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과 한 판 뜨고 싶어도 말발이 안 먹힌다

[이주노동자쉼터에 온 사람들 이야기①] 친구를 도와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콘

등록 2018.01.10 09:53수정 2018.01.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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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이주노동자쉼터는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을 열었다. 햇수로 14년째인 올 겨울 쉼터는 여느 해보다 더욱 미어터진다. 장사로 치면 호황도 이런 호황이 없다.

이윤이 남는 장사야 호황이면 좋지만, 어떠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쉼터 같은 곳은 사람이 없어야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요즘 용인이주노동자쉼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지난 주말만 해도 남자 둘, 여자 둘이 쉼터에 들어올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남녀 숙소는 이미 적정 인원을 넘겼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칼잠을 자는 불편을 감수하겠다고 양해해 주면 되겠지만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주말 저녁에 또 한 명의 여성 이주노동자가 쉼터에 짐을 풀었다. 다른 사람과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서로 약간씩 양보하는 것을 배우며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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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준비 중인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 고기복


정현종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주노동자쉼터에 사람이 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쉼터를 찾는다. 그 사연은 각자의 근심을 포함한다. 실직으로 인한 상실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다. 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책임감은 더욱 그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런 이주노동자들에게 마음이나마 편한 쉼터를 제공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최소한 쉼터에서는 근심은 쉼터 운영자의 몫이 되고, 이주노동자는 방문객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쉼터 문을 닫지 않는 이상 그래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쉼터의 주인이다.

처음 용인이주노동자쉼터를 열었을 때는 마흔 명이 넘게 생활할 때가 예사였다. 그때는 지금 한국어 교실로 쓰고 있는 공간도 방으로 사용했다.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을 때라 겨울이라 해도 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주유 계기판이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고, 쌀은 동이 나기 일쑤고, 수시로 뭔가가 고장 나는 통에 손을 봐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만 빼고는 견딜만했다. 그러다가 낡은 보일러가 계속 터지는 바람에 전기 판넬로 바꾸면서 쉼터는 거주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전기 용량을 견디지 못하고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는 일이 빈번했고, 누진세 때문에 전기 요금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정원을 정했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교실과 베란다 등 쉼터 여기저기에 담요를 펼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문제는 여름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추운 겨울에는 바닥에 깔 매트도 없이 교실에서 자게 할 수는 없어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쉼터는 겨울이 되면서 농업 분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 고용허가제 농업분야로 입국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다. 쉼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지만 알아듣지 못하는지 사건은 수시로 터진다.

온수 사용법을 몰라서 마냥 찬물을 틀어놓는 사람도 있고, 커피포트에 물이 넘치도록 채워서 물을 끓여놓고는 핸드폰에 코를 박고 식을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수거하는 건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쉼터에서 시간을 내어 전체를 모아놓고 이주노동자들에게 협조를 구하지만, 도통 알아먹지 못하는 모양이다. 불러 모은 사람만 꼰대가 되고, 시간 낭비한 꼴이 된다. 원래 주인들은 객의 말에 쉬이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쉼터 운영자는 집주인과 한 판 뜨고 싶어도 말발이 약해서 안 먹힌다


욕바가지 먹은 날, 친구를 도와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 실직하고 두 번씩이나 와서 살았던 이주노동자 콘은 캄보디아에서 온 22살 청년이다. 콘은 지금 참나물과 쑥갓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한 지 두 달 조금 넘었다.

지난주에 콘은 한국 사람이 이주노동자에게 실컷 욕설을 퍼붓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슬프게도 영상 속 주인공은 콘 자신이었다. 농장주 부인이 근무처 변경 신청을 하려고 고용센터에 갔다 온 콘에게 욕하는 장면을 다른 이주노동자가 찍은 걸 올린 거였다.

농장주는 콘이 일을 잘 못한다는 핑계를 들어 농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콘은 사장이 자신을 해고했기 때문에 근무처 변경이 가능한 줄 알고 고용센터에 갔다가 허탕 쳤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근무처 변경 횟수를 3회까지만 허락한다. 이미 제한횟수를 넘긴 콘은 이직이 불가능했다. 결국 다시 농장으로 돌아온 콘에게 농장주 부인은 '나가라'면서 화풀이를 단단히 했다.

영상을 올린 콘은 그날 무척 억울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그런 콘이 그 날 저녁에 한 명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를 데리고 쉼터를 찾았다. 익산에 있는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사실 콘이 다른 이주노동자를 쉼터에 데리고 온 건 처음이 아니다. 콘은 수시로 실직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을 쉼터로 안내한다. 그러다보니 지금 쉼터에는 가까운 여주, 이천뿐 아니라 제주, 전주, 익산, 파주, 이천, 평택 등등 전국에 있던 캄보디아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콘은 실로 용인이주노동자쉼터 홍보부장이다.

동료 이주노동자를 쉼터에 데려다 준 콘은 페이스북에 그 사실을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착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콘은 누구보다 쉼터 존재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자신이 처한 처지가 억울하고 힘들지만, 다른 누군가를 살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콘의 마음이 쉼터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주노동자들은 엄동설한에 고용주 한 마디에 해고되면 물어물어 쉼터를 찾는다. 쉼터는 근심을 안고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근심을 덜어주고, 쉼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남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최소한 쉼터 안에서만큼은 그들이 주인이어야 한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 고용주들은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이주노동자만을 선택하려 든다. 일 못해서 해고됐다는 말 한 마디로 이주노동자를 내치면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는 것은 오롯이 각자 하기 나름이라고 항변한다. 정당한 처우도 없이 수익에만 골몰하는 제도에서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고용주에게 욕을 바가지로 들은 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이는 일말의 존중도 받지 못하며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쉼터는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
덧붙이는 글 이어지는 글 ②“저 내일 감보디아가요” 맞춤법은 틀렸지만 뜻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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