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박종철기념관' 옆에 두 배 크기 '경찰인권전시관'이?

[현장] 영화 <1987> 무대 남영동 대공분실... 기념사업회 “경찰 아닌 시민사회가 운영해야"

등록 2018.01.03 12:08수정 2018.01.0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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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사용하는 경찰청 인권센터 5층에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했던 509호가 원형그대로 보존돼있다. ⓒ 박정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개봉 7일 만에 누적관객 수 25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 중이다. 그러나 정작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에 있는 박종철 기념관은 홍보 부족으로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다.

지난 2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경찰청 인권센터는 고요했다. 이곳은 과거 김근태, 박종철 등 민주화 투사들의 고문과 인권탄압이 이뤄지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개축해서 만들었다. 4층에는 박종철 기념전시실이 있고, 5층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벌어진 '509호'를 원형 보존하고 있다.

영화 <1987>의 배경이 된 역사적 장소... 관람객은 드물어

박종철 기념전시실에는 박종철 열사의 유품과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또한 80년대의 어두웠던 시대상황,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6월 항쟁 등에 대한 신문기사와 사진 등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담아내고 있다.

이어서 5층 조사실을 보면 그야말로 삭막하다. 16개의 방이 있는데 문들이 마주 보지 못하도록 지그재그 구조로 설계되어있다. 각 방에는 변기와 세면대가 설치되어있다. 2002년 리모델링 할 때 구조가 바뀌기도 했으나, 원형 그대로 보존된 509호에는 물고문이 이뤄진 욕조, 조사를 받던 책상과 침대도 남아있다.

영화 <1987> 속에 등장한 역사적인 장소를 서울 한복판에서 찾을 수 있음에도 관람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기자가 인권센터에 머물렀던 2일 오후 3시~4시 사이에 인권센터를 찾은 시민은 4명에 불과했다. 인권센터 경비 관계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하루 15명에서 30명 정도 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방명록을 확인하니 지난 18일간 70명밖에 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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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박종철 기념전시실에 전시되어있는 박종철 열사 관련 사진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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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 있는 수사실의 풍경 ⓒ 박정훈


실제로 지난해 6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가 '2016년 경찰청 인권센터 일별 방문 수'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결과에 따르면 방문객이 월평균 358명에 불과했다. 이런 와중에 2016년 11월에는 경찰청 인권센터 홈페이지도 폐쇄되면서 박종철 기념관에 대한 정보는 더욱 온라인에서 찾기가 힘들어졌다. 정보공개센터는 "10년간 박종철 기념관을 알리기 위해 경찰이 무엇을 한 지 모르겠다. 기념관을 담당하는 학예사도 없고, 벽에 안내 명패조차 없다. 기본적인 관리와 홍보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곳을 찾아온 시민들도 한결같이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없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곳에 두 번째로 찾아왔다는 대학생 박아무개(23)씨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역 근처(남영역 뒤편)에 이런 현장이 있는 줄은 몰랐다. <1987>보고 이곳에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며 "지난번에 찾아왔을 때 문을 나서는 순간 어떤 분이 '이건 도대체 뭐하는 건물인데 여기 버티고 있냐'고 말한 게 기억이 남는다. 그 정도로 모르는 분들이 많다"라며 경찰청의 홍보 부족을 지적했다.

영화 <1987>을 딸과 관람한 후 함께 박종철 기념관에 들린 김은희(48)씨는 "대공분실을 이렇게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줄은 몰랐다. 미리 예약한 뒤에만 올 수 있는 줄 알았다"며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민주화 열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곳에) 많이 오면 좋겠는데, 몰라서 못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홍보나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이 관리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경찰청 인권센터 측에 "영화 <1987> 흥행에 맞춰 박종철 기념관을 홍보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인권센터 관계자는 "그럴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박종철 기념사업회·유족 "시민사회가 운영 주체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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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인권센터 (옛 남영동 대공분실) 정문 앞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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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고문 조사실과 통하는 작은 창 87년 서울대생이었던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해 사망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고 박종철 열사와 고 김근태 의원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에 대해 잔혹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5층 조사실 창문은 작게 설계되어 있다. ⓒ 권우성


한편 박종철기념사업회와 유족들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도록 하자는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기념사업회는 2일 오후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인권기념관>으로 바꿔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리며 시민들의 참여를 받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 경찰로 거듭 태어난 경찰상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제한되기에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강조하며 "시민과 자라나는 청소년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는 전시·교육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섰던 시민사회가 남영동 대공분실의 운영 주체가 될 때, 박종철 열사도 비로소 경찰의 굴레에서 벗어나 시민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각종 전시나 영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시민이 쉽게 찾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김학규 박종철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박종철 기념관에 배정되는 예산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10년째 내부가 바뀌지 않고 있고, 관리 인원이 이명박 정부 때 줄어들었다"며 "지난해 7월부터 토요일 개방을 했는데 예산이 늘지 않아 기존의 관리 인원들만 고생하는 상황이다. 일요일 개방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박종철 기념관 옆에 약 두 배 크기의 '경찰 인권사료 전시관'은 이철성 경찰청장 취임 이후에 새로 개관했다. 옛 대공분실이 박종철 열사를 기리는 곳이 아니라, 경찰의 구상대로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경찰이 관리하므로 전시관 자료의 사소한 연도 오류조차 우리 마음대로 고칠 수가 없다. 또 경찰이 전시관 안내를 맡으며 종종 시민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영동 대공분실이 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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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조사실로 향하는 철제 회전계단의 비밀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는 5층 조사실로 향하는 회전식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경찰에 체포된 민주인사들은 눈이 가려진 채 이 계단을 통해 고문이 행해지는 조사실로 올라가게 된다.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게 되어 공포심은 극대화 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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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드러낸 '박종철 고문 치사' 세상에 알린 숨은 주역들 고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축소 은폐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87년 당시 영등포교도소 안유 보안계장(왼쪽)과 한재동 교도관이 지난 2012년 1월 14일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2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뒤 509호 조사실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박종철 #1987 #남영동대공분실 #박종철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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