더니 '좌파들의 전술'이라는 색깔론까지 들고 나왔다. 여기에 국가 사정기관을 동원했다. 2012년 4월 공개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문건에서는 4대강 비판 진영을 '불순세력'으로 지칭한 것이 확인됐다.

2013년 3월에는 국정원이 4대강 비판 측을 '종북세력',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실제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 강행을 위해 국정원을 전문가와 공직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4대강사업 추진의 핵심 '컨트롤 타워'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검찰,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도 동원됐다.

결국 대운하를 염두에 둔 4대강사업은 실패가 예견된 사업을 특정권력층이 국가권력을 동원해 밀어붙여 혈세를 낭비케 하고 국토를 파괴한 '사건'이었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의 이성과 상식을 후퇴시킨 '사태'였다. 또한 이전 대형 국책사업과 달리 강이라는 선을 동시 다발적으로 파괴했다는 점에서 '자연에 대한 전면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6월 1일 6개 보 개방에 이어 11월 10일 한강 강천보와 여주보를 제외한 14개 보 추가 개방을 발표했다. 7개 보는 즉시 개방하고, 7개 보는 지하수와 농업용수 등 상황을 고려해 점차적으로 개방한다는 내용이다. 그에 따라 낙동강 합천창녕보 등은 4대강사업 이전과 비슷한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합천창녕보 하류 황강 합수부 지점에서는 모래가 다시 쌓이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세종보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래는 소월이 노래한 우리 강의 정서적 특징일 뿐만 아니라 물을 맑게 하고 생물들의 산란처가 되는, 우리 강의 필수 요소이다. 이런 모래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강이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4대강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수문 개방에 따른 논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4대강사업에 따른 부작용은 단지 강으로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 강 회복은 우리 국토와 사회의 회복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4대강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던 사회 시스템 전환은 성찰의 근본이다. 최소한 통합물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고, 곡학아세 학자와 정치인, 공직자 등 4대강사업에 부역한 이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도 있어야 한다. 소설 <에코토피아> 저자 어니스트 칼렌바흐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자연은 반드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고 했다. 우리가 4대강 '잔혹사'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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