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식기 표본이 학습용? 심각한 인권 침해였다"

일제의 만행 '여성 생식기 표본'... 파기 그 뒷이야기

등록 2018.01.08 20:38수정 2018.01.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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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로 추정되는 그림 '홍련화' 일본 니가타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 구진영


2010년 6월까지만 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는 여성 생식기 표본이 전시돼 있었다. 생식기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명월관의 기생이었던 '명월이'다.

명월관 최고의 기생이었던 명월이의 운명은 기구했다. 동침한 남성들이 복상사로 연이어 죽어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동침했던 한 남성이 자신도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명월이를 살해했다.

명월이 사후, 일제 헌병들은 명월이의 생식기가 연구대상이라고 여겨 표본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해방 후 생식기를 인도받은 한국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010년까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견학용으로 이를 전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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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식기 표본 보관금지 청구에 관한 소송을 제기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사진 왼쪽 첫 번째)이 2010년 1월, 여성 생식기 표본 보관금지 청구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구진영


이 소식을 들은 당시 조계종 승려였던 혜문은 2010년 1월, 서울지방법원에 여성 생식기 표본 보관금지 청구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을 접수한 뒤 명월이 생식기 표본 파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묻기 위해 혜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는 저녁을 먹는데, 어떤 사람이 국과수에서 여성 생식기 표본을 봤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3일 뒤에, 지인으로부터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국과수에서 여성 생식기 표본을 봤다고 들었어요. 똑같은 이야기가 두 번 반복되니까 머리에 각인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표본을 폐기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어요."

일제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보존한다? 무슨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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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식기 표본 파기 전 국과수에 보관된 생식기 표본의 모습, 오른쪽 아래 모자이크처리 된 사진이 여성 생식기 표본이다. ⓒ 구진영


그는 명월이 생식기를 현장검증 당시 처음 봤는데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동행한 부검의는 '외과의사가 아니라 마치 대검이나 톱으로 무질서하게 절개했다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혜문은 나팔관과 자궁이 저것이구나 하고 느껴질 만큼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소를 제기했을 당시에 경찰 정보과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니 견학 학습용으로 잘 쓰고 있는데 왜 없애려고 그러냐'라는 소리를 들었죠. 저는 그것을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기 위해 생식기를 보관해야 한다'는 사람을 많이 봤다고 한다. 마치 맞는 말인 듯 포장했지만, 인권을 무시한 행위다. 소위 공익적 가치를 들어 인간에게 유용할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신체를 활용하거나 이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표본을 만든 이와 궁극적으로 목적이 같다는 것이 혜문의 생각이다. 그는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맞서는 것이 악의 일상성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여성 인권운동가마저 명월이 버리면 누가 구해주나 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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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시립미술관 소장 '홍련화'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가 일본 니가타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홍련화를 보고 염불을 하고 있다. 홍련화는 명월이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 구진영


"사람의 신체와 목숨을 이용하면 안 되죠. 매우 중대 범죄이며 이것은 휴머니즘에 대한 도전입니다."

조계종 승려가 여성 생식기 표본에 관심을 둔 것에 대해 비난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중이 무슨 기생 아랫도리까지 시비하냐는 소리도 들었고요. 엄청난 악성댓글도 쏟아졌죠. 그것보다 더 허탈했을 때는 여성인권운동가를 찾아갔을 때였어요."

그는 재판 이외에도 이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 중 하나가 국회청원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성인권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을 찾아가 청원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명월이의 신분이 기생이고 생식기 표본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여성 인권 운동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여성인권운동가마저 명월이를 버리면 누가 명월이를 구해주나', 정말 허탈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2010년 봄, 최문순 강원도지사가(당시 국회의원) 청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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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식기 표본 파기 청원서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이 최문순 강원도지사(당시 국회의원)와 여성 생식기 표본 파기 청원서를 검토하고 있다. ⓒ 구진영


청원을 거절한 국회의원의 말대로 이 사건은 매우 선정적이라 최초 언론 보도가 있고 난 후 양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랜시간 올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선정적이라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도전하는 이들을 지적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언젠가 어떤 남성 국회의원이 여성 기자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진 사건이 있었어요. 난리가 나자 그 국회의원 하는 말이 노래방 도우미인 줄 알고 그랬다는 거예요. 아니. 노래방 도우미면 마음대로 가슴을 만져도 되나요? 인권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거죠. 이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다뤄도 되고 저 사람은 안 된다는 의식을 없애야 합니다."

천도재 지낸 명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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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 천도재 2010년 8월 백중날, 명월이의 천도재가 진행됐다. ⓒ 정락인닷컴


2010년 5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의 화해 권고 뒤에 검찰은 생식기를 인도하지 않고 소각로에 태워버렸다. 이에 대해 서운한 감정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생식기는 장기이고 유골과는 처리절차가 다르다는 거예요. 유골의 경우에는 무연고 공고를 해서 연고자를 찾아서 인도하면 연고자가 장례절차를 따르면 되는데 장기는 태워버리면 없어지니까 인도를 안 해도 되는 거죠.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서 2010년 백중날(음력 7월 15일) 명월이의 천도재를 지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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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 천도재 명월이 천도재에서 무용수가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 정락인닷컴


그는 여성 생식기 표본 파기 운동을 하면서 신기한 일도 많았다고 전했다.
"하루는 자려고 누웠는데 제 방으로 한복 입은 여성이 들어오는 게 보였어요. 순간 직감했어요. 귀신이구나 하고요. 무서워서 자는 척하면서 덜덜 떨면서 날을 샜어요."

그는 아침이 밝고 아침을 먹은 뒤 더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단다.

"그날 갑자기 제 옆방 사는 스님이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고발할 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혜문 방에 어제 한복 입은 여자가 들어가는 걸 봤다고 말한 거죠. 그 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바닥에 앉아서 그 스님을 붙잡고 덜덜 떨었어요."

그는 다시 웃으며 생식기 표본이 파기되고 천도재를 지내준 후 명월이가 꿈에 나타나서 이 은혜는 꼭 갚겠다고 했다며 즐거워했다.

"그땐 어떻게 은혜를 갚으려나 했어요. 생각해보니 그 뒤에 절에서 내려와서(환속해) 잘 살고 있으니 그게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는 명월이 생식기 표본 이외에도 백백교(白白敎, 일제강점기 창시된 종교) 교주 두상 표본을 파기했으며, 현재 박물관에 보관 중인 동학 장군 유골, 무령왕 유골 봉안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riverside/17 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여성생식기표본 #파기소송 #혜문 #명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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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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