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이용해 대통령 탓, 정부 탓... 이건 범죄다

[북리뷰] 최경영 기자의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등록 2018.01.06 14:02수정 2018.01.0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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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영 기자는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를 통해 언론의 자기혁신을 주문한다. ⓒ 바다출판사


신문과 방송을 아우르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사실' 전달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 각계 각층에서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란 말이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게 잘 안 지켜진다. 때론 사실을 교묘히 취사선택해 본질을 왜곡시켜 버린다. 이 같은 행위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다고 편견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범죄행위에 가깝다. 독립언론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는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에서 언론이 자행하는 범죄수법을 고발한다.


현 최승호 MBC사장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이 보수 정권의 방송장악에 협력했던 '공범자들'의 존재를 알렸다면, 이 책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는 공범자들이 실제 뉴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를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린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 언론의 환경이 사실을 조작하게끔 유도하고, 기자 역시 기레기로 만든다고 꼬집는다.

우선 언론이 뉴스를 조작하는데 사용하는 수법을 살펴보자. 최 기자는 모두 9가지를 들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다.

1. 한 면만 부각시킨다.
2. 기계적 균형을 맞춘다.
3. 서민을 이용한다.
4. 숫자로 말한다. 
5. 신화적 믿음에 기댄다. 
6. 관점을 생략한다. 
7. 인과관계로 설명한다.
8. 애국주의에 호소한다.
9. 낙인을 찍는다. 

수법 하나하나가 참으로 경악스럽다. 이 가운데 '서민을 이용한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신문과 방송에선 서민경제를 보도할 때면 택시운전사와 재래시장 상인들을 등장시킨다. 기사를 접한 독자와 시청자들은 이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말하면 정말 어려운 줄 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저자인 최 기자는 이렇게 꼬집는다.

"택시기사들은 돈을 벌지 못할 구조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운전기사라는 직업은 이미 오래전에 사양산업이 되었다. 일단 회사에 많은 사납금을 내야한다. 해가 갈수록 서울의 지하철망은 촘촘해졌다. 이는 택시를 타는 사람보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길거리의 택시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영업이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재래시장의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탓, 정부 탓도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주변의 대형마트들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그런 기사는 쓰지 않는다. 다만 택시기사나 시장 상인들을 이용할 뿐이다." - 본문 31쪽 


택시기사와 재래시장 상인이 어려운 이유는 구조적인 원인(사납금과 대형마트)인 셈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들의 어려움이 마치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인양 보도한다. 결국 언론은 택시기사와 재래시장 상인들을 이용해서 대통령 탓, 정부 탓을 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더 큰 범죄가 드러난다.

"언론은 이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싶은 게다. 모든 일이 대통령 탓, 정부 탓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서민의 입'을 통해서 그렇게 말하면 더 효과적이다. 듣고 보는 사람들이 믿게 될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언론이 수십 번 그렇게 써대면 진실이 된다." - 본문 31쪽 

구시대 가치관에 갇힌 언론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수법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최 기자가 예로든 사례는 세월호 참사 발생 22일째인 2014년 5월7일 박상후 당시 MBC 전국부장의 보도다. 박 부장은 쓰촨 대지진 당시 중국의 사례를 비교하며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폄훼했다. 박 부장의 말은 이랬다.

"사고 초기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에 간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구조작업이 느리다며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쳤습니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요? 쓰촨 대지진 당시 중국에서는 원자바오 총리의 시찰에 크게 고무됐고 대륙 전역이 '힘내라 중국', '중국을 사랑한다'는 애국적 구호로 넘쳐났습니다." - 본문 51쪽에서 재인용

이에 대해 최 기자는 박 부장의 애국주의는 기실 '권위주의'라고 꼬집는다. 최 기자의 지적이다.

"박상후는 MBC 시청자들에게 '애국주의'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중략) 그러나 박상후가 배우자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실체는 사실상 '권위주의'였다. 박상후가 한국인이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제시한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다. 정부가 허가를 내주고 공산당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관영 언론만 존재하는 곳이다. 언론의 자유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중국의 권위주의는 한국의 박정희 시대와 판박이다. 박상후는 2014년의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처럼 충성스러운 공산당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 본문 53쪽  

모든 신문과 방송이 이렇게 사실을 사실대로 쓰지 않고, 사실을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들이 공공연히 사실을 가공하는 게 관행처럼 만연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의문이 인다. 이들은 왜 이렇게 뉴스를 조작할까? 최 기자는 언론인들의 가치관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언론이 이렇게 쓰는 이유도 똑같다. 그들도 애국주의를 자극하고, 부동산 투자에 대한 욕망의 불을 지르면 국민들에게 먹힌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태의연하지만 그렇게 하면 과거에는 분명히 장사가 되었고, 아직도 상당히 먹히는 장사라고 믿는다. 회사 상사가 시켜서, 정부나 광고주의 압력에 따라 이런 기사가 나온다기보다는 실제로 그렇게 믿는 가치관에 따라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스스로 믿고 있다는 것은 그게 그들의 가치관, 세상을 보는 시선이라는 의미다. 자신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그 가치관이 편향된 사고에 기반한 '편견'은 아닌지를 곰곰이 돌이켜 보는 기자는 많지 않다" - 본문 62쪽 

언론이, 언론 종사자들이 구시대의 가치관에 얽매여 있는 모습은 실로 안타깝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환경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독자는 뉴스를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전문적인 식견으로 기사를 검증해 낸다.

경우에 따라선 기자들의 실력이 들통나기도 한다.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글을 잘못 번역해 기사화했다가 소셜 미디어에서 오역이 발각된 일이 대표적이다.

최 기자가 몸담고 있는 독립언론 <뉴스타파>, 늘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목소리를 담고 있는 1인 미디어 '미디어 몽구' 등 기성 언론에 맞선 대안모델의 활동도 활발하다. 최 기자는 이런 대안모델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활동이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게 한국의 독자나 시청자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냥 소통하고 그렇게 그냥 공감한다면 그게 바로 좋은 언론인 것이다. 한국은 이제 막 좋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본문 221쪽 

지난해 문재인 새정부 출범 이후 언론, 특히 KBS·MBC 등 공영방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MBC는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MBC에서 해직했던 최승호 PD가 사장에 취임했다. 고대영 KBS 사장은 여전히 버티기로 일관중이다.

고 사장은 신년사에서 "법과 원칙에 의거하지 않은 채 제 거취가 타의에 의해 결정된다면 KBS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며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정권의 방송장악에 협력한 공범자들을 청산하는 작업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언론 스스로의 가치관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적인 인사가 신문·방송사의 책임 있는 위치를 차지했다고 해도, 대다수 언론인들이 과거의 가치관에 얽매여 있다면, 즉 애국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에 기대고, 부동산 투기 열풍을 부채질하고, 정부 비판자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야 '장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개혁은 요원하다. 결국 언론 개혁은 언론인 스스로의 자각이 선행되어야 하는 셈이다. 이 책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의 강조점도 여기에 방점이 찍힌다.

부디 언론인들이 과거의 가치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제 과거의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보다 언론환경이 바뀌었음을 인식하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고민하기 바란다. 언론의 자기혁신이 이뤄지고 뉴스 보도에 이 같은 혁신이 묻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더 좋게 변화될 것이라 믿는다.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 그들은 속이려 들지만 우리는 알고 있는 꼼수

최경영 지음,
바다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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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조작하는 9가지 방법

#최경영 기자 #공범자들 #공영방송 #뉴스타파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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