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m 굴뚝에, 산타말고 노동자가 있다

[현장] 회사에 합의사항 승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등록 2017.12.25 18:08수정 2017.12.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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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m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 ⓒ 인터넷언론인연대


산타 대신 노동자들이 75m 굴뚝에 올라가 있다. 오늘(25일)로 44일째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은 박준호 사무국장과 지난 11월 12일 새벽,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목동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갔다.

이들은 왜 굴뚝에 올라가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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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홍기탁 노동자 ⓒ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은 '파인텍지회가 요구하는 사항'을 묻자 ▲ 3승계 즉 고용승계, 노동조합 승계, 단체협약 승계 합의사항 이행 ▲ 노동악법 철폐 등을 강조했다.

그는 "이런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 노동자가 스스로 나가서 싸워야 한다"며 굴뚝 농성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홍 전 지회장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경북 구미에 있던 한국합섬이 폐쇄되자 노동자들은 닫힌 공장을 지키며 긴 투쟁을 시작했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은 2011년 한국합섬을 399억 원에 인수하여 스타케미칼로 법인을 변경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1년 7개월 만에 폐업 절차에 들어갔다.

[관련기사 : 408일 그리고 49일... 노란 손수건 이야기]


홍 전 지회장은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8일까지 차광호가 408일이라는 고공농성을 했고 3승계 합의 후 내려 왔다. 약속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스타케미칼이 만든 자회사 '파인텍'은 올해 9월 기계를 드러내고 공장은 다른 사업자에게 임대되었다"라며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은 폐업 청산 후 공장 안에 있는 고철, 기계를 다 팔고 건물을 무너뜨렸다. 남은 땅을 분할 매각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먹튀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해고자는 떠났고 조합원 5명만이 남았다. 홍기탁, 박준호는 굴뚝 위에, 408일간의 공중농성을 벌였던 차광호를 비롯한 3명은 지상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홍기탁 전 지회장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파업했지만 사측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 줄 의향이 없다. 그래서 올라 왔다"고 말했다.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국장이 올라간 굴뚝은 폭 75cm, 둘레 20m 남짓이다.

'사측은 어떤 입장인지' 묻자, 홍 전 지회장은 "노사 간 대립관계 속에서도 서로 간의 합의사항을 문서화시킨 게 '고용승계, 노동조합승계, 단체협약승계'다. 단체협약서에는 노동조건, 노동시간, 임금, 복지, 노동조합활동 전 부분이 들어가 있다. 그게 없으면 노동조합의 조합원의 권리는 없다. 사측은 '공장 가동도 했고 노조도 할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단체협약서에는 인건비, 조합활동비 등이 부정돼 있다. 이뤄진 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홍 전 지회장은 "다 이뤄지면 내려갈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5명 전체가 합의되면 내려갈 것이다. 그 전에는 내려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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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가 지내고 있는 75미터 높이에 설치된 비닐농성장 내부 모습 ⓒ 파인텍지회


이들은 좁은 굴뚝에서 하루 두 차례 오전 10시~11시, 오후 4시 30분~5시 사이에 75m 아래에서 올라오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비닐과 천막 2겹, 매트를 깔고 침낭에 들어가 추위를 버티고 있다. 내부 온도는 밖과 불과 1, 2도 차이다. 언 몸은 핫팩과 껴입은 옷으로 녹인다.

위생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홍 전 지회장은 "솔직히 얘기하면 일주일에 한 번 머리를 감고 물티슈로 세수한다. 물이 올라오면 거의 다 언다. 머리를 감고 싶어도 얼어 있어 감을 수가 없다. 보온병에 올라오는 물은 식수로 활용한다"고 했다. 이어 "추운 날 자고 일어나면 몸이 굳어 있다. 땀이 날 때까지 스트레칭과 제자리 달리기를 한다. 아침, 점심 각 40~50분씩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전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사회적 문제, 악법, 잘못된 정치권, 사회 모순된 것을 갖고 싸운다. 더 나은 삶,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싸운다"며 "많은 동지들이 매일 같이 찾아준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 다만 정확히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싸우려는지, 무엇을 내걸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아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홍기탁, 박준호가 올라간 게 중요하지 않다. 버티고, 생활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우리가 내 건 요구 사항에 대해 국민이 고민하고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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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주변은 경찰 5명이 상주하면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에어 매트리스가 인상적이었다 ⓒ 인터넷언론인연대


한편 오는 30일 파인텍 굴뚝농성 연대의 날을 맞아 이날 오후 2시 국회 앞에서 '대한민국 국회에 바란다'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오후 5시까지 목동 CBS 스타케미칼 본사 고공농성장 앞까지 행진하며 사태 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오후 6시부터 굴뚝농성장 앞에서 '국밥나눔'을, 오후 7시에는 연대문화제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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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입구 철문에 누군가 양말을 걸어놓았다 ⓒ 인터넷언론인연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먼컨슈머에도 게재됐습니다
#굴뚝 #파인텍 #노동자 #농성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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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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