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의 의미와 한계

등록 2018.01.05 14:16수정 2018.01.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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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일명 IS)가 그 악명 높던 '검은 깃발'을 내렸다. 비이슬람 세력은 물론, 같은 뿌리를 공유하던 이슬람 수니파에게까지 무자비한 테러를 일삼아 온 '절대악'이 무너진 것이다. 'IS 건국' 이후, 4년 만에 드디어 아랍 세계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재미있게도 IS라는 '공공의 적'은 아랍 세계의 오랜 내분을 잠시나마 해소해주었다. 무엇보다 IS는 천 년 이상 싸워 온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조차 IS 척결이라는 목표 아래 손을 잡도록 이끈 '공'을 세웠다. 게다가 미국과 아랍 연맹국의 연대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역사적 반목마저 일부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와 같은 공동전선은 앞으로도 아랍 각국의 상호 이해와 협력을 중재할 경험적 자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와의 소통을 이끌 '문명의 공존' 실현 과정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아랍은 시끄럽다. 지난 3주, 두바이의 국제 학교에서는 학생들끼리도 심심치 않게 충돌중이라고 한다. 12월 6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언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예루살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왔던 그 동안의 불문율을 깨고 활발한 토론을 시작했으며,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의 감정적 대응은 결국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입장 차이를 상호 비방과 폭력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기는 이슬람 각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러 차례 아랍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성지 예루살렘' 문제를 또다시 마주해야 했다. 이와 달리, 종교·외교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해왔던 국가들 가운데 일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루살렘으로 대사관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각국 대사관의 '성지 입성'은 잠시 손을 잡았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연대의 즉각 파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아울러 서구 열강의 욕심과 편의, 이스라엘의 폭력적 점령에 의해 자국 영토를 상실하고 가좌지구 등에 갇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적 문제 해결 노력도 없던 일이 되었다. UN 가입까지 달성해내며 이스라엘과의 평화적 공존 가능성을 높여왔던 팔레스타인 정부의 노력을 무시한 채,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이 미처 수행하지 못했던 과제를 이제야 해결했다'는 트럼프의 자화자찬이 '문명의 충돌'을 초래하고 있다. 각 종교가 내세워 온 '성지로서 예루살렘의 의미'가 무엇이건, 예루살렘은 또다시 세속적 욕망에 더렵혀질 차례다. 9차례나 이어졌던 중세 유럽의 십자군은 현재진행형인 듯하다.

이슬람 세계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명분을 앞세운 기독교 세계의 이슬람 침공은 출발부터 그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4차 십자군 원정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기독교 세계의 강력한 동맹국인 동로마제국의 비잔티움을 점령하고 가혹하게 약탈하는 것으로 원정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오직 부와 권력만을 기대하고 출발한 예루살렘 원정이 결코 원하는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정군은 같은 편을 공격해버린 것이다. 이 선택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 사회를 보호해주던 동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속화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력 전체가 통일된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투르크의 위협 앞에 놓이게 만들었다. 결국 예루살렘을 둘러싼 과거 유럽의 욕망 추구는 이슬람 세계는 물론 유럽 세계 전역의 위험을 초래했을 뿐이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언은 1917년 11월 2일,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Arthur James Balfour, 1848~1930)가 선언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수립에 동의한다'는 약속의 연장선에 있다. 트럼프는 기존 미국의 여러 전임 대통령들 역시 위와 같은 선언에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명료한 입장을 내지 못했던 지난 '책임'을 다하겠다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 바 있다.


밸푸어 선언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언이 갑작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밸푸어 선언은 시작부터 모순이었다. 1915년 맥마흔 선언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의 국가 건설 지원'을 약속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면으로 충돌하는 맥마흔-밸푸어 선언으로 인해 현재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랍 전 지역의 내분이 이어지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00년 동안 지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외교적 해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팔레스타인 정부의 UN가입은 국제적 협력을 통하여 '1영토 2국가 체제'라는 평화적 공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밸푸어 선언 100주년을 맞아 지난 11월에 전 세계적으로 이어졌던 평화적 시위와 외교적 노력 역시 더 이상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IS 격멸 과정에서 나타난 아랍 각국의 연대, 밸푸어 선언 100주년에 따른 국제적 평화 촉구와 외교적 노력은 종교를 초월한 평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역사적 기회였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도가 만약 위와 같은 기회를 무산하고, 아랍 지역 분쟁의 불씨를 유지하는 것이었다면 그 의도는 주효했다. 심지어 서구 사회 역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언을 지지하는 입장과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상반된 입장으로 나뉘었다. 전 세계적 편가르기와 의견 대립, 충돌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와 같은 국제적 분쟁은 단기적으로는 군사·무기 산업의 성장, 국내 여론 왜곡 및 호도, 국가 이기주의적 결속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America, First!"를 외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위와 같은 선택 역시 미국의 단기적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업무 시작과 동시에 1호 행정명령으로 '아랍 7개국민의 미국 입국을 거부'한 것 역시 의도된 국제 분쟁을 통하여 자국 내 정치·경제적 이익을 고려한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과연 장기적으로도 위와 같은 선택이 주효할 지는 불분명하다.

국제적 입장과 궤도를 달리한 미국의 '예루살렘 선언'은 미국의 '고립주의' 노선 선택을 드러낸다. 이는 최근 미국의 '탄소배출권 협약 탈퇴' 과정에서 국제적 비난을 초래한 미국의 이기적 선택과도 그 결과가 비슷하다. 결국 미국의 국가 이기주의는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유럽을 대표하는 프랑스와 미국조차 미국의 선택을 공격적으로 비판하는 추세다. 만약 장기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축소가 지속된다면 이 역시 '기독교 세력 전반'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장기적 손해는 물론, 서구 사회 전반의 국제적 비중 축소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도 입장이 난처하다. 북한과 휴전 중인 가운데 '혈맹' 미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을 지지할 수도 없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면, 최악의 경우 일부 아랍 국가들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북한 정부를 우선 협상대상으로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대한민국은 서구와 비서구의 평화를 유도할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남한과 북한 정부의 '6자 회담' 개최와 그 운용 경험은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다. '한반도를 대표하는 유일한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라는 입장을 국제적으로 천명해왔던 남한 정부의 입장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과도 유사하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문제를 주시하여 위 문제가 초래할 서구와 비서구의 역사적 갈등과 그 해소과정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도 단서를 줄 수 있으며, 앞으로 서구와 비서구, 기독교와 이슬람을 중재할 '제 3지대' 세력을 모을 수 있는 '외교적 중재자'로서 지위를 확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트럼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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