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박정희 현판' 달고 이순신 유물전 하나?

이순신 종가 "현판 교체 전까지 난중일기 전시불가" 입장에도... 현충사관리소 "특별전 하자"

등록 2018.01.16 09:31수정 2018.01.1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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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지난 1월 3일 만든 공문. <난중일기> 등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에 대한 특별전시를 계획하고 있으니 이에 동의해달라는 내용이다. ⓒ 최순선씨 제공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지 420년째인 2018년 새해부터 이순신 장군 유물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현충사 박정희 친필 현판을 내리기 전까지 <난중일기> 등 이순신 장군 유물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이순신 종가 15대 맏며느리(종부) 최순선(63)씨의 요청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일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이순신 유물 소유권자인 최씨에 "2018년 원본유물 특별전시를 열려고 하니 동의해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씨는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겠다"라고 말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이순신 순국 420주년 관련 행사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박정희 현판 교체' 요청엔 여전히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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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현충사 현판.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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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년 숙종이 사액한 현충사 현판. ⓒ 구진영


<난중일기> 등 이순신 유물 논란의 시작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충사 현판이다. 이 현판은 지난 1967년 박 전 대통령이 현충사를 성역화하면서 들어섰다. 종부 최순선씨는 지난 9월 "현충사 내에 왜색이 너무 짙다"라며 "박정희 현판과 현충사 관내 금송을 제거하고 조선 숙종이 내린 사액 현판으로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금송을 옮기기로 결정했으나 박정희 현판에 대해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최씨는 지난 2017년 12월 28일 "2018년 1월 1일부터 <난중일기> 등 이순신 유물 일체에 대한 영리적·비영리적 사용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종부 최씨의 입장 표명이 있었지만,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종부의 입장이 나온 지 엿새 뒤인 2018년 1월 3일 박정희 현판 교체에 대한 결정 대신 '이충무공 순국 7주갑(420년) 원본유물 특별전시 동의 요청'을 최씨에 보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공문에 따르면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충무공 탄신 473주년 및 이충무공 순국 7주갑을 기념하여 이충무공의 위업을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2018년 내 30일간 원본유물을 특별전시하고자 하니 동의해주길 바란다"라고 밝혀놨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특별전시 동의를 구한 유물은 총 스물여섯 점으로 국보 76호 <난중일기>(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비롯해 '이순신 유물 일괄'(보물 326호), '이순신 관련 고문서'(보물1564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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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대중에 알려진 국보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 ⓒ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유인수 학예사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종부 최씨의 '전시불가' 입장이 있었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이라면서 "1970년대부터 현충사 관내에서 전시를 할 때는 따로 동의를 받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현충사관리소는 이순신 유물이 현충사 바깥에서 전시될 경우에만 최씨의 동의를 구해왔다.

유 학예사는 최씨가 요청한 박정희 현판 교체에 대해서는 "자문회의를 통해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게 없다"라면서 "단기간 내에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계획한 '이순신 순국 420주년 행사'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상태다. 유 학예사는 "행사 시기나 장소 등은 미정"이라면서 "유물이 현충사 바깥으로 이동해 행사가 치러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매년 4월 28일 이순신이 태어난 날 전후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 시기에 약 30일 동안 <난중일기> 등 이순신 원본 유물을 특별전시해왔다. 최씨가 "원본 유물 전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놔 매년 행해져왔던 원본 유물 전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 유물 소유권과 관계없는 인물이 동의 대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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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옥로(玉鷺, 갓머리에 달았던 장식품). 보물 326호 '이순신 유물 일괄'(李舜臣 遺物 一括) 중 하나다. ⓒ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한편,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작성한 공문에는 소유권자인 종부 최씨 외에 다른 이에게까지 동의를 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공문에 첨부돼 있는 '특별전시 동의서'엔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장 이종천씨의 서명란도 마련돼 있다. 이씨는 최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정희 현판 교체에 반대하면서 "박정희 대통령도 임금이다"라고 말한 인물이다.

이씨에게는 이순신 유물 소유권이 없다. 이순신 유물은 대대로 이순신 종가가 대물림해왔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왜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장에 특별전시 동의를 요청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유인수 학예사는 "이순신 유물을 다른 기관에서 전시할 수도 있어서 이동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은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 의견을 물어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017년 종부 최씨는 간송미술문화재단과 함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70호)과 <난중일기> 원본을 전시하려고 계획했다. 이에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는 '유물을 현충사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면서 같은해 3월 이순신 유물에 대한 이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법은 종회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난중일기> 원본은 서울로 가지 못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는 '이순신 유물을 현충사 밖으로 이동시키지 말라'고 판단한 법원의 결정과 정반대의 요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유 학예사는 "2018년은 이순신 장군 순국 420주년이라는 특수성이 있어 문화재청이 주도적으로 행사를 열 계획"이라면서 동의만 얻는다면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정희 현판 철거 전까지는 <난중일기> 전시 안 된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의 공문 내용이 의아하다는 문화재계 여론도 있다.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유물 소유권자의 전시불가 요청이 있었음에도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이렇게 나오는 건 소유권자를 무시한 것과 같다"라면서 "게다가 소유권이 없는 종회장에 특별전시 동의를 구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원이 유물을 이동하지 말라고 판단했는데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나서서 법원 결정을 번복하게끔 만들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종부 최씨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에 "박정희 친필 현판을 내릴 때까지 이순신 유물 전시는 안 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라며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전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관련 기사]
이순신 맏며느리 "2018년부터 <난중일기> 사용 말라"
이순신 가문 며느리의 일침 "현충사 속 박정희 적폐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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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장검. 보물 326호 '이순신 유물 일괄'(李舜臣 遺物 一括) 중 하나다. ⓒ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이순신 #난중일기 #충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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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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