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학번 아빠가 17학번 아들에게 전하는 1987년 이야기

대학 신입생이 겪었던 1987... '호헌철폐,독재타도에서 촛불혁명까지'

등록 2018.01.02 11:03수정 2018.01.0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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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 <1987>이 개봉했다. 당시 대학생들이라면 모두가 경험했고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필자 또한 87학번으로 6월 항쟁에 참여했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17학번인 아들과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보기 전,30년 전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당시 필자의 학교생활과 함께 1987년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아래는 아들에게 전했던 필자의 1987년 이야기다.

풋풋한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던 1987년. 학교의 교정은 푸르고 무엇보다도 캠퍼스가 무척이나 넓었다. 전형적인 농촌 소도시에서 초·중·고를 보냈던 아빠에게 다가온 대학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맘껏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던 대학 생활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모든 게 신기했던 아빠는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자보'라는 것을 보게 됐다. '대자보'에는 내가 시골에서 볼 수도, 듣지도 못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특히, '대자보'에는 '호헌철폐, 독재타도','군사정권 물러가라' 등 무시무시한 말들로 가득 채워졌다.

실제, 아빠는 '운동권'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이런 글을 써놓거나, 이 글을 읽으면 경찰이 잡아가지 않을까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학교 내의 단과대학이나, 중앙도서관 앞, 그리고 바닥에 붙여진 '대자보'를 전부 읽고 돌아다니던 때 매일같이 학교에서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학교 정문으로 이동해 진압경찰과 투석전을 벌이고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그러던 중 아빠는 처음 최루탄에 눈물, 콧물을 빼보기도 했으며, 금요일 집에 가기 위해 교문을 나서다 사과탄 파편에 맞아 안경이 깨지고 파편 일부가 눈에 박히면서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는 이전보다 더욱더 격렬한 집회를 이어나갔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조치'를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또한, 전국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각계 인사들 시국 성명을 이어졌으며, '대자보'에는 이런 내용과 '호헌철폐, 독재타도'구호가 적혀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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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1987>이 개봉했다.영화 <1987>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쟁취한 때가 있었다. 1987년을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팍팍하고 갑갑한 이 세상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어가길 바란다" ⓒ 신영근


또한,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으로 사망한 일까지 폭로됨으로써 정국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된 집회는 학교의 수업거부와 시험거부로 이어졌으며, 매일같이 학교 민주광장에 모여 집회와 함께 시내로 진출하여 격렬한 집회를 이어갔다. 아침 학교에 가면 16개 단과대학별로 모여 약식집회를 가진 후 민주광장으로 향한다.

학교 민주광장에서 결의를 다진 학생들은 시내로 진출해 자정이 될 때까지 온몸에 최루탄을 맞아가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이렇게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면서 필자는 '별일 없느냐'는 고향에 있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6월항쟁 속에서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학교 앞 시위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시위는 더욱더 격렬해졌다. 치열하게 전개됐던 6월 항쟁은 한 달여가 지나고, 같은 달 29일 '직선제 개헌'을 포함해 야당과 재야 세력이 주장해온 민주화를 위한 요구를 수용하며 6·29 선언을 발표한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17학번인 아들에게 전한 1987년 이야기다.

필자의 인생에서 치열했던 지난 1987년을 다시 되돌아보는 영화 <1987>이 개봉했다는 소식에, 영화를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 당시 6월 항쟁으로 인해 숱한 구속과 탄압을 받았던, 선·후배들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7년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 31일 자정 필자는 17학번의 아들의 함께 영화 <1987>를 관람했다. 영화 중 경찰이 학번을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학번을 이야기할 뻔했다.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기에 영화 내내 긴장감을 갖고 보게 됐다.

영화는 당시 박종철의 고문치사사건으로 시작된다. 고문치사를 은폐하고, 수사를 축소하는 등 진실을 왜곡했던 30년 전 그날을 그린 것이다. 억울한 대학생의 죽음이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87년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은, 30년이 지난 지금 17학번인 아들에게 당시 울컥했던 감정과 상황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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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1987>이 개봉했다. ⓒ 신영근


또한, 1987년 6월항쟁은 지난해와 올 초까지 1600만의 촛불로 다시 돌아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썼으며, 그렇게 6월항쟁과 광장의 촛불 혁명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박종철 고문치사로 시작된 영화는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의 모습과 장례로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난 후 17학번의 아들은 "역사책에서만 공부했던 것들이, 사실이었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어떻게 당시에 저런 일이 있었는지 영화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라고 흥분했다.

특히, 30년 전 아무것도 몰랐던 시골 촌놈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1987년을,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 <1987>를 소개하는 내용 중에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쟁취한 때가 있었다. 1987년을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팍팍하고 갑갑한 이 세상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어가길 바란다."
#영화1987 #호헌철폐 #박종철고문치사 #이한열열사 #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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