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까는 일, 왜 "사투"라고 하는지 알겠다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의 마지막 본영이었던 완도 고금도

등록 2018.01.22 08:54수정 2018.01.2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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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에 구워지는 굴.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리면 더욱 생각나는 겨울 음식이다. ⓒ 이돈삼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리면 더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닷가에서 구워 먹는 굴이다. 눈 내리는 날, 활활 타오르는 숯불에 구워서 짭조름한 바다내음과 함께 먹는 굴의 맛은 겨울 추위까지도 한순간에 녹여준다.

섬 드라이브를 겸해 굴을 많이 기르고, 채취하는 완도 화성마을로 간다. 화성마을은 고금도에 속한다. 완도라고 하면 섬이고, 멀다는 선입견이 앞서기 일쑤다. 하지만 고금도는 완도에선 맨 위쪽, 뭍에서는 가장 가까운 섬이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마량에서 연결된 고금대교를 건너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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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마량과 완도 고금도를 이어주는 고금대교 전경. 고금도는 행정구역상 완도에 속하는 섬이지만, 오래 전부터 강진권에서 생활해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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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까고 있는 고금도 화성마을 이심철 씨. 그는 굴 까는 작업을 “사투(死鬪)”라고 표현했다. ⓒ 이돈삼


화성마을은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차를 타고 고금대교를 건너 약산도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도로변 바닷가에 굴을 까는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다. 굴 껍데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어 금세 굴 까는 작업장임을 알 수 있다.

굴은 약산도와 신지도 사이 대게포에서 키운다. 굴을 채취한 배가 포구에 닿으면 마을사람들이 손수레와 경운기에 옮겨 싣고 작업장으로 가서 굴을 까기 시작한다. 굴 까는 작업은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하루 종일, 심지어 날을 지새우며 이뤄진다. 마을에서 만난 이심철 씨는 굴 까는 작업을 "사투(死鬪)"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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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까는 도구 조새. 양쪽으로 날카롭게 생긴 송곳칼이 달려 있다. ⓒ 이돈삼


굴을 까는 조새에는 양쪽으로 날카롭게 생긴 송곳칼이 달려 있다. 상대적으로 큰칼로 굴의 껍질을 깨고, 작은칼로 알맹이를 찍어낸다. 장갑을 끼고 하더라도 손에 상처가 나기 십상이다. 주문받은 물량을 맞추려면 쉴 새도 없이 작업을 해야 한다.

굴은 한 사람이 하루에 20∼30㎏씩 깐다. 굴을 까서 돈은 벌지만, 고스란히 병원에 갖다 준다는 말에 마음 애잔해진다. 깐 굴의 가격은 1㎏에 1만 원 남짓. 10년 넘게 그대로다. 굴을 키워서 채취하고, 까는 모습을 보면서 굴 값이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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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깐 굴. 탱글탱글한 속살이 싱싱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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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 굴. 1㎏에 1만 원씩 팔린다. 값이 10년 넘게 그대로다. ⓒ 이돈삼


굴은 바다의 완전식품으로 평가받는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어 영양이 풍부하다. 성인병도 예방한다. 굴은 자연 강장제라고 남성들이 좋아한다. 살결을 하얗고 부드럽게 해주는 미용식품이라고 여성들도 반긴다.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지만, 굴 따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하얗다는 속담도 있다. 예부터 나폴레옹과 클레오파트라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굴은 바닷가에서 구워먹으면 운치까지 더해진다. 숯불에 익어 틈새가 벌어진 굴을 하나씩 꺼내 면장갑을 낀 손으로 잡고 칼로 벌려 알맹이를 꺼내 먹는 맛이 그만이다. 애주가들에게 겨울철 술안주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숯불에 굴이 톡톡 튀면서 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도 입맛을 돋아준다. 찜으로 해서 먹어도 맛있고, 국에 넣어도 개운하다. 밥에 넣어도 독특한 굴이다. 생굴을 무쳐내도 별미이다. 어떻게 먹더라도 맛있는 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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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 관리실의 담장. 큰 빗자루가 훌륭한 장식품 역할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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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 덕동마을에 있는 충무사. 지난 1월 5일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순국대제를 지낸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이돈삼


'굴의 고장' 고금도는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함께 마지막 본영을 두고 일본군을 무찌른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을 모신 사당 충무사가 덕동마을에 있다. 지난 1월 5일(음력 11월 19일)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순국제가 여기서 열렸다.

조선수군의 해상전투 대형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전진도첩(戰陣圖帖)도 충무사에서 만난다. 조선후기 전라우수영의 군사조직과 운영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3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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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 관왕묘비. 비각 안 묘비에 진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기고 피를 토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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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 월송대.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은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옮겨져 봉안됐던 자리다. ⓒ 이돈삼


관왕묘비도 있다. 묘비에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기고 피를 토하며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충무사를 둘러싼 후박나무 숲길도 다소곳하다. 마을의 돌담도 말끔히 단장됐다.

충무사 앞 소나무 숲에 월송대(月松臺)도 있다. 1598년(선조 31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은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옮겨와 봉안했던 자리다. 83일 동안 안치됐던 장군의 유해는 이듬해, 1599년 2월 11일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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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도 매생이 양식장. 약산도가 매생이의 주된 생산지임을 금세 알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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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305m의 장보고대교. 완도 고금도와 신지도를 이어주는 연도교다. ⓒ 이돈삼


고금도에서 약산대교를 건너면 약산도, 장보고대교를 건너면 신지도로 연결된다. 약산도는 매생이와 흑염소의 섬이다. 약산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나는 화가마을과 천동마을에서 매생이를 많이 양식하고 있다. 도로변에서 매생이 양식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매생이 수확을 끝낸 대나무발도 도로변에 즐비하다.

길이 1305m의 장보고대교를 건너 만나는 신지도에는 아름다운 해변 명사십리가 있다. 남도의 절집 현판을 많이 쓴 원교 이광사와 천연두 예방접종 백신인 종두법을 들여온 지석영이 신지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정약전도 흑산도로 유배 가는 길에 들러 몇 달 동안 머물렀던 신지도다.

신지도는 소안도와 함께 항일의 섬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석천 선생과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선 임재갑 선생이 대표한다. 면소재지에서 가까운 대곡리에 신지항일운동 기념탑과 자료관이 있다.

강진 마량에서 시작된 한 번의 나들이로 고금대교와 약산대교, 장보고대교, 신지대교를 넘나들며 고금도와 약산도, 신지도, 완도까지 다 돌아볼 수 있는 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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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신지면 대곡리에 세워진 신지항일운동 기념탑. 신지도는 소안도와 함께 대표적인 항일의 섬이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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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신지도 풍경. 신지도는 장보고대교를 건너 고금도로, 신지대교를 건너 완도읍과 연결되는 섬이다. ⓒ 이돈삼


#고금도 #화성마을 #충무사 #묘당도 #장보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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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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