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작업환경... 불안한 노동자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등록 2018.01.12 15:14수정 2018.01.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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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년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이 주안공단에서 화학물질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 금속노동자


올해는 근로자 건강센터에서 일했다.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방문해, 해당 사업장의 안전 보건 관리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됐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장의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해서 화학물질에 대한 중독사고나 안전 문제로 인한 재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업 환경이었다.

아마도 이 작업장이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이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사업장보다 더 위험하고 더 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나지 않은 한국의 소규모 사업장, 하청 사업장 등도 안전·보건에 관한 근로감독 수준을 고려했을 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독사건이 발생한 작업장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작업장의 안전보건문제와 관련해서 느꼈던 점을 설명해본다.

작년 여름 간독성 물질인 HCFC-123 중독이 발생했던 소화기 제조 사업장을 방문해서 재해 노동자를 조사한 적이 있다. HCFC-123으로 인한 간독성 문제는 비교적 잘 알려 있지만, 특검이나 작업환경측정 물질은 아니어서 현재 관리가 되지 않는 화학물질이다. 이 물질에 대한 노출 관리가 안 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소화기 제조 공장의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소화액을 소화기에 충전하는 과정에서 작업자들의 호흡기와 피부에 해로운 물질이 고농도로 노출되고 있었다. 개선 국소 배기장치와 같은 환기 시설도 미비했다. 유기용제 노출을 줄여 줄 수 있는 적절한 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끓는점이 낮은 HCFC-123이 대기 중으로 증발했고, 작업자는 피부와 호흡기를 통해 이 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된다. 이로 인해 작업자들에서 독성간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해로운 작업환경 때문에 한 명의 노동자가 독성 간염으로 사망했고, 2명은 간 수치가 많이 올라가서 독성 간염으로 입원 치료를 하였다. 이 재해의 특징은 젊은 노동자가 희생 되었고 파견 업체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피해자였다는 점이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50인 미만 소규모 제조업장의 육체노동자,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를 소홀히하여 벌어진 사건인 것이다.

또 다른 사업장에선 화학물질 보관 탱크에 점검하러 들어간 노동자가 화기 물질 때문에 질식한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구조됐지만, 끔찍한 중독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 사업장에서도 작업자들이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다루고 있었고,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현장이 관리되지 않았다. 게다가 급성중독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저장 탱크에 송기 마스크와 같은 안전 장비도 없이 들어가 작업하는 것은 안전 수칙에서도 벗어나는 일이었다.

내가 방문해서 조사했던 사업장이 한국의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의 현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취업자 노동 환경을 조사를 분석해보면 제조업의 육체 노동자들이 더 해로울 수 있는 작업 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또한 같은 직업군인 경우에도 정규직보다 임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더 해로운 환경에서 일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의 작업장에서는 직업적 노출은 잘 관리되지 않고 있으며, 안전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에 자주 발생하고 있는 크레인 사고가 한국의 작업장 안전 문제를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많은 생산직 노동자, 특히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한 화학물질 관리는 무방비상태이며, 어쩌면 위험성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현재 산업재해와 중독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제조업의 생산직 노동자, 건설업의 일용직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대책 마련의 기본이자 시작이 될 수 있다. 소규모 사업장, 하청업체, 파견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사업장의 화학물질 관리 실태는 더욱더 파악되고 있지 않다. 산업재해와 화학물질로 인한 중독 사고를 줄이기 위해 시급히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조성식 님은 직업환경전문의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화학물질 #알권리 #비정규직 #노동자건강권 #유해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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